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중국의 러시아 동부 진출 확대, 그 전략적 함의와 대책

눈에 띄는 변화: 일상 속 중국의 영향력
러시아 극동 지역의 블라고베셴스크나 블라디보스토크 거리를 걷는다고 상상해 보자. 눈에 띄는 것은 소비에트 시대 건축물이나 광활한 시베리아 풍경이 아니라, 곳곳에 보이는 중국어다.
상점 간판, 메뉴, 호텔 브로셔, 심지어 일부 교통 표지판에도 이제 중국어가 표기되어 있다. 작년 말 블라고베셴스크 현지인들은 국경 다리 근처에서 중국어로만 표기된 새로운 시내 방향 표지판을 목격했다. 논란이 일자, 결국 러시아어가 병기된 표지판으로 교체됐다.
이것은 합병은 아니지만, 심대한 변화의 가시적 징표다. 이 도시들이 아무르강 건너편 중국에서 오는 무역, 관광, 투자를 좇으며 남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두 개의 새로운 육상 연결로가 두 나라 사이의 간격을 좁혔다. 러시아와 중국 간 첫 번째 자동차 도로 교량이 2022년 6월 블라고베셴스크-헤이허에 개통됐고, 첫 번째 철도 교량(퉁장-니즈네레닌스코예)이 2022년 11월 교통 개방됐다. 이러한 교량들은 강을 해자(垓子)에서 중심가로 바꾸어 놓았으며, 양방향으로 사람, 목재, 광석, 소비재를 이동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이 러시아 극동을 ‘장악’하고 있는 것일까?
무력으로는 아니지만 경제, 인프라, 미묘한 영향력을 통해 이 지역을 모스크바보다 베이징에 더 밀착시켰다는 점에서는 그렇다.
러시아 동부의 풍부한 자원과 전략적 가치
이러한 현상은 러시아 동부의 더 광범위한 전략적 상황을 반영한다. 러시아 동부는 바이칼 호수에서 태평양까지 이어진 광대한 지역으로, 500만 평방마일(1300만 평방킬로미터) 이상, 즉 러시아 영토의 77%를 차지한다. 텅 빈 불모지가 아니라, 수 세기 동안 세계 열강들의 탐욕스러운 시선을 끌어온 자원의 보고이다.
이 지역의 풍부한 에너지는 전설적이다. 중국으로 원유를 직접 공급하는 동시베리아-태평양(ESPO) 송유관과 2019년 시작된 30년 계약하에 중국에 가스를 공급하는 시베리아의 힘-1 등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공급되는 막대한 석유와 가스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광물 또한 풍부하다.
2025년 2월 러시아 천연자원부에 따르면 금, 팔라듐, 핵심 희토류 등 29종의 광물이 총 6억5800만 톤 매장돼 있다. 팔라듐은 자동차 촉매제와 전자제품에 필수적인 광물이며, 시베리아는 전 세계 팔라듐 수요량의 절반 이상을 공급한다.
지상에서는 울창한 삼림에서 목재를 채취, 수출하고, 중국에 임대한 광대한 농지에서는 대두를 재배한다. 오호츠크해와 태평양 연안은 어업의 금광으로, 연어, 명태, 게를 생산한다. 러시아 어선들은 2025년 2월까지 명태만 33만 톤 이상을 어획했으며, 과학자들은 2026년에 최대 242만 톤만 잡으라고 제안하고 있다.
이 지역은 세계 해산물 어획고에 있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역사적으로 약 10% 수준이지만 정확한 수치는 할당량과 기후에 따라 변동한다. 전략적으로 러시아 동부의 지리적 위치는 중국, 몽골, 북한, 태평양과 인접해 모스크바보다 베이징이나 도쿄에 더 가깝다. 러시아의 취약한 변경이자 동시에 영향력 투사를 위한 교두보이다.
중국의 은밀한 침투
중국은 이 지역을 노리되 노골적으로 정복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대신 파이프라인, 돈, 끈기를 동원해서 인내심 있게 침투한다.
ESPO와 시베리아의 힘-1은 러시아산 석유가 중국으로 바로 수출되도록 연결했고, 베이징은 파이프라인 건설과 거래에 자금을 지원한 대신 할인을 받는다. 몽골을 경유하는 후속작인 시베리아의 힘-2는 2025년 5월 현재 활발한 협상 중에도 교착 상태로 남아 있다. 중국이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를 쥐어짜서 더 나은 조건을 얻으려 하는 것이다.
