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민은행이 15일부터 금융기관의 지급준비율(지준율)을 9.4%에서 8.9%로 인하했다. 지준율은 은행이 예금 가운데 중앙은행에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하는 비율로, 지준율을 낮추면 시중에 풀리는 돈이 늘어나게 되고 경영 압박을 받는 기업은 어느 정도 숨통이 틔게 된다.
예를 들어 기업이 은행에 100위안을 예치할 경우, 은행은 중앙은행에 준비금으로 9.4위안 주던 것을 8.9위안만 주면 되고, 100위안을 예치한 이 기업이 대출할 수 있는 금액은 기존의 90.6위안에서 0.5위안 올라 91.1위안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 0.5%를 결코 무시해선 안 된다. 지준율을 0.5% 낮춤으로써 은행들은 1조 위안(약 177조원) 규모의 자금을 더 유통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은행 지준율을 조정하는 것은 거시경제 3대 통화정책 중 하나다. 지준율 인하는 유동성을 공급해 경제 성장을 자극하기 위함이다. 이는 경제가 침체되자 당국이 자극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음을 보여준다.
경제 성장과 인플레이션은 정부가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2대 문제다. 경제 성장은 경제 데이터 외에도 소비, 실업 등의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실업수당 수령자가 늘어나는 등의 경제수치 악화가 나타나면 주식시장은 오히려 반등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왜 그럴까? 모두가 연준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는 돈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하고, 주식시장의 상승세를 의미한다.
중국의 상황도 유사하다. 그래서 중국 중앙은행이 지준율을 인하한 후 중국 주식시장과 홍콩 주식시장은 모두 반등했다.
중국이 직면한 문제는 역시 심각한 실업난이다. 정부가 공식 발표한 “실업률 5%”가 정확한 수치가 아님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정부 공식 데이터는 도시 주민의 실업률이다. 이 통계에 잡히려면 도시 주민이어야 하고 또 당국에 실업자 등록을 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통계에서 제외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중국의 실업률을 추정할 때 통상적으로 3을 곱한다. 즉 실질 실업률은 대략 15%라는 뜻이다.
리커창 총리는 최근 중국의 ‘링훠(靈活·유연하다는 의미) 취업’을 한 인구가 무려 2억 명이 넘는다고 했다. 링훠취업이란 아르바이트나 날품팔이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불완전한 취업 상태를 일컫는다. 정부 공식 데이터 5%에 이 2억의 링훠취업 인구를 더한다면 당연히 15%를 훌쩍 넘어설 것이다.
이는 중국 경제 문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지준율을 인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경제를 가늠할 수 있는 측도가 또 하나 있다. 국가부채 수준이다. 중국의 작년 총부채는 GDP의 300% 수준으로 증가했고, 올해 1분기에도 계속해서 증가세를 나타냈다. 외환보유액에서 외환부채를 제한 중국의 순외환보유액은 1분기 4000억 달러 감소했고, 이는 부채의 악화를 반영한다.
현재 전 세계가 직면한 최대 문제는 인플레이션과 물가 상승이다. 일반적으로 이럴 때는 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를 잡는데, 중국은 역으로 지준율 인하를 택했다. 이는 물론 인플레이션 위험보다 경제 침체가 가져오는 위험이 더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중국 대륙의 현재 상황은 경제불황 속 물가상승(스태그플레이션) 상태다. 즉, 물가가 상승하는데도 경기는 침체하고 임금은 줄어든다.
임금이 정말 줄어들까? 적어도 다수 지역의 지방 공무원은 감봉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당국은 허난, 장시, 광둥 등지의 공무원 및 교사들에게 지급한 성과급과 상여금을 반환하도록 요구했다.
지난 7일, 장시성 난창(南昌)시 수리국(水利局)은 2021년 6월 7일 이후 지급한 상여금을 10일 이내에 무조건 반환하라는 공문을 각 기관에 보냈다. 장시성 더싱(德興)시 정부도 이날, 이미 지급한 상여금을 당일 12시 이전에 학교 은행카드로 반환하라고 전체 교사들에게 통지했다.
웨이보에는 상하이, 장시, 허난, 산둥, 충칭, 후베이, 광둥 등의 성시(省市·성 및 직할시)에서 공무원 상여금 지급을 중단했거나 반환을 요구한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과거 40년 동안 재정 상태가 가장 좋았던 광둥성, 차오저우(潮州)시는 7월 3일 공무원 주택보조금과 상여금 지급을 중단한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산웨이(汕尾)시 역시 같은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광둥성 선전시에서도 국영 기업 및 비영리 기관 등이 직원들의 최근 몇 년간 수입을 집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중국에서 1인 평균 GDP가 가장 높은 상하이시도 1분기 이후 공무원 상여금 지급을 중단했다.
중국 공무원의 임금은 기본급, 상여금 및 각종 보조금 등 여러 가지로 구성돼 있다.
상여금과 보조금은 전체 급여 소득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만약 상여금 지급을 중단한다면 급여의 절반 이상이 날아가는 셈이다. 이는 작은 일이 아니다. 감봉으로 인한 생활고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에서는 일부 기관들이 반환하지 못하는 직원들에게 은행 대출을 권유했다는 소식이 나돌고, 장시성 주장(九江)은행은 상여금 반납을 하지 못하는 직원을 위해 ‘환불 대출’ 상품을 출시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경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기에 감봉하고 환불을 요구하는 걸까?
