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묻다’ 대선 특집 기획을 마련하였습니다.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향후 5년의 운명을 판가름할 차기 대통령이 제시해야 할 비전, 새로운 정부가 수행해야 할 국정과제를 각 분야 전문가의 고언과 해법을 통해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 세 번째 순서로 북한 인권 정책, 대 중국 정책을 주제로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과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은 직업 외교관 출신이다. 서울대 법대 행정학과 재학 시절인 1968년 제1회 외무고등고시에 최연소 합격하여 외무부(외교부)에 몸담았다. 아주국 동북아1과(일본담당) 과장, 주일본대사관 참사관 등을 거쳐 외무부 아주국장으로서 1992년 한·중 수교 실무를 맡았다. 이후 대통령비서실 의전수석비서관, 통일원 차관을 거쳐 국회의장 비서실장으로 공직 생활을 마무리했다. 공직 퇴임 후 21세기 국가발전연구원(NDI) 원장을 거쳐 2021년 북한인권시민연합 제3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감리교 목회자로 국제앰네스티(AI) 한국지부 이사장 등을 역임한 ‘1세대 인권운동가’ 윤현(1929~2019) 이사장이 1996년 설립한 북한인권시민연합은 ‘세계 최초’ 북한 인권 시민단체이다.
“차기 한국 정부는 북한 인권 개선 문제에 목소리를 높여야 하며 중국에 대해서도 당당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석우 이사장을 1월 27일 서울 서대문 북한인권시민연합 사무실에서 만났다.
북한 주민 자유와 인권에 한국 정부 소극적
북한인권 문제는 통일 문제이자 대한민국 국격 문제
자유진영국가 경제성장하면 중국이 민주화 될 것이라 오판
한국정부의 북한 인권 정책에 대해서 평가해 주세요.
“한국 정부의 북한 인권 정책은 없는 듯해 보입니다. 북한 인권정책이라 하면 ‘북한 주민, 우리 동포의 자유·인권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다루는 정책 아닌가요? 한국 정부는 이를 외면하는 듯합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심기’를 우선 고려하거나 북한 정권 눈치를 보느라 북녘 땅 우리 동포의 자유와 인권을 외면하는 것이죠. 반(反) 인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 정부 들어 더 심각하다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의 북한 인권정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김석우 이사장의 지적대로 현 정부는 북한 인권 정책에 소극적이다. 관련 예산에서도 알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22년 북한 인권 정책 개발, 국제 네트워크 조성 등 ‘북한 인권’ 예산은 1억 5100만 원이다. 2020년 2억 2300만 원, 2021년에 1억 6200만 원이었던 것에 비해 3년 째 줄어들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인 2016년의 3억 3400만 원과 비교하면 절반 넘게 줄어들었다. 국책연구기관 통일연구원의 ‘북한 인권 백서’ 발간 예산은 2020년 6903만 2596원에서 2021년 1580만 2336원으로 줄어 들기도 했다. 이는 외국 정부 예산과 비교해도 현격한 차이가 난다. 미국 정부의 기금을 지원 받아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비영리 민간단체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NED)의 2020년 회계연도 ‘북한 프로그램’ 예산은 552만 달러였다. 같은 시기 한국 통일부의 북한 인권 관련 예산은 북한 인권 개선 정책 수립과 추진비 3억 3천 700만 원, 북한인권기록센터 운영비 7억 6천 600만 원 등 총 11억 300만 원으로 미국의 1/5 수준에 그쳤다.
김석우 이사장은 한국 정부의 북한 인권 정책에 대한 지적을 이어갔다. “북한인권법이 2016년 제정·발효됐습니다만 6년 동안 실질적으로 시행이 안 되고 있어요. 북한인권법이 시행되면 북한 인권 개선이나 탈북자의 한국 내 정착 등에 핵심 역할을 합니다. 그중 핵심이 북한인권재단 출범이라 할 수 있죠. 북한인권결의안 문제도 빠트릴 수 없는 문제고요. 2003년 제59차 유엔 인권위원회(현 인권이사회 전신)가 처음으로 ‘북한 인권 결의’를 채택했고 유엔 총회에서는 2005년부터 ‘북한 인권 결의’가 채택됐잖아요. 한국은 2019년부터 공동 제안국에서도 빠졌습니다.”
북한인권법 시행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이유는 뭐라 보나요?
“기저에 기본적으로 북한 정권이 싫어하는 행위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 자리한다 봅니다. 북한인권법 제정의 기본 취지는 북한 주민, 즉 우리 동포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를 향유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한국 정부는 적극 돕는다는 것입니다. 현 여권은 기본적으로 북한 정권과 대립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겠다는 듯해 보입니다.”
