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인스타그램으로 불리는 ‘샤오홍수’가 사용자들의 게시물을 사전 검열한 정황을 담은 내부 문서가 유출돼 논란이 일고 있다. 검열 대상 가운데는 우리나라의 ‘광주 민주화 항쟁’ 관련 내용도 있다. ‘6·4 톈안먼 유혈 사태’(이하 ‘톈안먼 사태’)와 ‘홍콩 민주화 운동’을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다.
美중화권 매체 “샤오훙수, 사용자 게시물 사전검열”
샤오훙수(小紅書)는 인플루언서들이 일상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광고를 하며 사용자들의 온라인 쇼핑을 유도하는 중국 소셜네트워크(SNS) 플랫폼이다. 2019년 1월 기준 평균 이용자는 2억 명. 대부분이 2030 청년층이다.
지난 14일 미국의 중화권 매체 차이나디지털타임스(CDT)는 143쪽에 이르는 샤오홍수의 사전 검열 관련 문서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해당 문서에는 샤오홍수가 여론을 감시하는 방식, 몇 달 동안 수집한 게시물 검열 사례, 검열한 사례를 토대로 뽑은 사전 검열 키워드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매체에 따르면 이번에 유출된 문서에는 2020년 6월 4일 선제적으로 여론을 차단했던 샘플 5건, 2020년 3월 31일 기준 ‘톈안먼 사태’ 관련 자료, 민심 감식 처리 절차 및 규정, 여론 추이, 2020년 5월 1일부터 5월 20일까지의 20일과 2020년 8월 10일의 ‘민심 일지’, 2020년 2월 21일부터 5월 6일까지의 시진핑 주석 관련 여론 등이 포함됐다.
샤오훙수, 韓언론의 ‘광주민주화항쟁’ 보도도 검열
우리나라의 ‘광주 민주화 항쟁’ 관련 보도도 샤오훙수의 ‘민심 일지’ 검열 리스트에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샤오훙수는 광주사태, 전두환, 광주 운동 등의 키워드를 검열했다. 지난 2020년 5월 2일부터 5월 19일 사이의 ‘광주 민주화 항쟁’ 관련 항목이 샤오훙수의 ‘민심 일지’에 15번 언급됐다.
일례로 문재인 전 대통령이 광주 민주화 항쟁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국가가 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건의 진상을 반드시 밝히겠다’는 내용을 담은 기사가 2020년 5월 19일 민심 일지에 언급됐다.
일지는 기사 제목, 원문 링크, 보도 내용을 요약해 제시하면서 ‘건의’라는 이름으로 해당 기사를 심사할 것을 요구했다. ‘건의’ 내용을 정리하면 ‘한국의 광주사태 관련 기사를 주의하라. 이런 기사들이 중국 정부가 무력으로 국민을 진압한 유혈 사건을 연상시킬 수 있고, 그로 인해 톈안문 사태를 비난하고 홍콩 반송중(反送中) 운동을 지지하는 여론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홍콩 유명 작사가가 광주사태 40주년을 맞아 ‘피땀으로 권력을 거역하는 꿈을 좇자’는 가사를 담은 신곡을 발표했다는 보도도 같은 이유로 ‘중점적으로 감시할 여론’ 리스트에 올랐다.
中, SNS서 김정은 관련 내용도 사전검열 대상에 포함
에포크타임스 등 해외 중화권 매체들이 보도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관련 기사도 여러 번 검열된 것으로 드러났다. 기사 제목이 ‘김정은 위독설’, ‘김정은, 대역 써서 쿠데타 해결’ 등인데, 이런 기사들 또한 중국 공산당 지도자를 연상시킬 수 있어서다.
‘러시아 총리의 코로나19 확진’ 소식도 검열됐다. 러시아 고위 정치인을 조롱하는 네티즌 댓글로 인해 중·러 관계가 악화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가 제시됐다.
중국 SNS 플랫폼이 공산당의 의중을 좇아 한국, 북한, 러시아 관련 보도를 검열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번 샤오홍수 검열에서 처음 언급됐다.
중국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 여론 검열에 대한 폭로는 이번이 처음 아니다. 지난해 3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의 콘텐츠 관리자로 근무했던 에릭 류가 ‘2020년 코로나 대유행 기간에 웨이보 측이 베이징 당국의 언론 검열 요구에 부응해 콘텐츠를 검열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중국에서 인터넷 검열에 종사하는 인력은 100만 명에 달하며, 이들과 같은 검열 권한을 가지고 함께 협력하는 인력은 몇 배로 많은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