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경제 침체 소식이 연이어 전해지면서 중국인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중국 당국은 지난 7월, 경제 회복을 위해 투자와 내수 활성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민간 부문에 대한 종합 지원 방침을 내놨다.
하지만 지난 8월 20~31일, 에포크타임스 중문판 인터뷰에 응한 중국 민간 사업가들은 “중국 공산당 당국을 믿었던 것이 후회된다”며 공산당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1조6332억 원 약탈당한 억만장자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출신 사업가 쉬충양(徐崇陽·65세)은 “나는 억만장자였는데, 지금은 무일푼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쉬충양의 아내 챠오리(喬麗)는 미국계 중국인으로 중국 현대사에서 유명한 정치인 위안스카이(원세개·袁世凱)의 외손녀다. 이들 부부는 명나라 꽃병(경매가 175억4500만 원 상당), 황실 약재로 쓰이는 코뿔소 뿔(200여 kg) 등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家寶)를 소장하고 있었다.

지난 2002년, 고향의 자선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쉬충양은 우한에 1000만 위안(18억1470만 원) 이상 투자해 ‘후베이 999 구조서비스 유한공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훗날 쉬충양은 현지 정부 고위 관리들이 주도한 부동산 사기 사건 3건과 베이징시에서 발생한 문화 유물 압수 사건 3건으로 인해 약 90억 위안(약 1조6332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약탈당했다.

쉬충양은 지난해 12월 에포크타임스에 “이 모든 사건은 푸정화(傅政華) 전 중국 사법부 부장과 마카이(馬凱) 전 중국 공산당 국무원 부총리의 동생인 마샤오위안(馬小援)이 가짜 공증서·소장과 유령 회사 등을 이용해 사기 친 결과다”라고 밝혔다.
그는 “푸정화는 낙마해 감옥에 수감돼 있지만, 그의 일당은 지금도 중국 공산당 사법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다. 나는 중국 최고인민검찰원, 최고인민법원에 국가 보상금과 형사 보상금을 신청하는 행정 소송을 제기했지만, 관련 부처 관리들은 온갖 핑계를 대며 소장 심사를 미루고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쉬충양은 10개월간 이어진 공안의 불법 고문으로 상해를 입었다. 공안들은 쉬충양을 수갑과 족쇄를 채운 채 지붕에 매달고 폭행했다. 고문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피해 당사자인 쉬충양에게 7만 위안(1271만원)에 팔아넘기기도 했다.
쉬충양은 에포크타임스에 “지금 나는 부동산·의료보험·연금 아무것도 없는 ‘거지’ 신세가 됐다”며 “조국에 투자하기 위해 귀국한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고 한탄했다.
전 재산을 빼앗긴 대만 사업가와 가족들
중국 본토 사업가 궁민겅(宮敏賡·66세)은 외삼촌인 대만 사업가 구위안다오(顧源道)가 중국 현지 기업과 합작한 회사를 맡아 경영하다 사기당해 모든 것을 잃었다.
구위안다오는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이주한 대만의 1세대 ‘외향인’이다. 1992년, 70세 넘은 그는 평생 모은 돈으로 중국 본토에 투자했다. 상하이 ‘상하이 신푸(新浦) 니트웨어 공장(이하 신푸)’과 합작해 ‘상하이 붜라이치(勃萊琪) 니트웨어 유한공사(이하 붜라이치)’를 설립했다.
붜라이치의 초기 투자금은 30만 달러(3억9570만원), 등록 자본금은 21만 달러(2억7709만원)였으며 대만 측과 중국 측은 각각 65%, 35%를 출자했다. 구위안은 붜라이치의 이사장을, 조카 궁민겅은 최고경영자(CEO)를 맡았다.
붜라이치 설립 1년 후, 사업 확장을 위해 은행에 주택담보대출을 신청했을 때 구위안다오와 궁민겅은 중국 측에 속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신푸는 공장을 담보로 출자했지만, 신푸는 공장에 대한 재산권이 없고 사용권만 있었다. 붜라이치는 대출을 받지 못해 제때 투자할 수 없었고, 주문량을 제때 생산해 내지 못해 막대한 손실을 봤다.
1993년 상하이 푸동(浦東) 신구가 개발 중심지가 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이 지역의 건물 임대료는 7, 8만 위안(1270만~1450만 원)에서 25만 위안(4500만 원)으로 올랐다. 신푸 경영진은 큰 손해를 입었다는 생각에 공장 건물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고는 붜라이치를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
1996년 초, 중국 측은 “수년간 적자를 이어온 붜라이치를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다”는 이유로 중국국제경제무역중재위원회(IETAC) 상하이 지부에 합작계약 해지와 합작기업 해산을 요청하는 중재 소송을 제기했다. 대만 측은 “회사 상품의 국내외 판로는 이미 열렸기 때문에 곧 흑자로 전환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IETAC에 중국 측의 신청을 기각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궁민겅은 1996년 9월 4일, 중국 측의 강압에 못 이겨 합작 계약을 해지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합의 과정에서 중국 측은 붜라이치의 영업허가증, 회계장부, 대외무역세 환급증명서 등 각종 서류를 모두 빼앗아 갔다. 그 결과 붜라이치는 그해 100만 달러(13억 1950만원)에 달하는 대외무역세 환급금을 돌려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공상행정관리국 연례검사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1997년 11월, 푸동시 공상행정관리국은 연례검사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붜라이치의 영업허가를 취소했다.

궁민겅은 현재 가족과 떨어진 채 기초연금으로 살아가고 있다. 길거리 노점상으로 생계를 유지하려고 했지만, 정부 단속으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출국도 금지됐다.
궁민겅은 “상하이 제1중급인민법원 판사는 채무자와 ‘손잡고’ 채권자인 나의 합법적인 소득세 환급금을 포함한 재산을 강탈했다. 27년이 흐른 지금도 세금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며 “판사가 채권자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은 범죄 행위다. 중국 공산당 당국은 노골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공장주 “공산당을 믿은 대가로 가족·재산 다 잃었다”
리우즁린(劉烔林)은 중국 장쑤성 쉬저우(徐州) 펑현(豐縣)에서 과일·채소 가공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에포크타임스에 “지방 정부의 당 서기와 공무원들은 합법적인 민간 기업을 단속하는 반면, 부패 관리와 결탁한 사람들의 불법적인 이익은 보호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에 따르면 그는 20년 넘게 지방 정부, 중앙 정부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약 1만 통의 항의 서한을 보냈지만 소용없었다. 사기당하고 불법 구금된 적도 있으며 그 과정에서 장애가 생길 정도로 폭행당했다. 그의 아버지는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리우즁린은 “중국에서 태어나 공산당과 정부를 믿었지만 결국 가정과 재산을 모두 잃었다”며 “공산당을 믿은 게 잘못이었다”고 한탄했다.
뉴욕 타임즈는 지난 28일(현지 시간) 중국에 위기의 순간이 도래했다고 단언했다. 신문은 “중국은 데이터가 보여주는 경제 침체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며 ‘중국의 사회 정서가 일종의 티핑 포인트(전환점)에 도달했으며 정권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고 있고 불만이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는 분석에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