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 제품’ 둔갑한 중국산…말레이 정부, 원산지 세탁 단속 강화 방침

미국의 대중 고율 관세를 피하려는 중국 기업들의 ‘원산지 세탁’ 시도가 말레이시아를 통해 노골적으로 이뤄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국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원산지를 바꿔주는 중개 서비스 광고가 퍼진 가운데, 말레이 정부가 미국행 수출품에 대한 원산지 증명 절차를 대폭 강화하며 단속에 나섰다.
문제의 광고는 중국의 소셜미디어 ‘샤오홍슈’에 대거 올라왔다. 광고를 게재한 업자들은 “중국산 제품을 말레이로 운송한 뒤 라벨과 포장, 서류까지 모두 바꿔 제3국 제품으로 둔갑시켜 미국에 수출할 수 있다”며 대놓고 원산지 세탁을 홍보했다.
일부 광고에서는 말레이 현지 공장 측에서 위조 원산지 증명서 발급까지 도와준다고 소개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 광둥성 중산시에 있는 한 무역업체 직원은 “중국 업체들이 ‘선적지 인도 조건(FOB)’ 방식으로 물건을 선적한 뒤, 책임을 수입업자에게 넘기는 식으로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적지 인도 조건이란 판매하는 측이 물품을 지정된 선박에 적재했을 때 인도 의무가 완료되는 조건을 뜻한다. 물품이 일단 선박에 실린 이후 발생한 모든 위험과 비용은 구매자가 부담하게 된다.
미국의 무역법에 따르면, 상품은 가공이나 제조 등 실질적인 변형을 거쳐 가치가 크게 증가했을 때 해당 국가에서 생산된 것으로 간주되며, 그 국가에 적용된 관세가 부과된다. 사실상 중국에서 거의 완성한 제품을 제3국에서 원산지만 바꾸는 것은 위법 행위다.
또한 일부 중국 수출업체들은 고가의 상품과 저렴한 상품을 섞어서 수출함으로써 세관 신고 가격을 떨어뜨리는 수법도 사용한다.
이처럼 미국의 고율 대중 관세를 피하기 위한 편법이 확산되자, 말레이뿐 아니라 중국 주변국에서도 유사 사례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국 관세청은 올해 1분기에만 중국산을 한국산으로 위장한 수출품 2100만 달러어치를 적발했고, 이 가운데 대부분은 미국으로 향하는 제품이었다. 또한 베트남과 태국 당국도 미국행 수출품에 대한 원산지 증명을 강화하고 있다.
말레이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제도적 대응에 나섰다. 말레이 투자·무역산업부는 6일부터 미국행 수출품에 대한 ‘비우대 원산지 증명서(NPCO)’를 오직 정부 산하 기관에서만 발급하도록 했다.
이 증명서는 관세 혜택을 받지 않는 상품의 원산지를 확인하기 위한 문서로, 기존에는 지방 상공회의소 등 여러 기관에서 발급될 수 있었다. 말레이 정부는 증명서 발급 남용을 막기 위해 이를 중앙집중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말레이 정부는 이번 조치에 대해 “국제 무역의 신뢰성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라며 “잘못되거나 허위 신고를 통한 관세 회피는 엄중한 위법 행위로 간주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신청 업체에 대한 감사 강화, 세관과의 공조 수사도 예고했다.
말레이 투자·무역산업부 장관은 의회에 출석해 “현지 산업계로부터 ‘외국 제품에 말레이 라벨이 붙어 마치 자국산처럼 수출된다’는 민원이 쏟아졌다”며 강력 대응 배경을 설명했다.
현지 언론은 중국산 제품에 말레이산으로 위조된 증명서가 부착돼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으며, 일부는 100링깃(약 3만2천원) 수준의 비용만 들여도 서류 위조가 가능하다고 보도했다.
말레이 중화총상회(ACCCIM)도 “미국과 말레이시아 간의 관세 차이가 커지며 기업들이 무역 경로를 바꾸고 상품 분류를 속이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정부 조치에 지지를 보냈다.
이어 “이러한 편법은 무역 통계를 왜곡하고, 저렴한 외국산 제품이 국내 시장에 쏟아지면서 현지 중소기업들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미국은 지난달 2일을 기점으로 대중 고율 관세 정책을 강화한 바 있다. 중국산 일부 제품에는 최대 145%의 관세를 부과했으나, 제3국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관세가 부과됐다. 말레이에 부과된 관세는 2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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