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 화려한 색깔을 두려워하게 됐을까?

세상이 온통 치과 대기실처럼 밋밋하고 심심해진 건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한때는 세상에 온갖 색깔이 넘쳐났다. 마치 크레파스를 쥔 어린아이가 하얀 벽을 신나게 물들이듯, 모든 것이 대담하고 화려한 색상으로 가득했던 시절 말이다.
자동차는 그저 이동수단이 아니었다. 도로 위를 활보하는 공작새처럼 강렬한 존재감을 뽐냈다. 눈이 시릴 정도로 선명한 주황색, 당당하고 거리낌 없는 청록색, 위험 표지판처럼 시선을 사로잡는 노란색까지. 도로는 매일이 컬러 축제였다.
주방 카운터 위 토스터는 또 어땠나. 번트 오렌지와 아보카도 그린 같은 색깔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벽지 무늬는 마치 누군가 정신줄 놓고 그린 듯 정신없었지만 나름대로 신명났다. 한마디로 그 시절은 ‘정신없지만 즐거운 난장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지금 우리는 회색과 베이지 사이 어딘가에서 망설이는 ‘그레이지’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개성도, 취향도, 생기도 잃은 채 말이다.
무채색에 빠진 세상…그레이지의 시대
요즘 주차장에 한번 들어가 보자. 마치 흑백영화 속 디스토피아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흰색, 검정, 회색의 지루한 행렬.
가끔 아주 용기 있는 사람이 ‘은색’ 정도를 골라 반항(?)을 시도하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예전 자동차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했다. 핫핑크 컨버터블은 “어때, 멋지지? 난 제대로 인생을 즐길 줄 알아!”라고 외쳤고, 라임색 해치백은 “난 감가상각 따위는 몰라. 중요한 건 분위기 아니겠어?”라고 속삭였다.
하지만 지금의 자동차들은 어떤가. 마치 무채색의 제복을 입고 장례식장에 가는 사람들처럼 근엄하고 조용히 늘어서 있다.
사람들이 회색 차를 선택하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안전빵’이기 때문이다.

2023년 5월 30일, 캘리포니아 샌리앤드로에 위치한 한 자동차 대리점 매장에 현대자동차의 신차들이 전시되어 있다.Justin Sullivan/Getty
물론 충돌 안전 때문이 아니다. 중고로 팔 때 얼굴 빨개질 일이 없기 때문이다. 괜히 멋 부리려고 빨간 컨버터블이라도 샀다간, 중고차 딜러가 난감해하는 감가상각표에서 외톨이가 될 테니 말이다. 결국 우리는 눈치를 보고 타협을 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판매되는 신차의 80%가 무채색 계열이다. 그중 놀랍게도 흰색이 25%로 1위를 차지했고, 회색이 21%, 검정이 20%로 뒤를 잇는다. 이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업계 관계자들 말에 따르면, 이런 ‘안전한 색’이 중고차로 되팔 때 제값 받기 좋다고 한다. 카나리아 옐로 같은 과감한 색을 골랐다가는 나중에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색만 찾는 사람들 틈에서 바보 되기 십상이다. 자동차 제조사도 이 흐름을 잘 알고 있기에 과감한 색은 아예 포기했다. 주황색은 고작 0.6%, 보라색은 간신히 0.1%의 명맥만 유지 중이다.
모든 게 베이지로 물든 세상
비단 자동차만의 얘기가 아니다. 요즘엔 모든 게 무채색으로 물들어 버렸다.
한때 밝은 파란색과 흰색 로고로 경쾌했던 HBO마저 이제는 단색으로 바뀌었다. ‘심플함 추구’가 이유란다. 마치 중년 남성이 어느 날 갑자기 머리를 짧게 깎고는 “깔끔하고 편해서 좋아”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제품 포장도, 집 안 인테리어도, 옷장 안의 옷들도 모두 비슷한 팔레트다. 크레파스를 든 아이가 보기에 너무 심심해서 바로 집어 던질 만한 색깔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이게 최근의 현상은 아니다. 영국 과학박물관이 7천 점의 물건을 분석해 보니, 색깔이 우리 삶에서 멀어진 건 이미 산업혁명 때부터였다. 그 이전엔 물건마다 아름답고 화려한 색상과 수작업의 개성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공장 생산이 시작되면서 모든 게 효율적이고 일률적으로 변했고, 색깔이 가져다주던 소소한 즐거움도 함께 사라졌다.
그런데 진짜 기막힌 사실은 따로 있다.
이건 단순히 미적 취향이나 세련된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색을 멀리하게 된 진짜 이유는 바로 ‘두려움’이다.

2024년 8월 19일, 호주 시드니의 가디갈 메트로역에서 통근자들이 이동하고 있다.Lisa Maree Williams/Getty Images
어느 순간부터 사회 전체가 ‘드리프트우드 애쉬(나무 재처럼 흐릿한 회색)’보다 선명한 색을 위험하다고 느끼게 됐다. 그래서 가능한 한 무난하고 튀지 않는 색만 고집하게 됐다.
마치 청록색 냉장고나 겨자색 목도리가 온 사회의 질서를 한꺼번에 무너뜨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핑크와 보라색 물방울 무늬처럼 말이다)
다행히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멋지고 화려한 반란이 시작되고 있으니까.
한때 ‘순백의 깔끔함’을 내세우며 하얀색 제품만 줄곧 내놓던 애플이 최근 다시 컬러풀한 iMac을 출시했다. 페인트 회사들은 선명하고 당당한 색깔을 찾는 손님이 점점 늘고 있다고 말한다.

지역 예술 단체인 ‘타이오 페이마오리’가 손수 그린 등불들이 올해 완차이 블루하우스에 처음 전시되었다. 이 등불들은 9월 3일에 점등되어 스톤 눌라 레인에 생동감 넘치는 색채를 더했다. T M Chan/The Epoch Times
인스타그램엔 보석처럼 반짝이는 쥬얼 톤으로 벽을 칠한 사진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심지어 빨간색 식당 인테리어가 다시 인기를 얻으면서, 식사 자리를 셰익스피어 연극의 한 장면처럼 근사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이 반란이 영원히 계속되리란 보장은 없다. 세상의 취향은 늘 화려함과 절제를 반복하며 변화하니까. 오늘의 베이지가 내일의 사이키델릭 무늬 벽지로 변신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실용성’이란 이름으로 미적 기준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색깔 없는 세상은 단지 심심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비극 그 자체다.
마치 요즘 유행이라는 이유로 생크림과 장식 하나 없이 밋밋한 케이크를 내놓는 것과 같다. 케이크는 있겠지만, 즐거움은 없다.
설탕 가루가 화려하게 뿌려진 기쁨, 버터크림의 화려한 사치, 그 불필요하지만 멋진 여유가 없다면, 인생은 그저 퍽퍽한 카스텔라 조각일 뿐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런 인생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다.
*박병원 기자가 이 기사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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