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분석] 흔들리는 시진핑 체제, 베이다이허에서 균열 조짐

2025년 07월 26일 오후 12:32
2025년 3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식 당시 시진핑 국가주석이 자리를 떠날 때 참석자들이 일어서서 배웅하고 있지만 장유샤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은 홀로 등을 돌린 채 가방을 싸고 있다. | AP/연합2025년 3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식 당시 시진핑 국가주석이 자리를 떠날 때 참석자들이 일어서서 배웅하고 있지만 장유샤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은 홀로 등을 돌린 채 가방을 싸고 있다. | AP/연합

당 원로·군부·경제 위기 삼중 압박…권력 재편 신호탄 되나

8월 초로 예정된 중국공산당의 비공식 여름 회의, 베이다이허 회의가 중공 정치권에 미묘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당 지도부의 휴양 행사지만, 실상은 권력 핵심부에서 벌어지는 비공식 정치 협상의 장이다.

홍콩의 친중 매체 《성도일보》는 지난 7월 23일, “당 최고지도부가 8월 상순부터 베이다이허에서 2주간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가 “중공 지도부의 8월 중 비공개 고위 회의”를 언급하며 국제사회도 그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해변 휴양지의 가면을 쓴 권력 무대

베이다이허 회의는 1950년대에 시작된 공산당의 오랜 비공식 전통이다. 당 고위층이 해변 휴양지에서 국정을 논의하던 관행은 2003년 후진타오 집권 이후 공식 회의 체계로는 사라졌지만, 관례로서 비공식 모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시진핑 집권 이후에는 당내 토론 문화가 현저히 위축되며, 이 회의는 더욱 은밀한 권력 협의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은퇴한 원로와 현직 지도부가 공식 기록에 남지 않는 방식으로 정치적 균형과 정책 방향을 조율하는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조용한 휴양지 모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중공 정국의 향배를 가름하는 숨겨진 전장에 가깝다.

특히 후계 구도가 사실상 사라지고, 시진핑의 장기 집권 체제가 굳어지면서, 이 회의의 성격도 달라졌다.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 봉쇄된 구조 안에서, 유일하게 원로들이 현직 지도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통로가 바로 이 베이다이허 회의다. 이 때문에 ‘숨겨진 정치국 상무위원회’라는 표현이 과장만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2023년 ‘질책 회의’와 사라진 상무위원들

2023년 베이다이허 회의에서는 전례 없는 장면이 연출됐다. 일본 《닛케이 아시아》는 당시 회의에서 시진핑이 복수의 공산당 원로들로부터 강한 질책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 배경에는 로켓군 부패 스캔들, 외교부장 친강의 갑작스러운 실각, 헝다그룹 채무불이행 등 연이은 악재가 있었다. 당내 신뢰 위기가 임계점에 도달한 시점이었다.

이례적이었던 건 회의 일정의 불투명성이다. 8월 16일이 되어서야 정치국 위원 일부가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시진핑을 포함한 상무위원 7명은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는 회의 내부에서 상당한 갈등이 있었고, 지도부 내부에서 이견이 극심했음을 방증한다.

당시 내부 상황을 아는 소식통에 따르면, 원로들은 시진핑의 ‘권력 집중’과 ‘정책 실패’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집단지도체제의 부활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고 한다. 장쩌민 시대의 상호견제 시스템이 사라진 뒤, 중공 지도부는 ‘시진핑 절대화’라는 길을 택했지만, 그 부작용이 누적되면서 원로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중공식 권력 유지 방식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형식적으로는 중앙집중이지만, 실제로는 비공식 조율과 ‘중앙과 원로 간 밀실 협상’에 의존해야 하는 정치 시스템은,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불안정하고 복잡하다.

경제 위기와 함께 터져 나온 원로들의 반격

2024년 20기 3중전회의 지연 역시 이러한 내부 갈등의 연장선상에 있다. 통상 당 대회 이후 1년 내 열리는 것이 관례지만, 3중전회는 그 일정이 비정상적으로 늦춰졌다. 공산당 기관지 《구시》는 지난해 8월 15일 “시진핑이 3중전회에 앞서 원로들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전했다. 이는 절대 권력으로 비쳐지는 시진핑조차 원로들의 협조 없이는 주요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정치 구조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해외 시사평론가들에 따르면, 당시 원로들이 제시한 의견은 30개가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 내용은 ▲집단지도체제 복원 ▲경제 전문가의 실권 회복 ▲인사 파벌 청산 ▲공안부 특근국 해체 및 왕샤오훙(공안부장) 교체 등 시진핑 체제의 핵심을 겨냥한 것이었다. 이처럼 당내 원로들이 시진핑의 ‘소수 측근 중심 통치’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이러한 반격이 단지 불만 표출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진핑의 장기 집권에 따른 지도층 내 피로감, 당-군-정보 조직 간 불균형, 그리고 경제 실정에 대한 간부들의 책임 회피 심리가 결합되며, 체제 전반에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당내 파벌 간 긴장도 심화하고 있다. 시진핑의 ‘절대 충성’ 인사 원칙은 당내 정치인들의 경로와 발언권을 차단했고, 이는 과거 상호 견제를 가능하게 했던 ‘태자당 대 공청단’ 구도의 잔재들까지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권력의 집중은 책임의 집중으로 이어져 내부 균열을 더욱 자극하는 양상이 되고 말았다.

2025년, 시진핑 체제의 전환점 될까

중공은 지금 미중 경쟁, 외자 이탈, 장기 침체, 당내 불안정이라는 ‘4중 위기’에 직면해 있다. 경제 성장률은 둔화되고 청년 실업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외국 기업들의 철수도 가속화되고 있다. 절대 권력처럼 보였던 시진핑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내에서는 시진핑의 독주 체제에 대한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그는 정치국과 상무위원회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외교·안보·경제 전반을 측근 중심으로 장악했다. 이로 인해 정책 실패의 책임이 모두 시진핑에게 집중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은퇴 원로들과 현직 지도부 간의 갈등도 점차 드러나고 있다. 일부 원로는 제로 코로나, 민영기업 규제, 부동산 억제 등 시진핑의 정책이 경제 기반과 사회 신뢰를 훼손했다고 보고 있다. 이번 베이다이허 회의에서는 집단지도체제의 복원과 일정한 권력 분산을 요구하는 비공식 의견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최근 군부와 공안계 숙청도 주목된다. 로켓군 고위층의 잇단 실각, 국가안보부 등 정보기관의 재편, 무장경찰의 당 중앙 통제 강화는 모두 시진핑이 체제 내부의 반발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이 같은 강경 조치는 오히려 군·정보기관 등 핵심 권력 집단의 불신과 긴장을 키우면서, 그 칼날이 시진핑 본인을 향한 부메랑이 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2025년 베이다이허 회의는 시진핑 체제가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될 수도, 권력 균열이 본격화되는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 공식 발표도, 영상도 없는 이 ‘침묵의 회의’는 아이러니하게도 중공 정치의 향방을 가늠하는 가장 민감한 풍향계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여름, 바닷바람 부는 베이다이허에서 중공 미래의 새로운 장이 열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