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플레이션, 비용상승·수요과잉 외 심리 요인도 작용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한 번 형성되면 저절로 물가 상승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상승) 추세가 확산하는 가운데 물가 안정을 위해선 정부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확산·고착되는 것을 억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이 지난 한 달 새 0.6%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대인플레이션’ 또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는 향후 1년간 물가상승률에 대한 경제 주체들의 주관적 전망을 가리킨다. 경제 주체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는 직접 관측할 수 없기 때문에 기대인플레이션은 설문조사 방식을 통해 추정한다.
한국은행이 6월 29일 발표한 ‘6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지난 5월(3.3%)보다 0.6%p 오른 3.9%로 집계됐다. 0.6%p 상승 폭을 기록한 것은 2008년 관련 통계가 시작된 이래 최대치다.
황희진 한국은행 통계조사팀장은 “현재의 물가 흐름이 기대인플레이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국제 식량 가격 상승과 공급망 차질 등 해외 요인도 크고, 개인 서비스나 외식 등 생활물가와 체감물가가 높은 점도 기대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한번 형성되면, 비용상승이나 과잉 수요와 같은 구조적 요인과는 무관하게 저절로 물가가 계속 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종석 한국 뉴욕주립대 석좌교수는 (사)경제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이슈 브리프 ‘스태그플레이션 딜레마, 어떻게 풀어야 하나?’에서 지금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은 ‘비용상승’과 ‘수요과잉’의 두 가지 경로를 통해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생산비용이 상승한 원인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미중 갈등으로 촉발된 에너지·원자재 가격 상승 △주요 곡물 생산국의 기상이변으로 인한 곡물 가격 상승 등을 꼽았다. 이에 더해 김 교수는 “지난 2년여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 공급망이 상당 부분 와해되면서 글로벌 유통비용이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수요 과잉 측면에서는 “최근 주요국을 중심으로 방역 규제가 완화되면서 글로벌 공급유통망이 위축된 상황에서 그동안 눌렸던 소비가 급증해 전 세계적으로 초과수요, 공급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이것이 다시 물가 상승을 초래했다”고 풀이했다.
이어 인플레이션의 세 번째 경로로 ‘심리적 요인’을 들었다. 과거 1970~80년대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의 경제 경험에 비춰볼 때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의 확산으로 인해 수요공급 요인과 무관하게 물가가 계속 상승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이 내년에 물가가 5%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하면 아무런 구조적 이유 없이 물가가 5%이상 상승하게 된다는 것으로, 일종의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는 셈”이라고 김 교수는 부연했다.
그는 “모든 경제주체가 인플레이션을 예상한다면 물가상승으로 인한 실질소득의 감소를 회피하기 위해 가격과 임금 인상을 통해 부담을 전가하고, 이런 악순환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존재하는 한 지속된다”면서 “부담을 남에게 떠넘기고 자기는 손해 보지 않겠다는 일종의 사회병리 현상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새 정부의 당면 과제는 물가 안정과 경기 회복이지만, 물가 안정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 유지를 통해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확산·고착되는 것을 억제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제언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상승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최근 한국은행은 물가 상승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4.7%)을 넘어서는 고물가 국면이 연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 6월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연초 3%대 중반을 기록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불과 두 달 만에 5%를 상당 폭 상회하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면서 “앞으로 국내 소비자물가 오름세는 지난달 전망 경로(상승률 연 4.5%)를 상회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덧붙여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적절히 제어하지 않을 경우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