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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외교핵심’ 최선희, 러시아행…트럼프-김정은 회담 어려워지나

2025년 10월 26일 오후 6:11
2019년 판문점에서 만난 트럼프와 김정은 | 연합뉴스2019년 판문점에서 만난 트럼프와 김정은 | 연합뉴스

러·벨라루스 순방으로 “미국보다 중·러 우선” 메시지
정상회담 가능성 완전히 닫힌 건 아니라는 관측도

북한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직전 외교 핵심 인사인 최선희 외무상의 러시아·벨라루스 순방을 공식화하면서, 북미정상회담이 사실상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26일 최 외무상이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외무부 역시 최 외무상의 방러 일정이 26일부터 28일까지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29~30일 경주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과 일부 APEC 관련 일정에 참석한 후 한국을 떠날 예정이어서, 최 외무상이 이 기간 한반도 밖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일(현지시간) 아시아 순방길에 오르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 의지를 밝혔지만, 북한은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은 채 외교 수장을 러시아로 보냈다. 이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사실상 ‘미국보다 러시아를 우선시한다’는 외교 신호를 공개적으로 보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최 외무상은 2018년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과 2019년 하노이 2차 회담, 그리고 같은 해 6월 판문점 회동 등 주요 협상마다 김정은 위원장을 수행한 핵심 실무라인이다. 특히 판문점 회동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제안에 “매우 흥미로운 제안”이라 답하며 정상 간 만남을 성사시킨 주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외교 전문가들은 “최선희의 부재는 곧 북미회담 의지의 부재”로 해석하고 있다.

통일연구원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공개적으로 방러 계획을 알린 것은 미국보다 러시아 쪽을 더 신경 쓰고 있음을 의도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시아센터장은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을 사실상 보이콧한 것”이라며 “현재 북한의 외교 중심축은 북미가 아니라 중·러에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내놨지만, 북한은 이를 ‘군사적 표현’으로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제재 완화를 포함한 정치적 의미의 ‘핵보유국 인정’이지만, 미국은 여전히 ‘비핵화’를 목표로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북한은 실무 접촉을 통해 미국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장은 “김정은은 2019년 톱다운 방식의 회담에서 기대만큼 성과를 얻지 못했다”며 “이번에는 실무회담을 선행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라는 전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개인적 친분을 과시해 온 만큼, 정치적 상징성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짧은 만남이 성사될 여지는 남아 있다는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도 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까지 연이어 만난다면, 내부적으로 지도자의 위상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결국 이번 최선희 외무상의 러시아·벨라루스 순방은 북한이 당분간 미국보다 중·러와의 전략적 협력을 우선시하겠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상황에 따라 ‘정상 간 외교 이벤트’를 전격적으로 수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