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어원에 담긴 흥미로운 사실…진정한 詩의 내포를 찾다

제임스 세일
2024년 06월 12일 오전 11:00 업데이트: 2024년 06월 12일 오전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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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어원을 이해하면 언어의 구조와 형태, 변칙성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속에 내포된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서구권에서 시(詩)와 시인(詩人)을 뜻하는 말의 어원을 이해하면 추상적일 수 있는 시에 대해 깊은 성찰이 가능해진다.

시인과 시

‘영감’(1769),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 퍼블릭 도메인

시인은 영어로 ‘poet’라고 표기한다. 이 단어는 이탈리아어 ‘il poeta’를 어원으로 한다. 이탈리아어는 남성・여성 명사를 구분해 사용하는데, 남성 명사는 대부분 ‘o’로 끝나지만 여성 명사는 대부분 ‘a’로 끝난다. 또한 자음으로 시작하는 남성 명사 앞에는 ‘il’을 붙이는 특징을 지닌다. 시인을 뜻하는 il poeta에는 남성 명사와 여성 명사의 특징이 함께 들어 있다.

어원 파악하기

이탈리아어와 영어에서 시인은 비슷한 형태를 지녔다. 이는 모두 라틴어 ‘poéta’에서 유래했는데 이 단어는 ‘창조자’ 또는 ‘제작자’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은 창조자이지만, 인간은 창조된 존재다. 하지만 시인을 뜻하는 단어가 창조자에서 유래한 것을 보아 시인은 무언가를 창조하는 데 일조하는 인물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라틴어와 이탈리아어에서 시인을 뜻하는 단어가 여성 명사로 종결된 것은 단순한 문법적 우연이 아니다. 이탈리아어에서 시인은 양성의 양면을 모두 지닌다. 단어가 만들어질 당시 사람들은 시를 쓰는 건 한 가지 사고방식을 통해 가능한 게 아님을 알았다. 여러 시각에서 동시에 생각해야 가능한 일임을 이해했기에 두 성을 함께 표기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기원전 399년)는 “시인은 진정한 지식을 바탕으로 시를 쓰는 게 아니라, 마치 예언자나 점쟁이처럼 선천적 재능과 영감에서 나온 생각을 말한다”라고 지적했다.

그가 의미한 진정한 지식은 보통 합리적 지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시를 쓰는 것은 합리적이거나 이성에 따르는 일이 아니다. 영어로 영감은 ‘inspiration’이다. 이 단어의 어원은 ‘영혼에 들어온다’라는 뜻이다. 이처럼 시인은 영혼에 자극을 받아 영감을 얻어 시를 쓰게 된다.

‘시인의 꿈’(1899), 가브리엘 조셉 페리에 | CC BY-SA 4.0

영혼은 라틴어로 ‘anima’이다. 이 또한 여성 명사로 표기되는 것으로 보아 영혼 또한 여성적 의미를 지님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인, 즉 창조자는 남성적이지만 내면에 여성적인 영혼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현대적 이해

영국 출신의 신경정신과 의사 이언 맥길크리스트는 저서 ‘주인과 그의 사자 : 나뉜 뇌와 서양 세계의 형성’에서 뇌의 두 반구, 즉 우뇌와 좌뇌가 동등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양쪽 뇌가 모두 중요하지만, 우뇌는 주인이고 좌뇌는 사자(使者)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뇌가 더 통합적이며 큰 그림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뇌는 맥락을 찾고 이해하고, 의미를 해석하는 데 관여한다. 반면 좌뇌는 세부 사항과 선형 처리에 더 집중하고 분석적이며 논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두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우리가 향유하는 문화의 쇠퇴에 좌뇌가 사회를 지배한 것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지금 사회에서 좌뇌는 지식의 원천으로 여겨진다. 현대인들은 삶의 모든 측면을 체계화하고, 합리화하려 한다. 이런 면에서 성공한 이들에게 경제적 이익과 명예를 안겨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사진, 1929 | hulton Archive/Getty /images

그가 두 번째로 강조한 것은 우뇌는 삶과 즉각적인 경험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뇌는 어린아이가 단순하고 큰 그림을 보며 행동하고 생각하듯 자발적이라는 이야기다. 위대한 과학자이자 시인이었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상상력은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라는 말을 남긴 것처럼, 그는 넓은 시각을 통해 상대성 법칙을 발견하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지식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에 국한되지만, 상상력은 우리가 미래에 알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미래는 잠재적 무한함을 지녔기에 우뇌가 좌뇌보다 우수하다는 것이다.

좌뇌와 우뇌, 남성과 여성

‘아담과 이브의 유혹’(16세기), 지롤라모 마치에티 | 퍼블릭 도메인

과학적으로 증명되진 않았지만, 많은 문화권에서 우뇌는 여성적이라 생각했고 좌뇌는 남성적이라 여겨왔다. 시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에 이러한 관념이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 서양권에는 좌뇌가 사자가 아닌 주인처럼 여겨진다. 이는 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산업혁명 이후 쓰인 시는 대부분 좌뇌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적이고 추상적이다. 과거 대문호 스펜서, 셰익스피어, 밀턴과 같은 시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영국의 대문호 에드먼드 스펜서(1552~1599)는 위대한 시인 중 한 명이다. 그의 우화 장편 서사시 ‘요정 여왕’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여섯 명의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12가지 덕목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은 원래 12편으로 이뤄질 계획이었지만, 작가의 죽음으로 7편까지만 완성됐다.

‘포샤와 샤일록’(1778), 에드워드 앨콕 | 퍼블릭 도메인

최고의 극작가이자 시인으로 꼽히는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작품에서 다양한 성격의 여성이 등장한다. 그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 속 포샤는 여성적이지만 샤일록보다 명확한 논리와 지식을 지닌 남성적 특징을 지닌다. 또 다른 영국의 시인 존 밀턴(1608~1674)은 이브와 아담의 이야기를 다룬 대서사시 ‘실낙원’으로 낙원 상실의 비극을 말한다. 작품 속 이브는 직선적이며 고정관념을 벗어난 인물로 결국 아담의 논리를 꺾고 자기 뜻을 관철한다.

시인의 여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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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어원에 우뇌와 좌뇌가 함께 작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남녀 모두가 아름다움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역설의 대가라 불렸던 영국의 작가 G.K. 체스터턴(1874~1936)은 “남녀는 가장 분명히 구분될 때 서로를 가장 잘 보완하고 지지한다”라며 “남녀는 반대일 때 가장 잘 어울린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진정한 시의 기원은 여성성이 넓은 시야로 상상력을 동원해 영감을 주고, 남성성은 그를 현명하게 따르며 언어적 아름다움과 정확성을 더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진정한 아름다움이 탄생한다.

제임스 세일(James Sale)은 50권이 넘는 책을 출판한 작가다. 2017년 고전시인협회 연례 대회에서 1위를 수상했으며, 최근에 시집과 ‘최고 성과 팀을 위한 동기 부여 매핑’(Routledge, 2021)을 출판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