이렇게 정의한 김석우 이사장은 통일원 재직 시 경험담을 들려줬다. “통일원 차관으로 일할 때 당시 권오기 장관과 역점 사업으로 추진한 것이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탈북주민지원법)’ 제정입니다. 법률을 제정하고 탈북자 정착 시설 하나원을 설립했는데 국회에 관련 예산을 요청하자 당시 새정치국민회의(더불어민주당 전신) 소속 의원들이 반대 논리를 펼쳤죠. ‘이 법이 시행되고 하나원이 설치되면 북한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이는 남북한 관계 경색으로 이어진다’는 논리였죠.”
북한인권법은 북한 동포가 누려야 할 기본권 여건 조성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는 소극적입니다.
“2013년 마이클 커비(Michael Kirby) 전 호주 연방 대법관이 유엔 인권이사회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Commission of Inquiry) 위원장을 맡아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 최종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 차원의 첫 종합보고서였습니다. 보고서는 북한 내의 인권 침해 수준은 심각하며 전 방위적 인권 침해가 자행 되고 있다고 결론 냈습니다. 인권 침해 정책 결정자는 국제형사재판소(ICC·International Criminal Court)가 심리해서 법적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도 권고했습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 최종보고서가 발간된 지 9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북한 인권 상황은 악화일로죠. 이를 전세계가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 속에서 ‘한국 정부가 북한 인권 개선 문제 제기를 안 한다?’ 이는 정상적이지 않을뿐더러 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판단되기도 합니다.”
북한 인권 문제와 통일의 상관 관계는 무엇인가요?
“북한 정권이 약체화 된 상태에서 통일을 하겠다는 것은 결국 남한(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을 의미합니다. 북한 주민의 자유·인권이 완전히 박탈 당한 상태에서는 정상적인 통일의 길로 갈 수 없습니다. 남·북한 주민의 인권이 대등한 수준으로 보장 받을 때만이 서로 소통하고 화합하며 통일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처럼 북한 인권 실태에 눈을 감고 독재정권의 심기만을 우선시한다면 ‘통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2020년 김석우 이사장은 한 매체 기고 칼럼에서 “한국 정부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은 외면하고 김정은 정권의 심기에 더 신경을 쓰는 격이다. 북한 정권이 다시 기운을 회복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면서 분단을 지속하려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통일원 차관 시절 추진한 북한 관련 정책 중 무엇이 기억에 남나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탈북주민지원법)’을 제정하고 통일원 직제를 개편하여 ‘인도지원국(局)’을 설치하고 산하에 3개 과(課)를 신설한 것입니다. 통일부 산하에 인권 관련 조직을 만든 것은 최초였죠. 남·북한 관계 개선에 있어서 군사·정치·경제 문제도 필요하지만 ‘인권’이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총무처를 설득해서 조직도 신설하고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과 국회에서 예산도 편성 받았습니다. 탈북자 교육 시설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을 설치한 것도 빠트릴 수 없습니다. 하나원 개원 이전에는 탈북자들이 이른바 ‘합동신문조’라고 군 부대 내 시설에서 국가정보원·국군정보사령부·경찰 등 관계 기관의 조사를 받고 남한 내 적응 과정을 거쳤어요. 탈북자는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 왔는데 그런 시설에서 적응 교육 받는 것이 맞지 않다고 판단했고 제대로 된 적응 시설을 만들자고 해서 탄생한 것이 1999년 공식 개원한 하나원입니다. 탈북자를 통일 역군으로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둔 시설이죠.”
통일원 차관 재직시
탈북주민지원법 제정, 하나원 설치, 통일부 인도지원국 신설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요?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운전자론’을 주장했지만 지난 5년을 돌이켜 보면 ‘운전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 했다 봅니다. 북한에 주도권을 내준 형편이죠. 기본적으로 북한 눈치를 살피면서 북한 정권이 싫어할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한국 정부와 대통령을 향해 조롱을 해도 침묵하거나 소극 대응했죠.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기도 하고요. 탈북자 지원 단체나 통일 운동 단체에 유·무형의 압력을 가해 존립 기반을 흔드는 것도 빠트릴 수 없습니다. 탈북자 돕기나 통일 운동하는 단체들 형편이 많이 어렵죠.”
김석우 이사장의 이야기는 손광주 전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았다. 손광주 이사장은 “북한 인권운동·통일운동 단체의 재정 형편이 날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해당 단체에 후원했을 경우 따를 불이익이 두려워 후원자들이 나서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비슷한 일을 하는 단체 사무실을 통합하고 하다 하다 나를 비롯한 단체 대표들이 살던 집을 팔기도 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차기 정부 대북 정책의 방향은 어떠해야 할까요?
