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우체국 견공 ‘오니’, 철도 위의 특별한 여정

2025년 09월 20일 오후 8:34
우편 행낭 위의 오니 | Public Domain우편 행낭 위의 오니 | Public Domain

1888년 어느 추운 밤, 뉴욕주 앨버니의 한 우체국 뒷문으로 한 마리 초라한 테리어 유기견이 비를 피하려고 들어섰다.

그는 우편 가방 더미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아침 직원들에게 발견됐다. 개는 직원들에게 다가가 제복 냄새를 맡았고, 이 모습을 보고 동료가 기르는 개로 착각한 직원들이 그에게 ‘오니(Owney)’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당시 오언(Owen)이라는 이름의 우체국 직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전해지는 이야기일 뿐이다.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오니는 원래 한 우체국 직원과 함께 일터에 왔다가 버려졌다는 것이다.

그가 처음 우체국에 나타났을 때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략 1887년경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외모만 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었다. 1894년 4월 지역 신문 ‘브루클린 데일리’는 오니에 대해 “개 전시회에 나가도 500등 상조차 못 받을 개”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기원이 불분명하고 외모도 평범했던 이 초라한 개의 삶은, 이후 미국 전역에서 크게 주목받으며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비공식 우체국 마스코트

오니는 1888년 뉴욕주 앨버니 우체국에 들어온 떠돌이 개였다. | Public Domain

유기견 오니는 우체국을 새 보금자리로 삼았다. 처음에는 우편 가방 위에서 잠을 자더니, 곧 그 가방들이 기차역으로 옮겨질 때마다 뒤따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마차에서 우편 가방 하나가 떨어졌을 때, 마부가 돌아와 찾아보니 오니가 그 곁을 지키고 있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마부는 제복을 입지 않아 으르렁거리는 오니로부터 가방을 되찾지 못했고, 결국 제복을 입은 우체국 직원이 나타나서야 가방을 가져올 수 있었다고 한다.

기차역에서 오니는 우편 열차 객차에 올라탔고, 며칠 뒤 다시 앨버니로 돌아왔다. 하지만 곧 다시 길을 나섰다. 직원들은 그가 길을 잃을까 걱정해 ‘앨버니 우체국’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목걸이를 채워주었다.

처음에는 이웃 도시까지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점차 대륙 횡단 여정으로 이어졌다. 당시 열차 사고가 흔했지만, 오니가 탄 열차는 단 한 번도 탈선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오니를 충직한 개이자 행운의 상징으로 보기 시작했다.

여행을 다니는 동안 우체국 직원들은 오니의 목걸이에 그가 지나간 철도 이름과 지역이 적힌 배지들을 달아주었다.

이후 일반인들까지 동전을 비롯한 기념품을 달기 시작했다. 목걸이가 너무 무거워지자, 오니는 장신구들을 달 수 있는 하네스를 착용하게 되었다.

‘브루클린 데일리’는 “오니가 천천히 걸을 때마다 잡동사니 마차의 방울처럼 딸랑거렸다”고 묘사했다.

오니가 어디를 가든 군중이 몰려들었다. 신문들은 그의 행적을 기사화했고, 지역 언론들은 그를 일상적인 여행 소식처럼 다뤘다. 1895년 2월 15일 ‘무스 조 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오니는 관례대로 이번 겨울에도 남부 철도를 따라 소소한 모험을 즐기며 지낼 예정이다. 노스캐롤라이나, 플로리다, 멕시코만 연안의 유명 온천 요양지를 돌며 우체국 직원들의 환영을 받게 될 것이며, 며칠씩 머무르다가 점차 남쪽으로 이동해 마침내 마르디 그라 축제가 열리는 뉴올리언스에 도착할 계획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오니
1895년, 오니는 세계 일주에 나섰다. 그는 워싱턴주 타코마에서 우편 증기선을 타고 출발했다.

일본에 도착했을 때 세관 관리들은 처음에 크게 당황했다. 오니의 하네스에 달린 수많은 배지를 살펴본 뒤, 그들은 “오니가 고위 관직자의 개이거나, 저명한 인물의 소유일 것”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며칠 뒤 메이지 천황은 오니에게 황실의 인장이 찍힌 특별 여권을 하사했다.

이어 중국에 도착한 오니는 중국 황제로부터 역시 여권을 받았다. 그는 아시아를 거쳐 중동과 유럽으로 이동하며 각국의 고위 인사들로부터 기념품을 선물받았다.

대서양을 건너 돌아온 오니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개가 되어 있었고, 뉴욕시에서 성대한 환영을 받으며 고향 땅을 밟았다.

오니의 마지막 길
10여 년간 이어진 쉼 없는 여행은 결국 오니의 건강을 크게 해쳤다. ‘밀워키 저널’은 당시 오니에 대해 “수많은 고난을 겪었고, 그 흔적이 몸에 드러나 있었다”며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사실을 전했다.

1897년 6월, 오니는 오하이오주 톨레도에 도착했다가 자신을 기둥에 묶은 지역 우체국 직원을 물었다. 이에 분노한 국장은 경찰을 불렀고, 경찰관은 오니에게 치명적인 총격을 가했다.

이 사건은 미국 전역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으며, 전국의 우체국 직원들은 그의 시신을 서둘러 보존하기 위해 모금에 나섰다.

오니가 평생 여행한 거리는 약 14만 3천 마일로, 지구를 거의 여섯 바퀴 돌 수 있는 거리였다.

현재 미국 국립우편박물관에는 그의 여행에서 모은 태그 372개가 소장돼 있지만, 당시 기록에 따르면 오니가 생전에 받은 태그는 1천 개가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작은 영웅, 죽음 이후의 이야기
2011년, 미국 철도 우편국의 마스코트였던 오니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 우표가 발행되었다.

같은 해, 국립우편박물관은 특별 전시회를 열어 그를 조명했다. 이 전시에는 오니 자신도 있었다. 물론 살아있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털가죽을 입은 채로였다.

오니가 총격으로 생을 마친 뒤, 한 지역 세무사가 그를 톱밥으로 채워 넣어 박제했다. 당시 톱밥은 포장재로 흔히 쓰였는데, 이 때문에 얼굴 부분이 조금 어색하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잘한 흠결은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오니는 살아 있을 때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많은 군중을 불러모았다.

1904년 그는 워싱턴 우편국 본부 전시를 떠나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만국박람회에 전시되었고, 1911년에는 스미스소니언 협회에 기증됐다. 그로부터 15년 뒤에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건국 150주년 기념 전시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거의 30년 동안 현재의 미국역사박물관에 전시되었으며, 1993년에 마침내 국립우편박물관으로 옮겨졌다.

2011년 전시회를 앞두고 오니는 복원 과정을 거쳤다. 발톱이 수리되고, 눈과 주둥이는 가능한 범위에서 재형성되었으며, 빠진 털이 채워지고 약간의 채색 보정이 이루어졌다. 지금도 오니는 수많은 명예 메달을 달고 박물관에 전시되어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국립우편박물관에 전시된 개 오니 | Smithsonian Institution/CC0

‘앤드루 벤슨 브라운’은 미주리주에 기반을 둔 시인이자 저널리스트다. 그는 바드 아울 퍼블리싱 앤 커뮤니케이션스(Bard Owl Publishing and Communications)의 편집자이며, 미국 독립혁명을 주제로 한 서사시 자유의 전설의 작자다.

*이기호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