금융 분야에서는 위안화가 지배적이며,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가 시작된 후 더욱 그렇게 됐다. 러-중 무역의 95% 이상이 위안화나 루블로 결제되고 있으며, 이 수치는 전체 무역량이 상반기 1064억8000만 달러로 9% 감소했음에도 2025년까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위안화 국제화의 실험장이 됐다. 중국 은행들은 미국의 2차 제재 위협을 핑계로 러시아와의 거래에 있어 필요할 때는 결제를 지연시킨다.
무역에 있어서도 상황이 비슷하다. 서방의 러시아 제재 후 서방 자동차 브랜드들이 러시아에서 철수하자 중국 차량들이 그 공백을 메웠다. 2025년 상반기에 중국 차량들이 러시아 시장 점유율 55~57%를 기록했다. 2024년의 60%에서 약간 하락했는데, 이는 현지 제조업체들을 보호하기 위한 모스크바의 관세 인상과 ‘재활용 부담금’ 때문이다. 전자제품, 기계, 소비재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상점 진열대를 ‘메이드 인 차이나’ 상표가 가득 채우고 있다.
산림, 농장, 어업이 러시아와 중국의 유대를 더욱 깊게 한다. 중국 기업들이 자바이칼스키 크라이의 광활한 부지를 임차하고, 허가하에 목재를 벌채하고 있다. 또 중국 어선들은 태평양 어획량을 독점하고 중국 남부에서 가공함으로써 러시아의 식량 안보를 중국에 의존하게 만들고 있다.
경제적 비대칭과 지역적 의존성
러시아의 극동 지역 주지사들에게 이것은 달갑지 않은 일이 아니라 생존이 걸린 문제다. 모스크바가 이 지역을 방치한 역사는 1990년대 초 소련이 붕괴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앙계획경제의 붕괴는 심각한 경제적 혼란과 극적인 인구 이탈을 촉발했다.
1991년 이후 러시아 극동 지방은 인구의 4분의 1 이상을 잃었다. 약 800만 명에서 2010년대까지 약 600만 명으로 감소했으며, 공식 통계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10년 사이에만 175만 명이 줄었다. 이러한 인구 감소는 중앙정부의 만성적 투자 부족으로 인한 것이다. 특히 동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에서의 자금 부족과 부진한 개발은 지속적인 인프라 붕괴, 부적절한 의료와 교육, 교통망 쇠락을 초래했다.
많은 현지인은 모스크바가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동을 변방으로 취급하며 서부 지역을 우선시한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는 높은 생활비, 혹독한 기후, 제한된 일자리 기회 등의 문제를 악화시켜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같은 도시로의 이주를 촉진한다.
러시아 민족을 동쪽으로 이주시키려는 인센티브 등의 노력은 부족했고, 인프라는 방치된 채로 남은 상태에서, 러시아 극동 지역 지도자들은 중앙정부 대신 현금, 인력, 프로젝트를 제공하는 베이징에 의지하게 됐다. 중국 건설업체들이 도로를 건설하고, 중국 농부들이 땅을 경작하며, 중국 은행들이 대출을 해준다. 결과는? 러시아 극동 지역은 크렘린보다 하얼빈과 경제적으로 더 밀접하게 연계된 지역이 됐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파트너십
이러한 비대칭성은 양국이 합의한 “무제한 파트너십”이라는 수사와는 다르게 양국 관계를 재편하고 있다.
에너지 분야에서 시베리아의 힘-2 준공을 지연시키는 것은 특히 유럽에 대한 수출이 금지된 상황에서 모스크바를 가격 수용자로 전락시킨다. 위안화 지배는 달러에 비해 러시아에 안정성을 제공하지만 러시아를 베이징의 변덕에 노출시킨다. 지역 통합은 러시아 극동 지역들을 중국으로 끌어당긴다. 시장과 투자자들이 더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베이징은 러시아에 대한 지원 수준을 조율한다. 러시아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에는 충분하지만 강력한 동맹으로 성장하기에는 부족하게 지원하는 것이다. 이란을 생각해 보라. 2024년 이란과 이스라엘 간에 긴장이 고조됐을 때 중국은 이란에 군사적 지원이나 유엔을 통한 외교적 지원을 제공하지 않았다. ‘파트너’를 방어하는 것보다 석유를 우선시했다. 동맹을 지킨 것이 아니라 장사를 했다.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석유를 확보한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장기 전략
이는 단순한 기회주의가 아니라 중국공산당(CCP)의 장기 전략에 부합한다.
중국은 미국 해군이 차단할 수 있는 말라카해협 같은 취약한 해로를 피하고 러시아 동부를 통해 육상으로 석유, 가스, 금속을 확보하고자 한다.