“기본적으로 김영삼 대통령이 1994년 제시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기본 원칙을 준수하며 현실에 적용 시켜야 한다 봅니다. 북한 경제 사정이 어렵다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야 얼마든지 지원해야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침묵하거나 방관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북한 정권이 주민 인권 침해나 유린을 하지 않게 유도해야 합니다. 북한 정권이 주민 인권 개선 요구를 받아 들이면, 식량·약품 등은 지원해도 무방합니다. 인륜의 문제이니까요. 다만 북한이 핵 개발이나 대륙간 탄도탄(ICBM) 개발 등 남한을 적화 통일하겠다는 야욕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상황 속에서 일방적인 대북 지원은 무의미하다 봅니다.”
새로운 정부가 대북한 정책에서 해야 할 것을 꼽는다면요.
“대한민국 헌법 제4조에 명시한 ‘자유민주적 평화통일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합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아도 자유민주적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증명됐고 이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공식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022년 현재 3만 5000명에 달하는 탈북자들이 적응하여 성공하고 통일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통일 교육도 중요합니다. 더더욱 2030세대로 불리는 젊은 세대에게 통일 교육이 필요하다 봅니다. 통일이 왜 필요하며, 통일된 대한민국의 미래상은 어떠한지를 제대로 보여 주는 것이죠.”
통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김석우 이사장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통일의 필요성이 약화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말을 이어갔다. “통일 전에도 대한민국은 건국-산업화-민주화-선진화 과정에서 제 역할을 다하며 세계 일류 국가로 발돋움했습니다. 통일이 된다면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고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강대국 간 균형추 역할을 하며 역내(域內) 평화·번영을 선도하는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래상을 젊은 세대에게 적극 제시하고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감대를 늘려야 합니다.” 통일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설명하던 김석우 이사장은 ‘인권’ 측면에서도 통일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 입각한 통일 정책 필요
젊은 세대에게 통일된 한반도 미래상 제시해야
통일이 인권 증진에 도움이 되나요?
“통일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인권 중심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아니 될 수 있습니다. 지구 상에서 동아시아 지역은 인권 후진지역입니다. 그중 북한·중국의 인권은 최저 수준이죠. 인권 후진 지역이라 할 수 있는 동아시아 지역의 미래를 위해서 대한민국이 앞장서야 합니다. 인권 증진 분야에서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지역 장래를 위해서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중국이나 일본은 정치 체제나 과거사 문제가 발목 잡아 할 수 없는 일인데 오직 대한민국만이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대북한 정책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북한 독재 정권 강화나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되는 일은 그 어떠한 것도 해서는 안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북한 인권 유린 실태에 대해서도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대한민국 ‘국격(國格)’과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자기 동포의 인권 문제에 침묵하면서 세계 어딜 가서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 문명국가이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6·25전쟁 종전선언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북한 체제의 근본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종전선언 추진은 대한민국 안보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한미동맹의 근본을 뒤흔드는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북한이 대남 적화 정책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추진하는 종전선언은 백일몽(白日夢)에 불과합니다.”
북한 인권 문제로 시작한 이야기는 올해 수교 30주년을 맞이한 한·중 관계 이야기로 흘러갔다. 김석우 이사장은 1992년 한·중 수교 당시 외무부(외교부) 아주국장으로서 수교와 대(對)대만 단교 문제 등을 처리한 보이지 않는 주역이었다.
수교 30주년을 맞이하는 한·중 관계에 대해서 평가해 주세요
“1992년 8월 24일, 한·중 수교 이후 경제·무역 분야를 중심으로 양국 관계는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다 2016년 주한미군의 사드(THAAD) 배치를 명분으로 중국이 이른바 한한령(限韓令)이라는 제재 조치를 취했죠. 여전히 풀지 않고 있고요. 2017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지난날 중국의 속국(屬國)이었다’고 발언하기도 했죠. 중국이 과거 제국 시절 조공체제로 복귀했으면 좋겠다는 내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발언이라 봅니다.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도 속을 들여다 보면 중국 중심 조공체제를 꿈꾸는 것이라 할 수 있잖아요. 중국이 한국에 있어 불평등 관계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시대착오적이라 생각합니다. 중국은 육상으로 14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 인접국과 관계가 험악하잖아요. 한국, 일본 등 해상으로 국경을 마주한 6개국과 관계도 마찬가지고요. 각종 여론 조사에서 중국에 대한 비호감도가 급상승 중인 점 등 중국은 자국이 처한 현실을 자각하고 외교 정책을 수정해야 합니다.” ‘대중국 관계에 저자세라 평가 받는 한국 정부의 현실’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김석우 이사장은 “지난날 반미 운동을 하던 이른바 민주화 인사들이 학생 운동 시절 읽은 책 중에는 중국 공산당이나 중국 공산당 지도자를 미화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 많다”며 이념적 지향성이 대중국 외교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듯하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중국 앞에서 스스로 왜소해지는 것은 중국으로부터 홀대 받는 원인을 제공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가 중국에 저자세일 수밖에 없는 원인으로 ‘북한 변수’가 꼽힙니다.
