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보는 미덕의 기술 제1편] ‘신중함’으로 바른 행동 방식을 구별하기
시몽 부에(Simon Vouet) 작, '신중의 알레고리(Allegory of Prudence)', 1645년, 유화(캔버스), 크기 116.5cm x 90.5cm, 프랑스 몽펠리에 파브르 미술관 소장, 예술가들은 종종 신중, 정의, 용기, 절제의 4대 기본 덕목을 우의적(알레고리)으로 묘사하여 관람객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인류 역사상 수많은 위대한 지도자와 종교, 철학, 문학의 인물들은 사람들이 도덕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왔습니다. 예술가, 건축가들 역시 작품 속에 시각적 언어와 상징을 표현함으로써, 우리가 모두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브라이트는 미덕의 기술(The Art of Virtue)을 연재합니다. 고전 예술 작품을 통해 네 가지 기본 덕목인 신중, 정의, 용기, 절제, 세 가지 신학적 덕목인 믿음, 희망, 사랑을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전 예술 작품을 살펴보며 우리 내면의 선함을 짚어 보고자 합니다.
‘미덕’의 의미
미덕(virtue)이라는 단어는 12세기경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 온라인 어원사전에 따르면, ‘virtue’는 앵글로-프랑스어 와 고대 프랑스어인 ‘vertu’에서 유래한다. 이는 “도덕적인 삶과 행실 … 특정한 도덕적 탁월함”을 의미한다. 약 200년 후인 14세기 초, ‘기본 덕목(Cardinal Virtues)이라는 용어가 도입되어 고전적 네 가지 덕목인 ‘신중함, 정의, 용기, 절제’를 분류했다. 카디널(Cardinal)의 라틴어 어원인 카르도(cardo)는 중심축, 또는 무언가가 돌아가거나 의존하는 것을 뜻한다. 도덕적인 삶과 행실은 이 네 가지 기본 덕목에 의존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자연적 덕목(natural virtues)이라 불리기도 한다.
신중함(Prudence)
‘미국 독립 선언문’에도 신중함이란 미덕이 언급되어 있다. “신중함은, 확고히 자리 잡은 정부가 가볍고 일시적인 이유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람들은 고통이 견딜 만한 수준이라면 그 고통을 감수하면서 익숙한 제도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그것을 없애고 변화시키는 데는 매우 신중하다.”
신중함이란 선과 악을 분별하고 옳은 행동을 선택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빌 오브 라이츠 연구소(Bill of Rights Institute)에 따르면, “신중한 지도자는 원칙에 따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실용적이고 공동선을 위한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라고 말한다.

