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푸틴, 옛 소비에트 제국의 영화 꿈꾸는가

허영섭/ 언론인
2022년 02월 03일 오후 3:00 업데이트: 2022년 02월 03일 오후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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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관련국들의 외교적 접촉이 겉돌면서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가 이미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 10만 병력을 배치한 가운데 이에 맞서는 나토(NATO) 파견군도 속속 배치되면서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중이다. 최종 공격 결정권자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중국과의 우호 관계를 감안해 2월 4일 개막되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만큼은 분쟁을 피할 것이라는 분석이 없지 않지만 러시아가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도 조지아에 대해 대규모 군사작전을 벌인 전례를 감안하면 기대난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에 제동을 걸고 있다. 옛 소비에트연방(소련) 일원이던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노선이 과거 종주국 입장에서 불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경우 서방세력의 동진(東進)으로 러시아 안보가 침해받게 된다”고까지 주장한다. 러시아는 더 나아가 나토가 옛 소련권 국가들에서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주둔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내세운다. 전쟁이냐, 아니냐를 가늠하는 러시아의 전제조건이다. 러시아가 과거 조지아를 침공한 것도 나토 가입과 관련한 갈등 때문이었다.

옛 소련권에 속했던 동유럽 국가들이 1999년 헝가리·폴란드·체코를 시작으로 차례로 나토 세력권에 편입됐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러시아의 항변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까지 내 줄 경우 러시아로서는 서방세력과의 완충지대를 잃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자발적 결정을 다른 나라가 간섭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민주주의 가치와 국제질서를 강조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선택을 지지하는 이유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움직임에 전쟁까지 불사하겠다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소비에트 제국의 영화를 되살리려는 푸틴의 개인적 욕망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가 러시아의 최고 권력을 장악한 이래 옛 소련 붕괴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해 온 데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소련 해체는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 “소련 붕괴는 비극”이라는 등의 언급이 그것이다.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이었다가 소련이 무너지면서 생활고를 겪으며 한때 택시를 몰아야 했던 그의 처지를 감안하면 과거 기억에 집착하는 미련이 느껴진다. 더군다나 지금은 제정 러시아 당시의 차르 황제처럼 장기집권 토대까지 마련한 위치다.

푸틴 대통령이 옛 소련 붕괴 이후 30여 년이 흐른 상황에서 위성권에 속했던 동유럽 및 중앙아시아 각국에서 종횡무진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폭력시위가 촉발된 카자흐스탄에 옛 소련 6개국이 참여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병력을 파견해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한 것이 최근 사례다. 천연가스 대금이 체납된 몰도바에 가스 공급을 전격 중단한 것은 물론 그 접경지역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위한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벨라루스에도 현재 러시아 병력이 집결돼 있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이어졌다. 우크라이나 관할이던 크림반도를 2014년 강제 합병했는가 하면 조지아 및 몰도바에 속한 미승인국 남오세티야와 트란스니스트리아에 군사·재정 지원을 하면서 배후에서 조종해 왔다. 친러 반군이 분리 독립을 추진하는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도 반군을 지원하면서 병합 기회를 노리는 중이다. 2002년 주변국들과 함께 군사 연합체인 CSTO를 창설했고, 2015년 경제공동체인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을 출범시킨 것도 비슷한 취지였다. 지난날 주변국에서 연쇄적으로 ‘색깔 혁명(color revolution)’이 일어나 친러 정권이 붕괴됐던 전철을 막겠다는 노력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푸틴으로서는 천연가스 자금줄의 뒷받침을 받는 행운도 누리고 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매장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기도 하지만 현재 유럽에서 사용되는 천연가스의 약 35%가 러시아산이라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그 위력이 입증된다. 실제로 러시아는 가스관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유럽 시장을 흔들고 있다. 유럽으로 연결되는 두 개의 기존 수송관 외에 독일로 연결되는 3번째 수송관 ‘노르트스트림2’가 지난해 완공됐으나 관련국들 사이의 갈등으로 아직 개통되지 못하고 있는데, 이 수송관 갈등도 이번 우크라이나 위기와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그러나 어떠한 명분을 내세우든지 전쟁의 포화를 울려서는 안 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것이고, 전선이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갈등이 옛 소비에트 제국의 영화를 되살리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더욱 경계할 필요가 있다. 소련이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디노스트(개방) 정책으로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이유를 깨닫는다면 더 이상의 집착은 금물이다. 일사불란하게 집중된 권력으로 중앙아시아와 유럽에 퍼져 있는 소속국들을 ‘동물농장’처럼 통제하려는 전체주의로는 국민들의 불행만 키울 뿐이라는 교훈을 역설적으로 입증한 게 바로 소련 붕괴였다.

당장 총칼을 거두고 외교적 타협으로 갈등을 해소하는 게 최선의 방안이다. 전쟁으로 초래될 서로의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공격한다 해도 결과가 뜻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지만 설사 뜻을 이룬다고 해도 더 큰 후유증에 시달릴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19 바이러스에 시달리는 세계 각국 국민들에게도 중대한 과오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과거 소속국들을 조아리게 만들어 크렘린궁에 낫과 망치 그림이 새겨진 옛 소비에트 깃발을 다시 달겠다는 심산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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