“북한 체제 변화를 위해서는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에 저자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저자세일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입을 연 김석우 이사장은 1992년 한·중 수교와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北方政策·Nordpolitik)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북방정책을 추진한 노태우 정부가 한·중 수교를 추진한 근본 이유는 중국이라는 실체를 무시하고는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북방정책의 최종 목표인 통일로 가는 과정에 있어서 베이징(北京)을 통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오랜 우방인 대만과 국교를 단절하는 대가를 치르면서도 중국과 수교를 결정한 것은 통일을 위해서는 타이베이(臺北)가 아닌 베이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만이 우리의 통일에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으니까요.” ‘통일 우회론’이라 할 수 있는 북방정책의 최종 목표인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중국과 수교가 불가피 했다고 설명한 김석우 이사장은 중국에 대한 기대와 실망에 대해서 말을 이어갔다. “한·중 수교 시 중국도 마찬가지겠지만 한국도 중국에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경제발전에 한국이 쌓은 노하우가 도움이 되고 중국은 경제 성장 후 민주화·자유화로 나아가면 북한 체제 변화와 통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 판단했는데 돌이켜 보면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였다 봅니다. 중국은 경제 성장 후에도 중국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는 강화하고 패권을 두고 미국과 경쟁하고 있죠. 또한 중국은 통일될 경우 한국군에 더하여 주한미군이 압록강까지 진주하게 되면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을 받게 되는데 이를 우려하여 통일을 바라지 않죠. 북한 정권과 중국은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라서 김정은 정권이 무너지지 않게 돕는 것이고요. 결론적으로 중국은 남북한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자유진영국가들 중국 오판
조공질서 회귀하려는 중국에 당당해져야
미중 패권경쟁이 첨예화되고 있습니다. 해양국가 미국과 대륙국가 중국 사이에 낀 반도국가 대한민국의 선택은 어떠해야 하나요?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합니다. 미국과 관계가 강화돼야 북한을 비롯하여 중국, 일본 등 이웃 국가들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이웃인 중국도 경시할 수는 없습니다. 경제·무역·문화 등 비정치 분야 교류 확대로 이른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지혜를 발휘하여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생존을 도모해야 합니다.”
이같이 정리한 김석우 이사장은 다음을 강조했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와 시장경제라는 경제체제를 근간으로 발전하고 번영을 누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세계 모범국가로 꼽히는 대한민국이 중국이 원하는 대로 따라갈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미국 조야에서는 ‘중국을 오판했다’는 자기반성이 나오기도 합니다.
“한국은 중국을 오판했습니다. 중국과 수교하고 관계를 발전시키면 통일에도 도움이 되고 경제적으로 중국이라는 큰 시장을 얻게 돼 좋다고 봤습니다. 더 큰 차원에서 중국이 정상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자유 진영 국가들은 ‘중국이 경제성장을 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 하는 등 제도 면에서 시장경제 체제에 편입되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가 발전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예측이 빗나간 것이죠.” 지난날 제1세계로 불리던 자유진영의 중국에 대한 오판에 대하여 김석우 이사장은 설명을 이어갔다. “마이클 필스버리(Michael Pillsbury) 미국 허드슨 연구소 중국전략센터장이 쓴 ‘100년의 마라톤’ 등에도 등장하는데 중국 대외 정책의 기조는 ‘손자병법(孫子兵法)’에 기반합니다. 상대방을 속이는 것에 주안점이 맞춰져 있는데 미국도 속은 게 아니겠어요? 결과론적으로 중국의 이른바 ‘대국굴기’를 미국, 한국, 일본이 다 도운 것이죠. 한국은 중국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핵심 기술을 전수하는 역할을 했고요.”
차기 대통령과 정부에 조언하고 싶은 것은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유엔 창립 이후 국제 사회의 기본 틀은 바뀌었습니다. 인구·영토·경제력·군사력 등 ‘국력’과 상관없이 지구상의 모든 국가는 하나하나가 독립국가·주권국가로 존중 받습니다. 지난날처럼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하는 등 개별 국가의 주권이 침해 받는 것은 이전만큼 쉽게 발생할 수 없어요. 이러한 시대 변화 속에서 ‘세계적 대국 지역적 소국’이라 평가 받는 대한민국도 중국 등 이웃 강대국들에게 당당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과는 선린우호(善隣友好) 관계를 유지하는 건 맞으나 사드 배치 문제 등 주권에 관련된 문제나 역사 왜곡 등 한국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해야 합니다. 달리 말해 중국이 한국 등 이웃 국가들과 과거 조공체제로 환원하려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대한민국이 영토 크기에서 작을 뿐 경제 수준, 문화 수준, 국민 의식 면에서는 중국에 앞서 있는데 굴종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