시몽 부에(Simon Vouet) 작, ‘신중의 알레고리(Allegory of Prudence)’, 1645년, 유화(캔버스), 크기 116.5cm x 90.5cm, 프랑스 몽펠리에 파브르 미술관 소장, 예술가들은 종종 신중, 정의, 용기, 절제의 4대 기본 덕목을 우의적(알레고리)으로 묘사하여 관람객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신중함은 삶을 경험하고 꾸준히 실천하는 과정에서 길러지며, 다른 덕목과도 어우러져 빛을 발한다. 성경에 “지혜는 신중함과 함께 존재한다. (잠언 8장 12절~14절)”라는 구절이 있다. 아일랜드계 영국 시인 존 덴햄(John Denham, 1615–1669)은 ‘신중함에 대하여(Of Prudence)’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지혜가 나아가는 첫걸음은
무엇이 단정하고 단정하지 않은지,
거짓인지 진실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신중한 이는
정직한 것과 비열한 것을 구분하고,
항상 정직한 것에 충실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신중함을 조각하다
피렌체의 도예가 안드레아 델라 로비아(Andrea della Robbia, 1435~1525)는 1475년경, 원형 유약 테라코타 톤도(tondo:원형의 회화나 부조)를 제작했다. 고대부터 원(circle)은 영원함을 상징해 왔다. 원형 구성은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에서 특히 인기가 있었는데, 델라 로비아의 톤도는 신중함과 신앙, 정의, 절제 등 네 가지 덕목을 표현했다.
델라 로비아가 이 테라코타 조각에 담아낸 모든 요소는 교훈적이다. 그는 신중함을 손거울을 들여다보는 젊은 여성으로 묘사했다. 그녀의 몸을 따라 뱀이 올라가며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고 있고, 그녀는 야누스처럼 얼굴이 두 개이다. 하나는 앞을, 다른 하나는 뒤를 바라본다. ‘야누스 얼굴(Janus-faced)’이라는 표현은 정반대의 성격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녀의 머리 뒤에는 노인의 얼굴이 있는데, 젊은 얼굴은 현재를, 노인의 얼굴은 삶의 경험과 지혜를 상징한다.
신중하려면 진정으로 자신을 알기 위해 아무런 조건 없이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녀가 들고 있는 거울은 자기 성찰을, 뱀은 신중한 자세로 올바른 행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지혜를 나타낸다. 이 뱀의 모티프는 성경의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마태복음 10장 16절)를 떠올리게 한다.
델라 로비아는 심지어 신중함을 둘러싼 화환속에도 의미 있는 상징을 정성껏 담아냈다. 그의 작품에 화환 장식이 자주 등장하는데,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Victoria & Albert Museum)에 따르면, 레몬은 구원을, 포도와 오이는 부활을, 모과와 솔방울은 미덕과 불멸을 상징한다.
이러한 상징의 의미는 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플리니(Pliny, 서기 24년경~서기 59년)는 모과나무가 꺾꽂이로도 잘 자라는 특성을 찬양했다. 이로써 모과는 불멸을 상징하게 됐다. 포도송이는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나눈 포도주를 상징한다. 레몬 나무는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잘 자라며, 치유의 특성, 특히 전통적으로 해독제로 사용되어 온 점 때문에 구원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됐다.
델라 로비아의 ‘신중함’ 조각은 그의 삼촌인 루카 델라 로비아(Luca della Robbia, 약 1400–1482)의 양식을 따른다. 이 작품은 루카가 1461년경 피렌체 산 미니아토 알 몬테 성당의 ‘포르투갈 추기경 경당’ 천장을 위해 제작한 기본 덕목(Cardinal Virtue) 작품들과 유사하다.
루카의 신중함은 안드레아의 작품과 같은 고전적 상징을 사용했지만, 천사의 날개가 추가로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루카의 신중함은 물웅덩이 위에서 유연하게 흔들리는 듯한 모습을 했지만, 안드레아의 신중함은 물속에 정적으로 서 있는 모습이다. 이 물은 순수함, 정화, 그리고 자기 성찰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두 작품 모두에 등장하는 신중함의 거울과 연결된다.
신중함을 직조하다
스페인의 태피스트리 박물관(Tapestry Museum), 라 그란하 데 산 일데폰소 왕궁에는 화려한 우의화(寓意畫, allegory)가 전시되어 있다.

안드레아 델라 로비아(Andrea della Robbia) 작, ‘신중(Prudence)’, 1475년경, 유약을 바른 테라코타(Glazed terracotta), 크기 164.5cm, 1921년 조지프 퓰리처 기증,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사진=퍼블릭 도메인
플랑드르 지역의 저명한 예술가 피터 쿠크 반 알스트(Pieter Coecke van Aelst, 1502–1550)가 로마 제국 황제 찰스 5세(Charles V)의 1520년 대관식을 위해 제작한 이 작품은 총 9개의 우의적 패널로 구성되어 있다. 태피스트리 연작 ‘영예(The Honors)’의 각 패널은 행운, 신중함, 지혜, 정의, 악덕, 명성, 명예, 신앙, 고귀함으로 구성되어 있다. 통치에 필요한 고귀한 인격과 악덕의 위험성을 포함한 도덕적 교훈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쿠크 반 알스트의 이 기념비적인 연작은 고전적이면서도 종교적인 상징과 인물들을 통해 바람직한 품성과 도덕적 행동을 표현하고 있다.
피터 쿠크 반 알스트는 세밀하게 그린 그림 속에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신중함을 주제로 한 장면은 극장 무대를 배경으로 한다. 왕좌에 앉은 신중함이 무대 중앙에 자리하고, 뱀 한 마리가 그녀의 손을 감싸고 있는데, 이는 신중함이 믿음, 이성과 논쟁을 벌이는 데 필요한 지혜를 상징한다. 델라 로비아의 신중함과 마찬가지로 뱀의 모티프는 성경의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로워라.”는 구절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 이성은 기억(과거), 지성(현재), 섭리(미래)를 상징하는 세 개의 거울을 들고 있는데, 이는 신중함의 세 가지 덕목이다. 왕좌 위에 드리워진 덮개에 새겨진 “나는 과거를 모으고, 현재를 정리하며, 미래를 예견한다”라는 문구는 이러한 상징들의 의미를 강조하며, 신중함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신중함은 지능, 신중함, 주의 깊음, 지성, 섭리, 유순함, 기억력 등 여러 덕목을 구현한다. 이 일곱 덕목은 무대 아래에 정갈하게 차려입은 인격화된 모습으로 서 있다. 각 덕목은 자신을 나타내는 물건을 들고 있다. 예를 들어, 주의(Caution)는 오목거울을 들고 있는데, 그 거울에는 여우와 수도승의 망토가 비쳐 보인다. 이는 중세 시대에 널리 알려진 도덕 우화인 ‘여우 레이나르(Reynard the Fox)’, 즉 여우가 다른 동물들을 속이는 내용을 상징하는 것일 수 있다.

