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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내려옴’…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2025년 12월 23일 오전 10:34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의 '양치기들의 경배', 1485년 작품 일부 | 퍼블릭 도메인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의 '양치기들의 경배', 1485년 작품 일부 | 퍼블릭 도메인

크리스마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반짝이는 일루미네이션과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캐럴, 선물을 고르는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 찬바람이 불면 거리 곳곳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연출된다. 12월 내내 이어지는 크리스마스의 설렘은 우리를 일상과 분리된 또 다른 차원의 순수한 세계로 인도하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이 시기에는 사람들의 마음에 선한 온기가 더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 사람에게도 고마움을 전하는 반추의 시간은, 때때로 어려운 이들에게 베푸는 선의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는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날이 주는 선물 같은 이런 순간순간을 좋아하고, 그래서 크리스마스를 정말 사랑한다.

니케아 신경으로 살펴 본 크리스마스의 의미

어쩌면 내가 크리스마스를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는 늘 근본적인 결함이 있었고, 상업화와 함께 본래의 가치가 훼손된 것도 사실이다. 그럼 크리스마스는 도대체 무엇에 관한 것이고,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그토록 크리스마스를 기다릴까?

저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내게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니케아 신경(信經) 속 한 구절로 다가온다. 신조는 종종 격렬한 논쟁을 낳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는 이를 문자 그대로 혹은 신화적으로나 상징적으로,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석할 충분한 여지가 있다고 본다.

*니케아 신경(信經)은 서기 서기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채택된 기독교의 신앙고백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 교리를 담고 있으며, 가톨릭과 개신교 등 주요 기독교 교파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신조(信條, creed)다.

니케아 신경을 묘사한 성화 | 퍼블릭 도메인

그 구절은 바로 ‘그가 하늘에서 내려오셨다(He came down from heaven)’이고, 핵심은 ‘내려왔다(down)’라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는 바로 이 ‘내려옴’에 관한 것이며 그것이 신이 우리의 삶 안으로 다가오는 방식이다.

반대로 인간은 ‘위로’ 올라가고 싶어 한다. 더 올라가고, 더 많이 소유하고, 더 성장하기를 원한다. 인간은 스스로를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고 여긴다.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며 만족해한다.

그러나 신은 아래로 내려온다. 이 점을 기억한다면, 크리스마스는 우리가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도록 돕는 계기가 된다. 특히 직장에서 쓰고 다니는 온갖 가짜 자아, 허위의 자아상과 자기 연출을 내려놓게 한다. 대신 우리는 작은 일을 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으로 진짜, 혹은 더 진짜에 가까운 자신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쉬는 것이다.

신성한 힘을 빌어 내 안의 순수함을 찾는 과정

10여 년 전 나는 암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전까지 나는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었고, 한계를 몰랐다. 하지만 병원 침대에 누워 점점 쇠약해지면서 내 자아는 점점 사라졌다. 당시 나는 아기처럼 무력하고 의존적인 상태였다.

그제야 광활한 우주와 운명 앞에서 우리는 모두 아기처럼 연약한 존재이고 더 큰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성경 ‘시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 팔로 나를 구원할 수 없었음(own right arm could not save me)’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나 병원을 나선 후 죽음의 문턱에서 느꼈던 나의 연약함이 얼마나 실제적인 것이었는지를 쉽게 잊어버렸고, 나는 예전의 자기중심적인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고 말았다.

어떤 종교이든, 모든 종교에는 우리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는, 즉 내려오는 신이 있다. 크리스마스가 매년 상기시키는 게 바로 이 부분이다. 이는 신이 우리를 만나는 방식이자, 신은 과시할 필요가 없는 실재(實在) 그 자체라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이 간절히 바라는 것 역시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다.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반려동물이 언제나 진짜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애정도 언제나 진짜다. 고양이가 쓰다듬어 달라고 다가올 때, 거기에는 어떤 가장도 없다. 우리는 왜 아기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그것을 ‘순수함’이라고 부르지만, 본질적으로는 반려동물에게 느끼는 것과 같은 감정이다. 아기가 우리에게 미소를 지을 때, 그것은 언제나 진짜다. 거기에는 어떤 가장도 없다.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내면 속 순수한 ‘진짜 아기’를 만나게 해 준다. 자아도 없고, 모든 경험과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아기’ 말이다. 그 아기를 발견하는 일이 진정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닐까.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의 ‘양치기들의 경배’, 1485년 | 퍼블릭 도메인

이를 깨닫기 위해 반드시 기독교인일 필요는 없다. 무신론자 역시 이것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비범한 이야기라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우리 모두 잘난 체하는 자아의 산에서 내려와, 순수한 자신으로 돌아가 보자. 아기처럼 말이다. 만약 우리가 늘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더 나아질까.

크리스마스 때만이라도 이런 시도를 해 본다면 그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때만큼은 그렇게 해 보자.

니케아 신경의 그 찬란한 한 구절, ‘그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를 되새기며,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가 여러분의 마음과 정신 속에서 살아 움직이기를 바란다. 내려오는 것이 곧 길이다.

*이혜영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