작년 상반기 중국 재정 적자는 30% 증가했고, 지방 부채는 3조 4천억 위안 증가했다. 정부가 공식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1개 성시 중 상하이시만 재정 흑자를 기록했고, 나머지 30개 성시는 모두 적자가 났다. 비교적 큰 압박을 받고 있는 허난, 쓰촨, 윈난성 등은 적자 폭이 2500억 위안 이상이다.
적자 상태라는 것은 재정이 부채로 유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돈을 무제한 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령 정부가 돈을 찍어내 충당한다 하더라도 뒤이어 악성 인플레이션과 경제 붕괴로 이어질 위험이 따른다. 베네수엘라가 그 실례다.
작년 5월 리커창은 정부업무보고에서 각급 지방정부는 반드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고, 중앙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또 중앙 정부의 지출은 마이너스 지출로 정해야 하며, 그중에서도 긴급을 필요로 하거나 필수 지출이 아닌 항목은 50% 이상 감축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진정한 생활고는 일반 공무원들과 교사들이 겪을 것이다. 중앙 정부 각 부서 및 위원회의 공무원, 공산당 시스템의 현직 또는 퇴직 관리들은 이런 생활고를 겪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사회 구조상 공무원은 소득과 지위 면에서 상위권에 든다. 그런 공무원이 이럴진대 일반 민중은 오죽하겠는가. 필자의 한 친구는 대형 중앙기업에서 일하는데 작년에 상여금이 대폭 줄었고 올해는 더 줄 것이라 했다.
과거 중국에서 경영 실적이 가장 좋았던 알리바바, 화웨이, 텐센트 등 대형 IT 기업들 역시 올해에는 힘든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휘상은행(徽商銀行)에 돈을 빌린 칭화유니그룹(清華紫光)은 상환을 하지 못해 파산 신청을 했다. 칭화유니는 미중 간 첨단기술 전쟁의 주력 부대로, 하드웨어 설계와 반도체를 담당하고 있어 기본적으로 중국 하이테크의 유망주였다.
칭화유니는 과거 10년 동안 거액의 정부 자금을 지원받아 여기저기서 기업과 인재를 빨아들였다. 또 시진핑의 측근 류허(劉鶴) 부총리가 중국 첨단기술 발전 책임자로 지명됐다. 칭화유니는 류허의 정예부대와도 같았지만 결과적으로 파산 신청을 했다. 물론 이 그룹이 당국의 특혜 지원을 받아 회생할 수도 있겠지만, 파산을 선택한 것으로 보아 중국의 첨단 기술이 한계에 부딪힌 것은 분명하다.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기업들은 지난 몇 년간 돈을 버는 기계이자 융자 기계로서 주로 미국의 첨단기술 자본을 유치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매우 나쁘다. 디디추싱 앱이 당국에 의해 앱스토어에서 삭제된 이후 국제 자본이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중국 기업의 해외 자금 조달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한편 올해 상반기 중국 민간 투자 역시 심각하게 위축됐다. 민간 기업들이 당국으로부터 잇달아 타격을 받는 상황에서 어떻게 투자를 늘리겠는가?
과거 10년 동안 바이두, 텐센트, 알리바바 등의 하이테크 기업들이 가장 크게 성장했다. 그들은 직접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한 후 중국 내 신흥 산업에 대거 투자했다.
알리바바는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알리바바의 부상은 중국 중소형 오프라인 상점들의 쇠퇴와 맞물려 있다. 필자는 한 중급 도시에서 가장 번화한 백화점에 입점한 점포 200개 중 120개가 지난 3년 사이에 문을 닫았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전자상거래에 택배를 더한 비즈니스 모델에 밀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하이테크 기업은 부의 시소 효과, 즉 시장 변화에 따른 쏠림 현상에 편승해 오프라인 상점의 매출과 이윤을 흡인해 부상했고, 이런 급격한 환경 변화는 심각한 구조적 실업을 야기했다.
오프라인 상점을 운영하던 점주가 폐점한 후 전자상거래에 바로 뛰어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새로운 시장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정부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미국은 배터리 기술이 20년 전에 성숙했지만, 왜 이제야 전기차 사업을 추진하겠는가?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산업의 급속한 전환은 심각한 사회 충격을 가져오기 때문에 정부가 매우 신중하게 조정한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기차가 자동차 시장을 흔들면 석유와 자동차 산업이 타격을 받게 되고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과거 10년 동안 중국의 전자상거래 업종의 부상은 전통적인 비즈니스 마케팅 방식을 파괴했다.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약인지 독인지는 분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소상공업자와 종업원 수천만 명이 의존했던 생존 환경이 파괴됐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중국공산당 정권이 무너지는 데 필요한 조건은 이미 갖추어졌는데, 두 가지 사건만 발생하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하나는 대외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는 것이다. 지금 상황을 볼 때 본격적인 경제 위기가 시작됐고, 외부 환경과 내부 요인이 겹치면서 ‘퍼펙트 스톰’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대외적으로 전운도 감돌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초한전(超限戰), 즉 무제한 전쟁으로 미국을 이기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그래서 지금은 이미 ‘무제한 전쟁 대 무제한 전쟁’ 양상으로 전쟁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결과가 어떨지 조용히 지켜볼 일이다.
/스산(石山·필명) 중국문제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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