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의원 “국민들, 약속 안 지킨 민주당에 실망…당 쇄신·혁신해야”
박종희 교수 “초박빙 승리·거대 야당…정치교착상태 우려”
임동균 교수 “불공정 인식 강화…사회적 희망감 생성해야”
박원호 교수 “젠더 중심의 ‘정체성 정치’ 비중 확대”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주관으로 제20대 대선을 되돌아보고 이번 대선 결과가 우리 사회와 민주당에 남긴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내외문제연구소(준)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는 3월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20대 대선이 한국 정치에 남긴 과제들’이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개최했다.
좌장을 맡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집권 여당이 오만하고 방심하면 언제라도 민심이 쉽게 떠날 수 있다는 걸 느꼈다”며 “권력은 유한하고 민심은 이토록 냉정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민주당은 지금 크게 넘어졌고,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며 “우리가 넘어진 지점, 국민을 향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국민이 실망했다는 그 지점을 제대로 알고 일어나야 한다. 더는 민주당의 약속이 빈말이 되어선 안 된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이어 “지난 5년 정권의 언젠가부터 우리는 원칙 있는 패배보다 당장 손해에 연연해 소탐대실해왔다”며 “민주당이 약속한 정치개혁과 통합 정치는 민주당의 혁신과 쇄신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론으로 본 20대 대선’을 주제로 “맨데이트(유권자들이 투표를 통해 자신의 정책 선호를 강하게 드러내는 현상)는 주로 선명한 비전과 압도적 승리의 경우에 주장할 수 있다”면서 “초박빙 결과(0.75%)에다 ‘정권교체’ ‘이재명 낙선’ ‘여가부 해체’ ‘친미반중’ 등의 상징성 구호 외에 정국을 주도할 청사진을 보여준 것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의 이념적 지형(이재명+심상정=49.8%) 역시 윤석열 당선인(48.56%)이 자신의 어젠다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지형임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임동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대선의 특징으로 ‘모든 집단의 주변화(marginalized)’를 꼽았다. 그는 “실제 피해를 당하지 않더라도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거나 손해를 입은 것 같은 피해 의식이 극단화됐고 이는 불공정성에 대한 인식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아울러 “코로나 시기가 겹치면서 ‘서비스 국가’에 대한 기대와 요청이 강화됐다”면서도 “그렇지만 한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재정 지출이나 증세에 있어 보수적인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서비스 국가 이미지와 충돌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복지 수요 vs 재정 건전성’ 사이의 딜레마가 낳는 사회적 긴장과 좌절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임 교수는 ‘세대’ 문제에도 주목했다. 그는 “기존에도 세대는 투표에서 중요한 축으로 존재해왔으나 이번에 등장한 ‘세대’는 좀 더 문화적으로, 이념적으로 복합적”이라며 “‘젠더’와 교차하며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좌절과 분노, 혐오의 소용돌이로부터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사회적 희망감을 생성시켜야 한다”며 “복잡하게 엉켜있는 사회 문제들의 매듭을 풀려면 ‘경제정책’ ‘산업정책’만으로는 불가능하며 금융·산업·지역·부동산·문화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최고디자인책임자(Chief Design Officer)로서의 국가와 지도자, 정치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토론자로 나선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선거가 한국 선거에서 드디어 젠더를 축으로 한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라는 흐름이 선거를 좌우할 정도로 큰 비중을 띠게 되었다”며 “여론조사들을 살펴보더라도 동일 세대에서 젠더 간 격차가 이처럼 큰 경우는 없었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이를 두고 “너무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흐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면서 “올바른 편, 소수자와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당장은 불리해 보일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그것이 살아남는 길이라는 것을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김준일 뉴스톱 대표는 토론에서 민주당 패인의 하나로 ‘40대의 투표 의욕 상실’을 꼽았다. 그는 “2017년에는 40대 투표율이 78.9%였는데 이번에 70.4%로, 4.5%p나 낮아졌다”라며 “40대가 만약에 지난번 대선만큼 투표했으면 민주당이 이겼을 것”으로 분석했다. 40대가 투표장에 안 나온 이유에 대해서는 “부동산 실정, 민주당의 내로남불, 역대급 네거티브, 후보에 대한 실망감에 이탈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서울은 완벽하게 부동산에 대한 심판이었다”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같은 구(區)라도 아파트가 많은 지역은 국민의힘을 지지했고 단독·빌라·다세대가 많은 곳은 민주당을 선호했다. 선거에서 이기든 지든 항상 서울에서는 보수정당보다 (진보정당이) 득표를 더 많이 해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지지율 변화에도 주목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2012년 대선 당시 20대, 지금의 30대는 민주당 지지가 거의 20%p 빠졌다. 다른 세대가 5%p 안팎으로 빠진 것에 비하면 상당히 큰 폭이다. 민주당은 20대도 중요하지만 30대를 신경 써야 한다. 부동산 실정이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집 구매를 위한 영끌을 시작하는 세대가 30대인데 과감한 대출 여부에 따라 자산 격차가 크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어 “범진보 세력이 점차 늘고 있다”며 “보수 분열 상황에서도 넉넉히 지던 진보는 점차 일대일로 맞붙을 수 있는 상황이 됐고 2017년에는 역전됐다. 민주당이 쇄신하는 것을 전제로 대선 결선 투표제가 도입된다면 민주당에 결코 불리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변화”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윤석열의 득표율은 결코 낮은 편이 아니다”라며 “박근혜, 노무현, 이명박에 이어 민주화 이후 역대 4번째 득표율이다. 민주당의 현명한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여론조사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토론자로 나선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역대급 비호감 선거였다는 점을 두고 ‘한국 정당 정치의 실패 또는 위기’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여론조사로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일은 지양했으면 한다”며 “한국 여론조사가 가지고 있는 불완전성과 위험성을 안다면 실제로 정당이 자신의 대통령 후보를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구조는 정치 코미디”라고 비판했다. 덧붙여 “중앙선거여론조사심위위원회 기능을 재검토해야 한다”면서 “(여심위는) 양질의 공정한 자료를 산출하기 위해 만든 기관인데 질이 안 좋은 조사를 공유해 주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