러시아는 위안화 국제화를 위한 실험장이다. 양자 무역의 95%가 현지 통화로 이뤄지며 일대일로 파트너들을 위한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의존성은 영향력을 확대한다. 중국의 대출과 인프라 건설은 아프리카 광물이나 라틴아메리카 석유 거래의 패턴을 반영한다. 형식적 주권은 인정하되 조건은 중국이 좌우하는 것이다. 중국과의 유착이 더 깊어질수록 러시아는 서방으로부터 분리된다. 이는 향후 러시아가 서방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게 된다.
일시적 동맹: 역사적 긴장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원래 친한 사이가 아니다. 양국은 역사적으로 충돌이 잦았다. 1960년대 중소 분쟁은 1969년 우수리강 충돌로 절정에 달했다. 당시 모스크바는 핵 옵션까지 고려했다. 19세기에 러시아는 식민지 개척자로서 동쪽으로 영토를 확장했고, 당시 청나라는 불평등 조약을 통해 영토를 상실했다. 두 나라는 이러한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세계관도 갈린다. 러시아는 완충지대를 추구하는 포위된 제국이다. 중국은 경제를 무기로 삼아 세력을 확장하는 공산주의 체제다.
오늘날 양국 간 파트너십은 러시아의 고립 속에서 태어난, 실리에 기반한 관계이지만, 부서지기 쉽고 불평등하다.
허구 대 현실, 그리고 인간적 요소: 톰 클랜시의 교훈
톰 클랜시의 2000년 소설 “곰과 용”이 이를 섬뜩하게 예견했다. 작품에서 위기에 몰린 중국이 자원을 구하려 시베리아를 침공한다. 클랜시는 상황을 정확히 짚었다. 시베리아의 자원, 도전자로서의 중국, 스윙 스테이트로서의 러시아. 하지만 그는 중국공산당의 전략과 본질을 잘못 파악했다. 중국의 영토 확장은 탱크가 아니라 계약을 통해 이뤄졌다. 더 조용하고 더 효과적이다. 클랜시의 소설에 나오는 합리적인 당 원로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러시아는 서방과 화해하는 것보다 베이징에 의존하는 쪽을 택했다. 소설에서 러시아는 미국 대통령 잭 라이언의 진실성과 전략적 통찰에 감동해서 입장을 바꾼다. 허구이지만, 지도자들이 중요하다. 우리는 중국공산당 지도자 시진핑의 기질을 봤다. 만약 미국, 유럽, 또는 아시아의 지도자들이 인격과 역량을 겸비한다면, 러시아도 동맹을 바꿀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인물들에 대한 논쟁이 소용돌이치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를 초월한다. 서방의 현명한 선택은 러시아가 중국공산당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잠재적 탈출구: ‘평화 통로’
만약 미국과 동맹국들이 러시아에 탈출구를 제공한다면 어떨까?
‘평화 통로’를 만들어 팔라듐이나 티타늄 같은 러시아 동부의 자원을 일본과 한국으로 수출하도록 하되 이를 우크라이나 휴전 준수와 연동시키자는 것이다. 대금 지불은 러시아가 약속을 위반할 경우에 대비해서 제3자에게 예치할 수 있다. 러시아는 다각화된 구매자들을 확보하여 베이징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고, 동맹국들은 광물을 확보하여 공급망을 강화할 수 있다. 중국은 결국 영향력을 잃는다.
넘어야 할 위험은 많다. 집행에 따른 세부적인 문제, 대중의 반발, 중국의 보복 가능성 등이 있다. 그러나 만약 성사될 경우의 보상을 생각해 보자. 우크라이나 구제, 서방 동맹국들의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러시아인들에게 중국공산당에 의존하는 것 이외의 대안을 엿보게 할 수 있다.
결론
러시아 극동 지역에 있는 중국어 표지판들은 현재 진행 중인 기울기를 상징한다. 러시아 동부의 파이프라인, 시장, 통화가 중국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자원, 위안화 실험, 지정학적 쐐기를 확보하여 모스크바의 주권을 침식시켰다. 소설가 클랜시는 중국이 러시아를 침공해서 얻은 것은 제대로 파악했지만 그 방법은 놓쳤다. 군사력을 동원한 침공이 아니라 거래였던 것이다. 그러나 평화 통로 같은 창의적인 전략을 펼치는 믿을 만하고 유능한 지도자들이 있다면, 아마도 균형추를 다시 맞출 수 있을 것이다.
*한강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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