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분석] 인민일보 故리커창 추모 논평에 담긴 반시진핑 기류

리옌밍(李燕銘)
2025년 07월 05일 오후 3:32

지난 3일은 숨진 리커창(李克強) 전 중국 국무원 총리의 70번째 생일이다. 이날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리커창을 기리는 장문의 논평을 6면에 게재했다.

그런데 이 기사를 그대로 옮겨 실었던 다른 관영 매체와 지방 매체, 주요 포털에서는 현재 이 기사가 모두 삭제됐다. 이를 두고 중국 고위층 내 권력 투쟁의 단면이 다시금 노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사건은 리커창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여전히 정치적 민감성을 띠고 있다는 점, 그리고 당 선전 기구가 시진핑 세력과 반(反)시진핑(習近平) 진영 간의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음을 시사한다.

리커창 추켜세운 논평, 곳곳에 반시진핑 코드

이번 기사는 당 중앙당사문헌연구원이 작성한 것으로, 리커창의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시절부터 허난, 랴오닝 성장직과 국무원 총리에 이르기까지의 업적을 조명하며 그를 ‘당에 충성한 개혁가’로 칭송했다. 기사 전반에 ‘개혁’은 21차례, ‘개방’은 8차례, ‘인민’은 무려 29차례 등장했다.

문장 말미에 ‘두 가지 확립(兩個確立)’, ‘두 가지 수호(兩個維護)’ 등 이른바 시진핑을 띄우는 상투적인 표현들이 삽입됐지만, 전체적으로는 리커창의 행보를 통해 현 체제와 대조되는 ‘민주적, 실용적’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어 시진핑에 반대하는 신호가 곳곳에 감지된다.

우선 논평 본문 첫 번째 소제목인 ‘공청단 사업을 당과 국가 사업 대국에 복무시키는 데 힘썼다’는 표현은 리커창의 공청단 출신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운 것으로 해석된다. 공청단은 시진핑 집권 후 ‘전멸’ 수준의 숙청을 당했으며, 20차 당대회에서는 후진타오 전 주석이 공개석상에서 퇴장당하는 장면까지 연출됐다.

논평은 또한 리커창이 추진했던 공급 측 구조 개혁, 자유무역지대 설치, 빈곤 퇴치 등 주요 경제 성과를 자세히 소개했다. 이는 시진핑 정권이 내세웠던 치적 상당수가 사실상 리커창 주도로 이뤄졌음을 시사하며, 경제 난국에 빠진 현재와의 대비를 통해 리커창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양새다.

세 번째로는 리커창이 “실사구시와 실무 중심의 리더십을 강조하고, 형식주의와 관료주의에 반대했다”는 언급이 포함돼 있는데, 이는 최근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나온 ‘형식주의 배격’ 기조와 맞물리며 시진핑의 통치를 겨냥한 비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리커창이 ‘민주적 의사결정, 과학적 정책 수립, 집단 지도체제’를 강조했다고 소개했다. 이는 시진핑이 ‘핵심’과 ‘1인 권력’을 강조하며 사실상 1인 독재를 강화해 온 노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메시지이다. 과거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의 ‘민주적 결정’ 방식을 재조명하며 시진핑에 대한 간접적 비판으로 해석된다.

전면 삭제된 추모 기사…통제 못한 정황도

문제가 된 추모 기사는 인민일보 지면에는 실렸지만, 관영 통신 신화사, 중앙TV(CCTV), 정부 공식 사이트는 물론 지방 관영지나 주요 포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기사 작성 주체인 당사문헌연구원이 운영하는 이론사이트 ‘이론중국망(理論中國網)’에만 남아 있는 상태다.

특이한 점은 해당 기사 서두에 ‘당 중앙의 관련 규정에 따라 게재한다’는 편집자 주가 붙은 점이다. 이는 인민일보 측이 이번 기사 게재를 ‘관례에 따른 내부 판단’에 의해 결정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황쥐(黃菊) 전 부총리나 덩잉차오(鄧穎超) 전 정협 주석 등 과거 고위 인사 추모 기사에는 이런 문구가 붙지 않았다.

결국 이번 추모 기사는 인민일보 내부 또는 당사문헌연구원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작성·게재됐고, 이후 시진핑 측근인 차이치(蔡奇) 중앙서기처 서기나 리슈레이(李書磊) 선전부장 등이 이를 문제 삼아 삭제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 다른 해석은, 시진핑 측이 사전에 추모 기사 게재를 금지했지만 인민일보가 내부 반발을 무릅쓰고 강행했으며, 그 결과 다른 매체 전파가 차단됐다는 시나리오다.

반시진핑 진영의 인민일보 장악?…편집국 숙청, 시진핑 보도 급감

인민일보 내부 동향도 심상치 않다. 지난해 말부터 신임 사장 위사오량(於紹良)과 총편집 진젠원(陳建文)을 포함한 간부진이 잇따라 교체·조사받고 있으며, 2024년 10월에는 중앙 순시조가 인민일보와 광명일보, 경제일보 등 선전계 핵심 34개 기관을 전면 감사했다.

2025년 6월에는 인민일보 홈페이지에서 부사장 후궈(胡果), 편집위원 겸 비서장 위지쥔(余繼軍)의 이름이 갑자기 사라졌으며, 이후 위사오량 사장 역시 조사받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러한 내부 숙청이 진행되는 가운데, 시진핑은 2025년 5월 하순부터 6월 초까지 약 2주간 공개 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특히 6월 2일부터 4일까지 인민일보 1면에서 시진핑 관련 보도가 사라진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추모 기사 게재와 삭제 과정, 그리고 인민일보 수뇌부 숙청과 시진핑의 장기 침묵은 모두 중국 고위 권력층의 치열한 내부 암투가 여전히 진행 중임을 시사한다.

권력 이상설 와중에도 치열한 ‘펜의 권력’ 쟁탈전

리커창은 시진핑과 10년간 국정을 이끌었지만, 총리 재임 시절 내내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다. 2023년 10월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상하이에서 숨진 뒤,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끊이지 않고 있다.

중국 온라인에서는 리커창 추모 시기를 맞이해 그가 암살됐다는 정황, 유족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미확인 정보들이 유포됐다. 그를 추모하는 관영 매체 공식 논평이 온라인 대부분에서 삭제된 것은 의혹을 진화하기보다는 오히려 다시 불을 지핀 셈이 됐다.

동시에 반시진핑 진영이 선전 기구 장악에 본격적으로 나선 조짐도 엿보인다. 리커창 추모 논평을 둘러싼 공방은 선전 시스템이 양측 간의 새 격전지가 됐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인민일보를 포함한 문건·보도 라인을 둘러싼 숙청과 재편이 더욱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시진핑의 핵심 측근인 푸젠성 출신 군 고위층 인사들과 리간제(李干傑) 전 조직부장의 좌천이 이어지는 가운데, 양측의 싸움은 선전 분야로 이어지고 있다. 리커창 추모 논평을 둘러싼 게재와 삭제 다툼은, 칼보다 강한 펜을 둘러싼 새로운 권력 투쟁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