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빅토리아 시대 박물학의 황금기를 이끈 ‘과학·예술 융합’ 선구자들

2025년 07월 28일 오전 8:57
1892년 베아트릭스 포터가 쓴 편지. 포터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열정을 따라 자연을 기록한 작가의 사례였다. | 퍼블릭 도메인1892년 베아트릭스 포터가 쓴 편지. 포터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열정을 따라 자연을 기록한 작가의 사례였다. | 퍼블릭 도메인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박물학(natural history)에 푹 빠져 있었다”고 바바라 T. 게이츠는 『빅토리아 문학과 문화』 특집호 서문에서 썼다. 빅토리아 시대는 과학적 탐험과 실험이 폭발적으로 발달한 시기였지만, 이런 과학적 관심이 자연에 대한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매력을 없애지는 못했다.

오히려 서로 다른 두 가지 성향이 이 시대에 만나 하나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것, 다른 한편으로는 감각적이고 미적인 것 말이다. 게이츠의 표현을 빌리면, 당시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한 일은 ‘튼튼한 다리를 놓는 것’이었다. 과학과 예술 사이에, 자연을 노래한 낭만주의와 구체적이고 세밀한 묘사를 추구한 빅토리아 문화 사이에 말이다.

영국 샤프츠베리의 시골 정원. 자연의 소박한 아름다움은 여러 방면으로 영감을 준다. Katy Walters | CC BY-SA 2.0

자연에 대한 빅토리아 시대의 열정은 글쓰기와 그림 모두에서 나타났다. E.D.H. 존슨은 1770년부터 1880년까지를 ‘박물학 글쓰기의 황금기’라고 불렀다. 이 황금기는 에드워드 시대(1901-1910)는 물론 그 이후까지도 서구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에 자연을 연구하고 기록하는 일은 남녀노소,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활동이었다. 게이츠는 다음과 같이 썼다.

“박물학은 아마추어든 전문가든 누구에게나 열린 분야였기에 이 분야는 역사 전반에 걸쳐 양쪽 모두에 의해 채워졌다. 그것은 확실히 과학적 구성 요소뿐만 아니라 미적 구성 요소도 가지고 있었다. 나뭇잎의 사실적 정보와 나뭇잎의 아름다움 모두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두 명의 유명한 인물

사랑에 빠진 사람이 아름다운 시를 쓰듯이, 자연에 빠진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훌륭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냈다. 다양한 스타일로 작업한 이 시대 예술가들은 자연계의 놀라운 경이로움을 분류하고, 연구하고, 그려내는 데 온 힘을 쏟았다.

19세기 초부터 저명한 예술가이자 조류학자인 존 제임스 오듀본(1785-1851)은 북미 대륙의 모든 새를 찾아 그리겠다는 꿈을 품고 야생을 누볐다. 과학적 정확성과 뛰어난 예술성을 겸비한 그의 작업은 빅토리아 시대 자연주의의 특징을 미리 보여주었다.

1827-1838년 오듀본의 ‘아메리카의 새들’ 211번 판의 큰파랑왜가리. | 퍼블릭 도메인

오듀본의 새 그림들은 마치 꿈속에서 본 듯한 신비로운 광택을 띠면서도, 실제 자연에서 살아가는 새들의 모습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담아냈다. 사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이 작품들은 그의 대작 ‘아메리카의 새들’로 완성되었고, 지금도 새를 그리는 화가들의 기준점이 되고 있다.

오듀본이 하늘의 새들에 집중했다면, 또 다른 유명한 인물인 베아트릭스 포터(1866-1943)는 땅 위의 식물과 버섯과 같은 균류에 시선을 고정했다. 동물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사랑스러운 동화책으로도 유명하지만, 그녀는 실제로 뛰어난 식물학자이자 균류를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복잡하고 정교한 버섯 그림을 그렸고, 1897년에는 ‘버섯 포자의 발아에 관하여’라는 학술논문까지 발표했다. 런던 린네 학회는 이렇게 평가했다. “포터의 장점은 세심한 관찰력과 뛰어난 그림 실력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본 것을 정확히 관찰하고 충실하게 기록한 완벽한 화가였다.”

‘바늘에 실을 꿰는 생쥐들’, 1902년, 베아트릭스 포터. ‘글로스터의 재단사’를 위한 삽화. 종이에 수채화, 잉크, 구아슈. 테이트

포터의 동화책이 큰 성공을 거둔 이유 중 하나는 실제 자연 관찰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실제 식물과 동물들을 직접 보고 그리는 연습을 많이 한 덕분에, 나중에 동물 캐릭터들에게 옷을 입히고 작은 집을 만들어주는 상상력을 더했을 때도 진짜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이후 포터의 세심한 자연 관찰은 에디스 홀든(1871-1920)의 예술에서 메아리쳤다. 그리고 그녀의 기발하고 자연에서 영감을 받았던 아동문학은 시셀리 메리 바커(1895-1973)로 이어졌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공헌자들

홀든은 사후에 출간된 ‘1906년 자연 노트’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에드워드 시대 여성의 전원 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영국 시골에서 본 자연을 아름답게 기록한 삽화가 그려진 일기였다. 관찰 기록, 시 구절, 손글씨, 그리고 일반명과 학명을 함께 적은 정교한 수채화가 어우러진 작품이었다.