루카 델라 로비아(Luca della Robbia) 작, ‘신중(Prudence)’, 1461–1462년경, 이탈리아 피렌체 산 미니아토 알 몬테(St. Minias on the Mountain) 대성당 포르투갈 추기경 예배당 소장. 사진=원본 사진을 Zairon, The Epoch Times에서 편집함(CC BY 4.0 International Deed)

이탈리아 피렌체 산 미니아토 알 몬테(St. Minias on the Mountain) 대성당 포르투갈 추기경 예배당의 천장, 루카 델라 로비아가 제작한 원형 부조(톤도) 조각 ‘신중(Prudence)'(왼쪽)이 보인다. 사진=Zairon (CC BY 4.0 International Deed).
신중함을 그리다
1550년경, 티치아노(Titian, 약 1488–1576)는 신중함을 주제로 한 수수께끼 같은 우의화를 그렸다. 그는 앞서 소개된 작품들과는 다른 상징적 모티프를 선택했다.
티치아노는 캔버스에 세 명의 남성 흉상을 그렸다. 중앙에는 수염 난 중년 남성이 있으며, 양옆으로는 수염 난 노인과 젊고 앳된 얼굴의 청년이 있다. 노인과 청년은 그림의 경계 너머를 응시하고 있다. 세 인물 아래에는 같은 구도를 늑대, 사자, 개의 머리로 반복했다. 남성들 위에는 “어제에서 배운 자는 오늘을 신중하게 행동하고, 그 행동으로 내일을 망치지 않도록 한다.”라는 라틴어 문구가 적혀 있다.

피테르 반 아엘스트(Pieter van Aelst) 작, ‘영예: 신중(The Honors: Prudence)’, 1550년경, 베르나르트 판 오를레이와 얀 호사르트 주변 화가들의 작품을 본떠 제작된 것으로 추정, 금, 은, 실크, 양모 태피스트리, 크기 490.2cm x 820.2cm, 스페인 라 그란하 데 산 일데폰소 왕궁 태피스트리 박물관 소장. 사진=Paul M.R. Maeyaert (CC BY-SA 4.0)
세 인물은 인생의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나타낸다. 그림 속 라틴어 문구에서 말하는 어제(청년기), 오늘(장년기), 내일(노년기)와도 연결된다.

