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문가들 “김정은 위협 허세 아냐”
태영호 “6·25 전쟁 때와 상황 달라…과도한 분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한민국은 제1적대국”이라며 전쟁 가능성을 언급한 가운데, 전문가들이 한반도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고 입을 모았다.
16일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전날(15일) 김 위원장은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확고히 간주하도록 북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대한민국이 화해와 통일의 상대이며 동족이라는 현실모순적인 기성개념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철저한 타국으로,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제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 밖에도 “(북한) 헌법에 있는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들이 이제는 삭제되어야 한다”, “‘동족, 동질관계로서의 북남조선’, ‘우리 민족끼리’, `평화통일’ 등의 상징으로 비칠 수 있는 과거 시대의 잔여물들을 처리”, “수도 평양의 남쪽관문에 꼴불견으로 서있는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을 철거”하는 등 “공화국 민족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버려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김 위원장은 “북남교류협력의 상징으로 존재하던 경의선의 우리 측 구간을 회복불가한 수준으로 물리적으로 완전히 끊어놓는 것을 비롯하여 접경지역의 모든 북남 연계조건들을 철저히 분리시키기 위한 단계별 조치들을 엄격히 실시해야 한다”면서 “전쟁이 우리 앞의 현실로 다가온다면 절대로 피하는데 노력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어 “전쟁은 대한민국이라는 실체를 끔찍하게 괴멸시키고 끝나게 만들 것”이라고 위협한 김 위원장은 “만약 적들이 전쟁의 불꽃이라도 튕긴다면 공화국은 핵무기가 포함되는 자기 수중의 모든 군사력을 총동원하여 우리의 원쑤들을 단호히 징벌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처럼 북한이 핵무기를 실제 사용할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지난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 국무부 북핵 특사로 대북 협상을 담당했던 전문가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는 외교안보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를 통해 “2024년 동북아시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최소한 염두에는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약 50~60개에 달하는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핵전쟁이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로 갈루치 교수는 미국과 중국이 대만 문제를 두고 대치하는 가운데 북한이 중국의 독려를 받고 또는 중국을 지원하기 위해 동북아시아에 있는 미국의 동맹에 핵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아울러 남한이 북한의 지시를 따르도록 강제하기 위해 핵무기 사용을 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갈루치 교수는 “북한은 어쨌든 핵무기를 가진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 ‘게임’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표현했다. 주요 핵보유국들이 핵전쟁까지는 치닫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것과는 달리, 핵무기를 보유한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북한은 관리하는 경험 및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그는 특히 경쟁적이고 적대적인 현 정세를 고려할 때 동북아시아에서 핵무기가 늘어나는 상황을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보다 앞서 이달 11일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해커 교수는 북한 전문매체 ’38노스’ 기고에서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1950년 6월 초반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더 위험하다”고 진단했다. 두 사람은 북한 문제에 있어 정통한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두 전문가는 “김정은이 1950년에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전쟁하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김정은이 언제 어떻게 방아쇠를 당길지 모르지만 지금의 위험은 한미일이 늘 경고하는 ‘도발’ 수준을 넘어섰다. 지난해 초부터 북한 관영매체에 등장하는 ‘전쟁 준비’ 메시지는 북한이 통상적으로 하는 ‘허세’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두 전문가의 진단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협상이 결렬되자 크게 실망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완전히 포기하고 전쟁을 결심하게 됐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이들은 미국과의 외교 등 목표가 상실될 경우 북한이 결국 보유한 무기들을 활용, 군사적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지나치게 극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북한이 군사적 수단에 의존하기로 완전히 결심을 굳힌 단계는 아니라는 의미다.
북한이 ‘대화’보다는 ‘강 대 강’ 대치 국면을 이어갈 것이라는 분석에 전반적으로 무게감이 실리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과도한 평가’라는 상반된 의견도 나온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15일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 미국 전문가들의 분석에 대해 “과도한 평가“라며 “한미동맹도 있고 지금은 미국의 확고한 핵 억지력으로 핵 우산으로 우리를 지켜주겠다 이렇게 공언하지 않았나. 그러므로 6·25 전쟁 때와 비교하는 건 좀 지나치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지난 14일 동해상으로 중거리급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또 이달 13일에는 노동신문을 통해 “지난 시기 북남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을 위한 연대기구로 내왔던 단체들을 모두 정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