‘겨울 베리: 쥐똥나무, 장미 열매, 산사나무 열매’, 1906년, 에디스 홀든. | 퍼블릭 도메인

이 그림 같은 작품은 자연과 문학, 그리고 시각예술이 하나로 어우러진 작품이다. 빅토리아와 에드워드 시대 여성들이 이런 자연 일기를 쓰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버밍엄 예술학교와 시립 예술학교에서 전문 교육을 받은 홀든의 일기는 특별했다. 1970년대에 처음 발견되어 출간되었을 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바커의 작품은 덜 과학적이긴 했지만, 이전 세대의 자연 연구가이자 예술가였던 이들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은 분명했다. 16세에 크로이던 미술협회 평생회원이 된 그녀는 화가의 길을 걸으며 카드, 잡지, 책에 그림을 그렸다. 1923년 요정을 주제로 한 그림과 시 모음집 ‘봄의 꽃 요정’을 출간한 후, 사계절을 다룬 시리즈로 완성했다. 실제 식물과 연결된 환상적인 요정들을 그린 섬세한 삽화는 포터와 함께 더 광범위한 예술가로서의 자연 연구가들의 전통을 연상시킨다. 이 책들은 일종의 환상적인 자연 도감이라고 할 수 있다.

요정이라는 환상적 소재를 다뤘지만, 바커는 ‘자연에 대한 진실’이라는 원칙을 내세운 라파엘 전파 화가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이 원칙은 작가이자 강연자, 화가, 미술비평가인 존 러스킨이 제시한 것이었다.

자연에 충실하게

러스킨은 자연의 형태를 더 가깝게 따라할수록 도덕적, 영적, 철학적으로 더 높은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라파엘 전파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윌리엄 홀만 헌트, 존 에버렛 밀레이가 있었다.

‘물총새’, 1871년, 존 러스킨. 수채화 스케치. 영국 애슈몰린 박물관. | 퍼블릭 도메인

이 운동, 특히 그 풍경화들은 자연이 빅토리아 시대 예술에 미친 영향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라파엘 전파 화가들은 자연 속에서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정확히 그리는 데 집중했기 때문에 ‘야외에서 그리기’를 실천했다. 아트스퍼 매거진의 도미닉 위텍은 이렇게 썼다.

“라파엘 전파와 러스킨은 자연을 인위적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자연은 신이 주신 선물이었다. 밀레이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 눈앞에 있는 것을 최대한 충실하게 그리려고 노력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자연 예술은 캔버스나 스케치북을 통해서만 생명을 얻는 게 아니었다. 마사 맥스웰은 빅토리아 시대 미국의 자연 연구가이자 박제사였다. 그녀가 만든 박제 표본 중 일부는 지금도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실 박제술은 존 핸콕의 작업에서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핸콕은 ‘먹이를 둘러싼 투쟁’이라는 전시를 열었는데, 뱀장어를 물고 있는 왜가리를 매가 공격하는 장면을 박제로 만든 것이었다. 이 생생한 전시는 관람객들과 과학자들, 심지어 빅토리아 여왕의 관심까지 끌었다. 결국 이 시대 사람들은 박제 동물을 집으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이는 자연을 집 안으로 들여오는 새로운 방법이었다.

동물학 교수인 윌머 W. 태너 박사가 1973년 BYU 생명과학박물관에 기증된 호랑이 박제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젤라틴 실버, 7 1/2인치 x 9 2/5인치. 유타주 프로보. Smalljim | CC BY-SA 3.0

이 시대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은 과학과 자연, 이성과 상상력 사이의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특징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방식대로, 이 시대 예술가들은 주변 세계를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영적이고 과학적인 깊은 의미를 발견했고, 이를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표현해 냈다.

또한 이런 자연 연구와 그림 그리기에 대한 인기는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고자 했던 당시의 문화를 보여준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마음과 감정을 모두 자극하는 순수한 자연의 영약을 마시기를 좋아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자연 연구가이자 예술가였던 이들의 작업은 일상의 경이로움에 눈뜨게 하고 또 쉽게 만족할 줄 아는 마음가짐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작은 조개껍질이나 버섯, 높은 산봉우리에서 끝없는 매력과 기쁨을 찾는 것 말이다. 이는 우리 시대에도 되살려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혜영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