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자 중국 공산당(중공)이 러시아를 강력하게 편듦에 따라 중공과 우크라이나 간의 과거 ‘친밀’ 관계가 조명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구소련연방 당시 축적했던 군사 기술을 중공에 아낌없이 이전하고 중공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핵우산’ 제공까지 약속했지만, ‘더 힘센 친구’와 싸움이 일어나자 둘 사이를 중재하기는커녕 네 편 내 편 갈라치기만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중국 문제 전문가는 “당내 투쟁과 편 가르기에만 능한 공산당의 전형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중공 군사력 급속성장 시켜준 ‘은인’
해외 중국 민주화 매체 ‘베이징의 봄’ 편집위원으로 뉴질랜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천웨이젠(陳維健 )은 최근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와 중공의 ‘각별한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천 위원은 “중국에는 ‘우크라이나 덕분에 중공의 군사력이 20년 빨리 발전했다’는 말이 있다”며 “우크라이나는 중공의 군사 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들 알다시피 중공 인민해방군 첫 항공모함 랴오닝함은 우크라이나의 항공모함 바랴그호를 고쳐서 만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친절하게 설계도까지 넘겨줬다”며 소련 해체 당시 우크라이나에는 군사 시설이 많았고, 일부 군사 기술자들은 중공의 군사력 발전에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가 중공의 군사력 강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은 중공 관영매체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관영 환구시보는 지난 2014년 1월 기사에서 “우크라이나가 없으면 중공 국방의 성과도 없었다”고 밝혔다.(기사 링크)
신문은 “중국은 우크라이나 군사 공업의 최대 소비국”이라며 “우크라이나는 2013년 이후 중공이 자국의 최대 군사 기술 협력국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보도했다.
한 군사 전문가는 우크라이나가 중공에 항공모함, 대형 해군함정 통합 동력 시스템, 대형 수송기 설계도, 초음속 훈련기, 탱크, 공대공미사일 등 핵심장비기술을 포함해 약 30가지 군사기술을 수출했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중공은 “지난 20년간 중국(중공)은 우크라이나에서 원했던 군사 기술을 거의 모두 얻었다”며 이미 우크라이나의 군사공업의 밑바닥까지 꿰뚫고 있다고 했다. 소련 해체 후 중공이 기술이전·인재영입 프로젝트로 우크라이나의 군수산업을 빨아들였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애국심에 호소해 해외로 나갔던 자국 출신 인재를 ‘유턴’시켰던 한국의 영입 노하우를 모방하기도 했다고 환구시보는 전했다. 당시 우크라이나의 기술자들은 중공과 소련 사이의 우호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는데, 중공이 이에 호소해 최고 수준의 대우가 아니더라도 우크라이나 군사 기술자들을 중국에 데려왔다는 것이다.
중공 인민해방군 측 전문가는 “우크라이나 기술자들은 신중하고 성실했으며, 모든 질문에 답변해줬다. 기술과 설비를 흔쾌히 넘겨줬고 허심탄회하게 속마음도 털어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우크라이나, 중공과 외교·경제적으로 밀접
중공 외교부 공식 사이트에 공개된 정보에 의하면 중공과 우크라이나는 1992년 1월 4일에 수교하고 2001년에 전면 우호 협력 관계를 맺었다. 2011년에는 양측에서 동시에 전략적인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고 발표했다.
중공은 우크라이나가 서로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해 대만·티베트·신장·파룬궁 등 중국 내 굵직한 인권 탄압 문제에 있어 중공과 입장을 같이한다고 주장했다. 중공은 소련 연방 해체 후 우크라이나를 독립 국가로 가장 먼저 인정한 나라 중 하나다.
양측은 경제적으로도 긴밀하다. 우크라이나는 유라시아 지역에서 러시아, 카자흐스탄에 이어 중공의 세 번째 교역 상대국이며, 중공은 우크라이나의 최대 교역국이다. 양측 교역액은 지난 2020년 146억6천만 달러, 작년 상반기에는 93억7천만 달러였다.
우크라이나는 2017년 중공의 경제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가입해 유라시아의 주요 거점이 됐다. 중국 국영기업인 COFCO 중량그룹, 중국태평양 건설그룹(CPCG), 중국항만엔지니어링, 화웨이가 우크라이나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대(對)우크라이나 투자도 활발하다. 중공 상무부에 따르면, 중국 기업의 우크라이나 직접 투자액은 2019년 5332만 달러, 2020년 1~3분기 7570만 달러를 기록했다.
중공, 우크라이나에 안전보장·핵우산 약속
우크라이나는 중공의 ‘핵우산’을 제공받는 최초의 국가이기도 하다. 지난 2013년 12월 시진핑 중공 국가주석은 당시 방중한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중-우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고 ‘동반자 관계 심화를 위한 합동성명’을 발표했다.
이 조약 4조에서 중공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와 ‘1994년 중-우 성명’에 근거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외부의 핵무기 공격 또는 위협이 닥친다면 중국(중공)은 상응하는 안전보장을 제공하겠다”며 소위 핵우산을 제공키로 했다.
94년 ‘중-우 성명’은 중공은 비핵국가인 우크라이나에 핵 위협을 가하지 않고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같은 해 우크라이나는 미국, 영국, 러시아 등과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체결해 당시 세계 3위 규모였던 핵무기를 포기하고 국제사회로부터 안전보장을 약속받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양측이 “상대국의 주권과 안보, 영토의 완전성을 침해하지 않고 지지하기로 약속”한 5조와 6조다. 특히 6조에서는 “양측은 제3의 나라가 자국의 영토를 이용해 중국과 우크라이나의 국가 주권, 안전 또는 영토 완정을 손상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른다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한 중공의 태도는 조약 위반이다. 오히려 중공은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고 즉각 비난했어야 했다. 그러나 중공은 긴장이 고조되자 러시아 편을 들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공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계획을 접한 뒤, 베이징 동계올림픽 끝날 때까지만 늦춰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른다면 전쟁을 사전에 알고 있었지만 우크라이나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은 것이다.
‘미국의소리(VOA)’ 중문판에서 자주 인용되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USC)의 중국전문가 프랭크 셰(謝田) 교수는 “중공이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변덕스럽게 행동한 탓에 신뢰를 상실했고 지금 이도저도 아닌 곤경에 처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셰 교수는 최근 칼럼에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양쪽과 모두 사이가 좋았던 중공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맞아 국제사회에 외교력을 입증할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미국이나 유럽 어느 나라도 얻지 못한 기회였다. 그러나 중공 외교부와 중난하이(중공 고위층 집단 거주·업무 지구) 고위층은 권력 다툼과 내부 투쟁, 국민 탄압에만 능할 뿐, 국제관계와 교류는 잘 관리하지 못해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밝혔다.
셰 교수는 “중공은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를 맞아 그저 힘센 편을 선택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지지를 잃고, 러시아와 함께 국제사회의 제재를 당할 처지에 놓이는 결과만 얻게 됐다”고 일침을 가했다.
중공은 시진핑 국가주석은 침묵한 채, 외교부 성명으로만 입장을 내고 있다. 중공 외교부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각국의 주권과 영토 보존을 존중한다”면서 러시아에 “합리적 요구를 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결정적으로 “침공”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있다. 중공은 또한 지난달 25일 러시아 침략을 규탄하는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표결에서 기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