[분석] ‘시진핑의 선택’ 몰락의 전조인가, 공포 통치의 완성인가

10월 17일, 중국 인민해방군의 고위 장성 9명이 하루 만에 당과 군에서 제명되는 전례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중에는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자 군 서열 3위인 허웨이둥(何衛東)도 포함되어 있었다.
국방부의 짧은 세 문장짜리 발표에도 불구하고, 그 파장은 중국 정계를 뒤흔들었다. 허웨이둥은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이후 공식 석상에서 자취를 감췄으며, 함께 해임된 인사들은 모두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직접 발탁한 측근들이었다.
‘시진핑의 측근 그룹’이 한꺼번에 숙청된 셈이다. 더구나 이번 인사 조치는 4중전회를 불과 며칠 앞둔 시점에 단행돼, 정치적 계산이 짙게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표면적 명분은 ‘부패 척결’이었다. 그러나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단순한 반부패 조치로 보지 않는다. 시진핑식 권력 재설계, 혹은 통치 구조 재정비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시진핑은 지난 10여 년간 ‘부패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반대 세력을 숙청해 왔으며, 이번에도 군을 완전히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반부패의 기치 아래, 충성의 시험대
인민해방군 기관지 인민해방군보(人民解放軍報)는 이를 분명히 드러냈다. 10월 18일자 사설에서 “부패에는 면책특권도, 철모도 없다”고 강조하며, 이번 숙청을 ‘시진핑 핵심’을 중심으로 한 군 재정비로 규정했다.
사설은 “시진핑 핵심을 중심으로 더욱 긴밀히 단결하라”고 촉구하며, ‘두 체제’, ‘네 가지 의식’, ‘네 가지 자신감’, ‘두 가지 수호’ 등 이른바 ‘시진핑 정치 어휘’를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이러한 구호는 단순한 이념적 구호가 아니라, 군 내부의 절대 충성과 통제 강화를 지시하는 정치 명령에 가깝다.
숙청된 인물들을 살펴보면 그 의도는 더욱 분명하다. 허웨이둥 부주석을 비롯해 군 인사와 사상 교육을 담당하는 중앙군사위원회 정치공작부 주임 먀오화(苗華), 핵전력의 중추인 로켓군 사령관 왕허빈(王厚斌), 대만해협을 담당하는 동부전구 사령관 린샹양(林向陽)이 해임됐다.
여기에 해군 정치위원 위안화즈(袁華智)와 무장경찰 사령관 왕춘닝(王春寧)까지 포함됐다. 이는 한국으로 치면 합참의장과 육·해·공군참모총장, 국방차관이 동시에 해임된 것에 비견될 중대 사안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이러한 대규모 숙청이 가능하다.
공산당은 군을 ‘국가의 무력’이 아닌 ‘당의 무력’으로 정의하며, 시진핑은 이를 “당이 총을 지휘한다(黨指揮槍)”는 구호로 확고히 했다. 인민해방군은 국가의 기관이 아니라 시진핑 개인의 정치 의지를 수행하는 조직이 되어가고 있다.
반복되는 숙청, 통제로 구축된 체제
시진핑은 집권 이후 줄곧 ‘반부패’를 통치의 가장 강력한 도구로 활용해 왔다. 2012년 집권 직후 중앙기율검사위원회를 앞세워 수백 명의 고위 간부를 처벌했고, 군에서는 쉬차이허우(徐才厚)와 궈보슝(郭伯雄) 같은 거물급 인사들이 차례로 낙마했다. 이는 겉으로는 ‘부패 청산’이었지만, 실상은 권력 재편이었다. 이번 숙청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2018년 군 조직개편 이후 중앙군사위원회의 인사권과 감찰권이 시진핑에게 집중되면서, 그는 군 수뇌부를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손에 넣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발탁한 인물이라도 일정 시점이 지나면 교체하거나 제거하는 예방적 숙청을 단행한다.
이는 ‘불충’에 대한 징벌을 넘어 잠재적 권력의 싹을 미리 잘라내는 행위다. 결국 시진핑 체제의 핵심은 ‘충성 외에는 생존이 없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입하는 데 있다.
이번 숙청은 4중전회를 앞두고 정치 의제를 시진핑 중심으로 고정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군은 이제 정치의 변수에서 완전히 배제된, 통제의 도구로 자리 잡았다.
