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만 방위비 부담 늘여야” 대만 “우리 스스로 방어해야”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대만의 자체 방위비 부담 증액”을 요구했다. 이 가운데 대만 정부도 “우리도 스스로 방어해야 한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7월 16일 공개된 미국 매체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회견에서 “중국을 상대로 대만을 방어하겠느냐?” 질문에 대해서 “나는 대만 사람들을 매우 잘 알고 그들을 매우 존중한다.”고 전제한 후 “우리 반도체 산업의 거의 100%를 (대만이) 가져갔다”면서 “(미국은) 보험회사와 다를 바 없다. 대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대만은 미국에 방위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날인 7월 18일,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J.D.밴스(James David Vance) 연방 상원의원은 공화당 전당대회 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미국 납세자의 관대함을 배신하는 나라에 무임승차는 더 이상 없다. 우리는 동맹국이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한 부담을 나누도록 할 것이다.”라고 발언하여 한국·일본 등 주요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증액 요구를 시사했다.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개최된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마련된 블룸버그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한 로버트 오브라이언(Robert O’Brien) 전 국가안보보좌관도 유사 발언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 관련 코멘트를 요청하는 질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만이 자체 방어에 더 기여해야 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언급한 것은 부담 분담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견(私見)임을 전제로 “대만은 중국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군비로 국내총생산(GDP)의 최소 5%를 지출하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라고 제안했다.
7월 19일, 린자룽(林佳龍) 대만 행정원 외교부장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해당 발언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답하면서 “대만은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수입하고 있으며, 방위비 지출도 지속적으로 증액할 것이다.”라며 자체 방어 의지를 밝혔다.
린자룽 외교부장의 발언은 중국의 지속적인 무력 침공 위협 속에서 자주국방 의지를 다지는 동시에 대만의 주요 무기 구매국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즉 1979년 단교 이후 공식 외교 관계는 없고, ‘상호방위조약’도 폐기됐지만 “대만은 미국의 변치 않은 우방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린자룽 부장의 발언은 줘룽타이(卓榮泰) 행정원장(국무총리 해당)의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줘룽타이는 1월 17일, “우리는 스스로를 방어하고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더 많은 책임을 부담할 용의가 있다.”고 발언했다.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한 후 방위비 부담을 요구할 경우, 대만 정부는 수용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다. 줘룽타이 행정원장은 “대만 정부는 대만 안보 문제와 대만의 국제적 참여에 대해 자주 발언해준 미국에 매우 감사하고 있다. 대만도 국방예산을 꾸준히 강화하고 의무복무 기간을 재개하면서 사회적 회복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979년 1월 1일 미중 수교와 동시 이뤄진 미국-대만 단교로 인하여 양국 간에는 공식 외교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1979년 4월 미국 의회가 제정한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 Act)’에 의하여 비공식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국내법 형식을 취한 대만관계법에는 대만 주민의 안보, 사회적·경제적 체제를 위협하는 어떠한 힘의 사용이나 기타 형태의 강압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미국의 전투 능력을 유지한다. 미국은 대만이 충분한 자위 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방위 물자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이는 대만해협 유사시 미국의 무력 개입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에 대한 대만 내 의견은 엇갈린다. 지난 차이잉원(蔡英文) 1기 정부(2016~2020년)에서 공군 부사령(공군 참모차장 해당)을 지낸 장옌팅(張延廷) 예비역 공군 중장(中將)은 줘룽타이 행정원장의 해당 발언에 대하여 “부적절한 발언이다.”라고 전제하며 “대만은 미국의 꼭두각시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의 보호비(방위비)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될 텐데 대만 정부는 해당 예산을 중하층민과 젊은이들을 위해 할당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의사를 밝혔다.
집권 민진당 내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나왔다. 3선 민진당 입법위원(국회의원) 출신 궈정량(郭正亮)은 대만 매체 중톈뉴스(中天新聞) 회견에서 “트럼프는 가치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실질 국익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으로 이른바 ‘보호비’는 대만에 국방 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것일 수 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궈정량은 언론인 출신 정치인으로 민진당 성향 인터넷신문 ‘메이리다오전자보(美麗島電子報)’ 부회장을 맡고 있다.
미국의 요구와는 달리 대만이 국방비 지출 증강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7년부터 2023년까지 대망의 국방비 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2%에서 2.5%로 높였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대만의 국방예산은 올해 약 191억 달러로 늘어났다.
증액된 국방비로 대만은 초음속 대함미사일 슝펑(雄風)-3, 지대공 미사일 톈궁(天弓) 등을 자체 양산하고 미국제 지대함 미사일 하푼(Harpoon),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Javelin) 등을 구매하여 대만섬 전역에 배치하고 있다. 중국이 공격할 경우 타격을 가하겠다는 이른바 ‘고슴고치전략’의 일환이다. 정찰 무인기(드론), 자폭 드론, 수중 드론 등을 양산해 중국의 상륙군에 대비할 계획이다.
미국은 대만에 국방비 증액, 미국산 무기 구입 증대를 요구하지만 미국이 제때 들어주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대만이 구매하기로 한 M1 에이브럼스(M1 Abrams) 전차, F-16V(F-16 Viper) 전투기,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스팅어(FIM-92 Stinger) 등 수십 억 달러 상당의 첨단 무기의 인도를 지연시키고 있다. 이 속에서 미국의 방위비 지출 증대 주장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의 처지도 대만과 동병상련(同病相憐)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1기인 2019년 이른바 ‘안보 무임승차론’을 내세우며 “한국이 방위비를 5배 이상 더 부담해야 한다.”고 압박했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 정찰기 1회당 정찰 비행에 드는 세부 비용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등 주한미군의 각종 비용을 조목조목 명시하고 이를 분담해 달라고 한국에 요구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11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한국의 방위비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과 미국 양국 정부는 오는 2026년부터 적용할 제12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을 진행 중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할 경우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제11차 SMA에 의한 올해 방위비 분담금은 1조 3463억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 국방비 총지출은 460억 달러로 9위였다. 국내총생산(GDP)의 2.7%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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