피테르 반 아엘스트(Pieter van Aelst) 작, ‘영예: 신중(The Honors: Prudence)’, 1550년경 (부분), 베르나르트 판 오를레이와 얀 호사르트 주변 화가들의 작품을 본떠 제작된 것으로 추정, 이 부분은 왕좌에 앉은 신중이 신앙(Faith)과 이성(Reason)을 양옆에 두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금, 은, 실크, 양모 태피스트리, 스페인 라 그란하 데 산 일데폰소 왕궁 태피스트리 박물관 소장. 사진=Paul M.R. Maeyaert (CC BY-SA 4.0)
티치아노는 신중함의 역사적 표현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14세기 중반에 제작된 하나의 머리에 세 개의 얼굴이 있는 작은 대리석 흉상이 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따르면, 이 작품은 희귀한 ‘불투스 트리프론스(Vultus Trifrons)’, 또는 ‘신중함의 우의(An Allegory of Prudence)’로 알려져 있다. 15세기에서 17세기 사이, 가톨릭 예술가들은 이 ‘불투스 트리프론스’ 형식을 삼위일체(Holy Trinity)를 상징하기 위해 조각하기도 했다. 포틀랜드 주립대학교의 조이 괴데케(Zoe Goedecke)는 졸업 논문에서 이렇게 썼다.
“15세기부터 세 얼굴을 가진 삼두(三頭) 형상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었다. 여기에는 피렌체의 성 안토니누스(St. Antoninus of Florence)가 저술한 『신학대전(Summa Theologica)』의 내용도 포함된다. 그는 책에서 ‘화가들은 … 신앙에 어긋나는 것을 그릴 때 비난받아 마땅하다. 삼위일체를 한 사람의 몸에 세 개의 머리로 표현하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는 괴물 같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트렌트 공의회(1545–1563) 이후 교황청은 이러한 삼두 형상(tricephalic) 작품들을 이단으로 여겼다. 이후 교황 우르바노 8세가 1628년에 다시 이단이라 비난하면서 삼두 형상 작품은 대부분 파괴됐다.

티치아노(Titian) 작, ‘신중의 알레고리(An Allegory of Prudence)’, 1550년경, 유화(캔버스), 크기 75.6cm x 68.6cm,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사진=퍼블릭 도메인
우의적 상징으로 조각된 세 얼굴은 신중함의 세 가지 성향인 기억, 지성, 섭리를 반영한다. 이들은 각각 과거, 현재, 미래를 의미한다. 또한, 이 얼굴들은 인간의 생애 주기, 즉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라는 삶의 통과의례를 나타내기도 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웹사이트에는 “미덕(virtue)이라는 개념과 인간 생애 주기를 결합하려는 시도는, 인간 본성에 대한 보다 세밀한 이해와 개인에 대한 집중이 함께 이루어졌던 시대적 흐름과 맞물린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티치아노가 그린 늑대·사자·개 삼두 형상이, 동시대 베네치아 출신 학자 조반니 피에리오 발레리아노의 1556년 저서 『히에로글리피카(Hieroglyphica)』에 언급되어 있다고 본다. 이 생물은 헬레니즘 시대의 이집트 신전에서 발견된 세라피스(Serapis) 상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따르면, 이 생물은 시간을 의인화한 것으로, 탐욕스러운 늑대는 모든 것을 집어삼켜 기억을 없애는 과거, 힘찬 사자는 현재, 개는 끊임없이 앞으로 달려가며 기만적인 희망으로 가득 찬 미래를 상징한다.

파치오 베르티니 다 피렌체(Pacio Bertini da Firenze)와 조반니 베르티니 다 피렌체(Giovanni Bertini da Firenze) 또는 티노 다 카마이노(Tino da Camaino)의 다른 추종자 작, ‘세 얼굴(Vultus Trifrons)’ 혹은 ‘신중의 알레고리(Allegory of Prudence)’, 1340–1355년경, 카라라 대리석, 크기 22.5cm x 12.5cm, 1975년 로버트 리먼 컬렉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사진=퍼블릭 도메인
티치아노의 이 그림은 “오늘의 지혜(성인기와 사자)는 과거(청년기와 늑대)로부터 얻은 지식과 경험에서 비롯되며, 그러한 지혜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 바로 통찰력(노년기와 개)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혜와 통찰력은 행동을 신중하게 한다는 것을 뜻한다.
신중함을 주제로 한 모든 예술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자기 성찰을 강조한다. 과거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어떤 상황이든 지혜롭게 판단한 후에야 올바른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길이 때로는 험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신중한 사람은 신앙과 이성이 결합된 지혜야말로 가장 의로운 행동으로 이끄는 길임을 알 수 있다.
**본문에 인용된 성경 구절은 모두 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에서 발췌한 것임.
*이지수 인턴기자, 조윤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저작권자 © 에포크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