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우크라 보면서 핵 결심 굳혔을 듯”
“北, 한국 정권 교체 전후로 상습 도발”
최근 북한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관련해 북한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틈타 핵 개발 의지를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북한은 3월 24일 오후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발을 동해상으로 고각 발사했다. 지난 2018년 4월, 북한이 자발적으로 핵실험과 ICBM 시험 발사를 중단하겠다며 모라토리엄(유예)을 선언한 지 4년 만에 이를 깨뜨린 것이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매체들은 24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 발사를 단행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발사 장소인 평양 순안비행장을 찾아 이번 시험 발사의 전 과정을 세세히 지도하고 친필 명령서까지 하달했다”며 “김 위원장이 발사 직후 ‘미국과의 장기적 대결을 철저히 준비해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고 전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북한의 이번 발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유예를 스스로 파기한 것”이라며 “한반도와 지역, 국제사회에 심각한 위협을 야기하고 유엔안보리 결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강력히 규탄했다. 아울러 “정부 교체기에 안보에 한 치의 빈틈도 없도록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유관국 및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모든 대응 조치를 철저히 강구하라”며 “대통령 당선인 측과도 긴밀하게 협력하라”고 지시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25일 페이스북 계정에 “서해수호의 날을 하루 앞둔 시점인 어제, 북한이 올해 들어 12번째 도발을 해왔다”면서 “북한에 엄중하게 경고한다. 도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썼다. 이어 “대한민국은 더욱 굳건한 안보태세를 갖춰 자유와 평화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이번 ICBM 발사를 두고 북한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악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WWICS)의 수미 테리(Sue Mi Terry) 한국연구센터 센터장은 24일(현지 시간)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에 게재한 자신의 기고문을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에 이민 온 테리 센터장은 2001~2008년 중앙정보국(CIA)에서 한국 문제에 관한 선임 분석관으로 활동한 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가정보위원회(NIC)에서 한국과 동아시아 업무 등을 담당했다.
그는 ‘북한의 핵 기회주의 : 김정은이 우크라이나 위기를 악용한 이유(North Korea’s Nuclear Opportunism : Why Kim Jong Un Chose to Exploit the Ukraine Crisis)’ 기고문에서 “세계가 우크라이나에 집중하는 향후 몇 주 혹은 몇 달이 북한을 포함한 불량 국가들이 문제를 일으킬 절호의 기회”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김정은 입장에서 핵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결심을 한층 굳히게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테리 센터장은 “김정은은 우크라이나가 1994년 핵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러시아가 감히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며 “핵을 포기한 나라는 취약해지고 지도자들은 축출과 살해 위험에 직면한다는 교훈을 강화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 역대 한국의 정권 교체를 전후한 시점에 상습적으로 군사적 도발을 해 왔다는 점을 언급하며 “보수 정당 후보였던 윤석열 당선인은 이미 강경한 대북 정책을 펴겠다고 시사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을 불과 13일 앞둔 20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된 지 약 한 달 만인 2008년 3월 28일에도 서해상에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남북 관계 개선을 이룬 김대중 정부를 계승한 노무현 정부 출범 때도 북한의 도발은 예외가 없었다. 북한은 노 전 대통령 취임 하루 전인 2003년 2월 24일, 동해상으로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테리 센터장은 “올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집권 10년이자 김정일 생일(2월 16일) 80주년, 김일성 생일(4월 15일) 110주년 등 상징적인 해”라며 특히 오는 4월 15일 미사일 도발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했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서방과 대립하고 있고 중국 역시 미국과 러시아 양쪽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북한은 운신의 폭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중국,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추가 대북 제재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아 사실상 북한의 도발을 키우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두연 김 신미국안보센터(CNAS) 선임연구원도 트위터 계정에 “수차례 경고했듯 북한의 ICBM 시험은 시간문제였을 뿐”이라며 “세계가 러시아·우크라이나에 관심을 쏟고 있을 때가 안전한 시점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고 했다.
한편, 국제사회는 발 빠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3월 25일(현지 시간) 오후 3시 미국 뉴욕 유엔본부 안보리 회의실에서 북한 및 비확산 문제를 다루기 위한 공개 회의를 연다”고 24일 밝혔다. 안보리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공개 회의를 개최하는 것은 2017년 이후 처음이다.
미국은 북한·러시아의 개인·단체에 대한 추가 제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3월 24일(현지 시간) “이란·북한·시리아 비확산법(INKSNA)을 위반한 혐의로 북한과 러시아, 중국의 개인 및 단체에 대한 신규 제재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추가 제재 대상은 북한의 1개 기관, 북한 국적자 1명, 러시아 2개 기관, 러시아 국적자 1명, 중국 1개 기관 등이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내고 “북한이 긴장을 고조하기 위해 올해 시도한 다른 미사일 실험과 마찬가지로 이번 발사는 복수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규탄하며 “이번 (추가 제재) 결정은 모든 나라가 북한과 시리아의 무기 개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북한이 추가 도발을 삼가고 일관되며 실질적인 대화에 관여하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촉구한다”며 “한국과 일본을 방위한다는 우리의 약속은 철통같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도 북한에 새로운 제재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NHK방송이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