공포의 제도화, 통치의 심화
중국에서 군 통제는 권력 유지의 핵심이다. 이번 숙청은 ‘부패 척결’이라는 명분 아래 감행된 정치적 경고이자, 공포를 통한 체제 재설계로 볼 수 있다.
시진핑은 ‘내부 불안’을 ‘내부 통제력’으로 바꾸는 데 능하다. 언제든 숙청될 수 있다는 불안은 자발적 복종을 낳고, 보고 체계를 더욱 촘촘하게 만든다. 모든 지휘 결정은 ‘시진핑 사상’이라는 정치 언어로 포장된다. 인민해방군보의 “시진핑 핵심을 중심으로 고도의 단결을 유지하라”는 문장은 곧 “시진핑에게만 충성하라”는 정치적 명령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구조가 굳어지면 세 가지 결과가 뒤따른다.
첫째, 군 지휘관들은 군사적 판단보다 정치적 고려를 우선하게 된다. 판단력보다 ‘정치적 정답’을 찾는 경쟁이 벌어지고, 효율성은 사라진다.
둘째, 상호 감시와 불신이 제도화된다. 실수나 누락은 불충으로 해석되고, 먼저 보고하는 것이 충성의 증거가 된다. 능력보다 정치적 민감성이 생존의 기준이 된다.
셋째, 반대 세력은 구조적으로 소멸한다. 주기적인 인사 교체를 통해 잠재적 도전 세력은 싹을 틔우기도 전에 제거된다.
결국 공포는 시진핑 체제의 윤활유이자 안전장치다. 하지만 공포에 의존하는 통치는 군의 실전 능력을 약화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과도한 충성 경쟁은 판단을 마비시키고, 명령 체계가 정치화될수록 전쟁 수행력보다 ‘충성 경쟁’이 우선시될 수 있다.
그럼에도 시진핑은 효율보다 통제를 더 중시한다. 그의 체제에서는 지도자의 자리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 곧 나라의 안정으로 여겨진다. 이번 숙청 역시 충성심이 약하다고 판단되는 순간 자동으로 작동하는 통제 장치처럼 보인다.
공포 통치의 완성, 그리고 붕괴의 시작
일부 서방에서는 이번 사태를 ‘시진핑 권력의 균열’ 혹은 ‘체제 붕괴의 조짐’으로 본다. 그러나 중국 정치의 방식은 다르다. 마오쩌둥이 린뱌오를 숙청하고, 덩샤오핑이 군권을 재편했듯, 중국의 지도자들은 숙청을 통해 오히려 권력을 강화해 왔다. 시진핑도 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몰락의 전조가 아니라, 오히려 통치 구조가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공포로 유지되는 체제는 언제든 내부 균열을 낳고 균열은 붕괴를 가져온다. 공포는 겉으로는 충성을 낳지만, 동시에 피로와 불신을 축적한다.
또 통치 구조의 완성은 동시에 리더 개인의 한계가 드러나는 시점이기도 하다. 시진핑은 절대 권력을 손에 넣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권력의 무게는 그를 더 깊은 고립으로 밀어 넣고 있다. 모든 결정이 시진핑 개인에게 집중된 지금, 중국의 통치·경제·사회 문제는 어느 한 사람의 능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지점에 도달했다.
정치적 통제는 강화되었지만, 그만큼 사회의 활력은 약해지고 경제는 경직됐다. 언론의 자유와 내부 토론이 사라진 공간에서는 실수조차 바로잡기 어렵다. 이는 독재 체제의 필연적 결과다. 통제가 강할수록 오류는 교정이 불가능해진다.
시진핑은 지금 통치의 절정에서 동시에 붕괴의 입구에 서 있다. 그가 만들어낸 ‘공포의 시스템’은 일시적으로 체제를 지탱하겠지만, 결국 피로와 균열을 가속시켜 붕괴로 향할 것이다.
*이경찬 논설위원은 정치 PR 전문가로, 한국커뮤니케이션에서 정치 홍보를 담당하며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쌓았습니다. 이후 정치 보좌관으로 활동하며 정책과 정치 현장을 깊이 이해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에포크타임스 기자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언론의 최전선을 경험했습니다. 현재는 미디어파이 대표로서, 정무·언론·홍보 전반에 걸친 통합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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