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속 장면을 그대로…고전의 장엄을 되살린 화가

영국 고전주의 화가 로렌스 알마 타데마(1836~1912)의 1094년 작 ‘모세의 발견(The Finding of Moses)’은 성서 속 한 장면을 웅장하고도 정교하게 재현한 작품으로 꼽힌다. 이 작품은 유대인 지도자 모세가 유아 시절 나일강 갈대밭에서 발견되는 장면을 화려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 주제는 고대부터 유대인과 기독교 예술가들에게 자주 다뤄졌으나, 타데마의 해석은 사실과 상상력이 절묘하게 결합한 독보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영국 왕실의 사랑을 받은 화가

‘자화상’(1896), 로렌스 알마 타데마 | 퍼블릭 도메인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귀화한 타데마는 고전주의 예술의 아름다움을 꽃피운 초상화가이자 풍경화가다. 그는 “나는 항상 고전적 아름다움을 추구해 왔다”며 자기 작품에 대한 완성도와 아름다움을 자부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던 그는 안정적인 직업을 택하기보다는 예술에 대한 꿈을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미술학교에서 고전주의를 기반으로 한 아카데믹 화풍을 수학한 후 고고학을 병행한 역사화가의 문하에서 훈련받았다. 이 시기를 통해 타데마는 고대 유물과 건축물에 대한 깊은 이해를 이뤘고, 이를 바탕으로 고대의 모습을 정교하게 재현하는 독보적인 예술가로 성장했다.
1870년 그는 런던으로 이주해 영국 왕실과 귀족들과 교류하며 많은 수작을 남겼다. 빅토리아 여왕은 1899년 그를 기사로 서임했고, 1905년에는 최고 영예인 공로 훈장을 수여했다.
깊은 탐미와 완벽을 추구하다
그는 고대 그리스, 로마와 이집트의 건축물과 인물의 삶에 매혹됐다. 고대인들의 생활상과 역사에 대한 깊은 연구를 통해 당시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봄(Spring)’(1894), 로렌스 알마 타데마, 게티 센터 소장 | 퍼블릭 도메인
‘대리석의 화가’라고 불리기도 했던 타데마는 특히 꽃과 대리석 묘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수많은 작품 속에는 눈부신 색채로 묘사된 장미와 여러 꽃이 단연 눈에 띈다. 또한 사실적이며 섬세한 묘사로 구현된 대리석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고전의 장엄을 살린 작품
‘모세의 발견’은 타데마 생애 말기, 1902년 이집트 여행 중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이다. 그는 후원자였던 존 에어드 경과 함께 6주간 이집트를 여행하며 현지 유물과 풍경을 스케치했다. 이 여정은 그에게 새로운 창작의 시작이 됐다. 에어드는 귀국 후 타데마에게 이집트에서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의뢰했고, 타데마는 2년에 걸쳐 ‘모세의 발견’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그가 평소 자주 다루지 않던 주제인 성서 속 내용을 다뤘음에도 충분한 고증과 연구를 통해 사실과 상상이 공존하는 작품으로 완성됐다. 파라오의 딸은 에어드 경의 딸을 모델로 삼아 그렸다. 그녀가 착용한 장신구는 네덜란드 국립 고고학박물관에 소장된 은제 티아라를 본떴고, 황금 흉패(胸牌)와 팔찌, 채찍 등도 모두 실존 유물을 참조했다.

기원전 이집트 테베에서 제작된 왕관의 앞면과 뒷면, 네덜란드 국립 고대유물 박물관 소장 | 퍼블릭 도메인
서사와 원근감의 조화

‘모세의 발견’(1904)의 일부, 로렌스 알마 타데마, 캔버스에 유채 | 퍼블릭 도메인
작품 속 화면 구도는 수평과 수직 구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좌측에는 서사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붉은 화강암 조각상이 있고, 중앙과 우측에는 흰 도자기가 배치돼 있다. 모세가 담긴 바구니와 시녀들의 장신구는 연꽃으로 장식되어 단조로울 수 있는 구성에 변화를 주고, 그 앞에는 고대 이집트에서 재배되던 델피니움 꽃과 노란 나비가 색채의 풍성함을 더한다. 멀리 배경에는 희미하게 그려진 히브리인들의 모습과 분홍빛으로 빛나는 피라미드가 원근감을 형성한다.
저평가되었던 걸작
이 작품은 1905년 영국 왕립미술원 전시에서 처음 공개됐다. 작품을 의뢰했던 에어드 경은 당시 5250파운드(한화 약 10억 원)를 지불했다. 하지만 이후 타데마의 작품은 20세기 초 근대미술의 부상 속에 구태의연하고 지루한 것으로 치부돼 평가가 급락했다. 추상화와 초현실주의의 인기와 함께 그의 작품은 뒤편으로 밀려났다. 1935년, 에어드 가문이 이 작품을 경매에 내놓았을 때 낙찰가는 고작 820파운드(한화 약 9200만 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은 빛이 나는 법이다. 타데마의 작품은 1960년대 이후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많은 예술가는 많은 영화에 타데마의 정수를 녹여내기도 했다. 영화 십계(1962)・클레오파트라(1967)・글래디에이터(2000) 등이 타데마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
이후 2010년 소더비 경매에서 ‘모세의 발견’은 당시 추정가 300만~500만 달러를 훌쩍 넘는 3590만 달러(한화 약 35억 원)에 낙찰됐다. 이는 모세의 발견을 다룬 작품 중 최고가를 경신한 것이자, 타데마의 예술적 위상을 다시금 증명한 순간이었다.
‘모세의 발견’이라는 고전 주제는 시대를 거치며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돼 왔다. 그러나 타데마의 작품은 그중에서도 ‘가장 권위 있고 충실한 해석’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잊혔던 거장이 다시금 조명받고 그의 역작이 예술사의 한 자리를 굳건히 차지하게 된 지금, ‘모세의 발견’은 단지 한 장의 그림을 넘어 고전과 현대를 잇는 진정한 예술 문화의 결정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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