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세상의 문을 연 교사, 앤 설리번의 길

2025년 11월 08일 오후 4:33
1899년, 평생의 벗이자 스승인 앤 설리번(오른쪽)과 헬렌 켈러(왼쪽). 오른쪽은 1909년경의 두 사람. | 퍼블릭 도메인1899년, 평생의 벗이자 스승인 앤 설리번(오른쪽)과 헬렌 켈러(왼쪽). 오른쪽은 1909년경의 두 사람. | 퍼블릭 도메인

시청각장애 소녀 헬렌 켈러에게 세상을 열어준 스승 앤 설리번. ‘품성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When Character Counted)’ 시리즈의 이번 편은, 고통과 역경 속에서도 배움과 믿음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한 한 젊은 교사의 성장 과정을 조명한다.

1887년 4월 5일, 앤 설리번(1866~1936)은 후원자이자 친구인 소피아 홉킨스에게 그날 아침 일어난 뜻깊은 사건을 편지로 전했다.

“우리는 펌프실로 나갔어요. 헬렌에게 컵을 펌프 밑에 들게 하고 내가 물을 퍼 올렸지요. 차가운 물이 쏟아져 컵을 채우는 동안, 헬렌의 다른 손에 ‘w-a-t-e-r’라고 손가락으로 철자를 짚어 주었어요. 차가운 물이 손 위로 흐르는 느낌과 단어가 맞닿는 순간,  그녀는 깜짝 놀란 듯 컵을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서 있었어요. 얼굴에는 새로운 빛이 비쳤고, 그녀는 ‘물(water)’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철자했어요.”

다음 날 설리번은 이렇게 덧붙였다. “오늘 아침 헬렌은 빛나는 요정처럼 일어났어요. 헬렌은 물건에서 물건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이름을 묻고,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내게 입을 맞추었어요.  어젯밤 내가 잠자리에 들자 그녀가 스스로 내 품에 안겨 와 생전 처음으로 내게 입을 맞추었지요. 내 가슴은 기쁨으로 터질 듯했어요.”

이렇게 설리번은 훗날 헬렌 켈러의 자서전에 기록될 그날의 기적, 여섯 살의 시청각장애 소녀가 스승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의 문을 연 순간을 글로 남겼다.

1888년 7월, 매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 브루스터에서 휴가 중인 여덟 살의 헬렌 켈러와 가정교사 앤 설리번. | 뉴잉글랜드 역사·계보학회

가난과 시련 속, 디킨스 소설 같은 어린 시절

설리번은 다섯 살 무렵, 세균 감염으로 생기는 안질(트라코마)에 걸려 시력을 심각하게 잃었다. 이후 평생 그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불우한 어린 시절은 제자 헬렌과 전혀 달랐다.

부유한 가정의 딸이었던 헬렌과 달리, 설리번은 매사추세츠 서부의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폭력적이었으며, 어머니가 설리번이 여덟 살 때 세상을 떠나자 세 자녀를 버렸다. 이모는 여동생 메리를 맡아 길렀지만, 설리번과 남동생 지미는 빈민과 정신질환자들이 함께 수용된 악명 높은 티욱스버리 구빈원으로 보내졌다. 허약했던 지미는 세 달 만에 결핵으로 사망했고, 설리번은 이후 2년간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혼자 살아야 했다.

1877년, 구빈원의 참혹한 실태가 드러나 조사가 시작되자 설리번은 잠시 로웰 병원 수녀들에게 맡겨졌다. 하지만 그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곧 다시 티욱스버리로 돌아와야 했고, 이번엔 미혼모와 임산부들이 지내는 병동으로 옮겨졌다. 그즈음 설리번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학교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사추세츠 주 자선감독관이 시설을 방문하던 날, 그녀는 용기를 내 앞으로 나서 외쳤다. “샌본 씨, 저 학교에 가고 싶어요!”

기회의 문을 두드리다

그날의 용기가 설리번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1880년 10월, 그녀는 매사추세츠 워터타운에 있는 퍼킨스 시각장애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처음 2년 동안은 다른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거칠고 쉽게 흥분하는 성격 때문이었다.  8년 뒤, 설리번은 후원자 소피아 홉킨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당신은 외롭고 문제투성이였던 내게 어머니의 사랑을 주셨어요. 내 경솔함 때문에 얼마나 걱정이 많으셨을까요.” 그녀는 같은 편지에서 당시의 자신을 “성급한 성격과 건방진 혀를 가진 소녀”라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킨스의 첫 졸업생 로라 브리지먼을 비롯한 여러 교사들이 설리번을 아꼈고, 그들의 가르침과 그녀의 강한 의지가 더해져 결국 설리번은 수석으로 졸업했다.

졸업식 연설에서 설리번은 이렇게 말했다. “의무는 우리에게 행동하는 삶으로 나아가라고 명합니다. 우리는 기쁘고, 희망차고, 성실한 마음으로 우리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을 찾았다면, 기꺼이 충실하게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극복하는 모든 어려움과 이뤄내는 모든 성공은 인류를 신께 더 가깝게 이끌고, 세상을 그분의 뜻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할 것입니다.”

1912년 매사추세츠주 왓ertown의 퍼킨스 시각장애학교 하우 빌딩. | 퍼블릭 도메인

이런 신념과 학생으로서의 뛰어난 성취 덕분에 설리번은 졸업하자마자 첫 교직의 기회를 얻었다. 앨라배마주 터스컴비아의 아서 켈러가 어린 딸의 가정교사를 찾는다는 편지를 퍼킨스 학교에 보내자, 교장 마이클 아나그노스는 주저 없이 설리번을 추천했다.

새로운 세상을 열다

설리번은 뉴잉글랜드와 전혀 다른 남부의 문화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두려움을 느꼈지만,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그날 나는 미래가 나에게 좋은 것을 안겨줄 거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날 만난 야생적이고 시청각장애를 가진 소녀와 반세기 동안 스승이자 벗으로 함께하며, 결국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 제자가 곁을 지킬 것이라는 사실을.

1888년 5월, 설리번이 터스컴비아에 도착한 지 불과 15개월 만에, 두 사람은 헬렌의 학습 성과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해, 설리번과 헬렌, 그리고 켈러 부인은 워싱턴을 방문해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을 다시 만나고, 처음으로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을 알현했다. 이후 보스턴에서는 대중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으며, 아나그노스 교장은 켈러 부부를 설득해 헬렌을 퍼킨스 학교에 입학시키고 설리번을 계속 스승이자 멘토로 두게 했다.

앤 설리번은 인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보여주는 매혹적인 사례다. 학대와 고통, 상실로 점철된 어린 시절, 퍼킨스 학교에서 받은 교육과 사랑, 그리고 그녀의 잠재력을 믿어준 교사들의 신뢰 — 이 모든 것이 헬렌 켈러의 삶을 이끌 준비가 된 젊은 여성을 만들어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헬렌은 작가 마크 트웨인을 만나 둘은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트웨인은 헬렌의 젊은 스승이 이룬 놀라운 업적에 감탄하며, 처음으로 앤 설리번을 ‘기적의 스승(miracle worker)’이라 불렀다.

매사추세츠주 피딩힐스에 있는 앤 설리번 기념비. | 네빌2023 / CC BY SA

*박은주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