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박태환의 라이벌’이었다가 베이징 올림픽 3관왕으로 올라선 중국 수영의 간판스타 쑨양. 화려한 성적 뒤에는 약물의혹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사실로 판정되면 남의 메달을 가로챈 비열한 인물로 전락할 터였다. 쑨양은 도핑검사를 거부했고 선수생명을 잃게 됐다. 중화인민공화국(중공) 정부는 ‘쑨양 내치기’ 쪽으로 가닥을 잡은 눈치다.
중국의 수영스타 쑨양(29)이 선수 자격정지 8년을 선고받아 사실상 선수생명이 끝나게 됐다.
쑨양은 한국 수영선수 박태환의 라이벌로 국내에도 잘 알려졌던 선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엄청난 실력으로 박태환을 앞지르더니, 지난 베이징 올림픽 수영에서는 3관왕을 차지했다.
믿기 힘든 실력 향상에 국제 스포츠계에는 ‘쑨양이 약물을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쑨양은 펄쩍 뛰었지만 도핑검사는 거부했다.
이에 지난 2018년 9월 국제도핑시험관리 요원들이 쑨양의 집을 급습해 도핑검사용 샘플을 채집하려 했지만, 쑨양은 경호원과 함께 검사를 방해하고 회피하다가 결국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회부됐다.
이런 기습검사는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모두 따라야 하는 반도핑 규정에 따른 정당한 집행이었다.
사건을 맡은 스포츠중재재판소는 지난 2월28일 쑨양의 반도핑 규정 위반혐의를 인정해 8년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다. 이달 4일에는 8년의 중징계를 내린 이유를 자세히 밝힌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보고서 내용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중국 정부가 보인 반응이다.
보고서가 공개된 4일 중국 검찰 기관지인 검찰일보(检察日报)는 2페이지에 걸쳐 스포츠중재재판소 판결과 쑨양에 대한 평론 4편을 실었다.
법조계 신문으로서, 판결내용을 분석해 반박하고 자국 수영스타인 쑨양을 두둔하는 내용이었을까?
정반대였다. 이날 4편의 평론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쑨양이 잘못했다, 판결이 맞다’는 것이었다.
평론 중 한 편은 제목이 ‘규칙을 무시하면 상응한 결과를 받아야 한다(無視規則將會承擔相應後果)’였다. 이 글에서는 “도핑검사 샘플 채집에 비협조한 쑨양의 잘못”이라며 “무지하고 몰지각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다른 평론(商業比賽不能與國家榮譽捆綁)에서는 “선수가 국제적인 스포츠 경기에 참가하기로 했다면 반드시 국제도핑시험관리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며 “쑨양이 스포츠경기 성적을 국가의 명예로 결부시켜 무리수를 뒀다”고 지적했다.
중국 온라인에서는 쑨양 지지여론이 쏙 들어갔다. 도핑에 대한 항의로 쑨양에 같은 시상대에 서기를 거부한 호주 수영선수 맥 호튼에 대한 사과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쑨양은 이번 판결이 늦춰지는 사이 지난해 7월 한국 광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200m와 400m 2관왕을 차지했다. 같이 겨뤘던 맥 호튼은 시상대에서 쑨양을 외면했다. 쑨양은 그를 향해 “루저(패배자)”라고 했었다.
선수들의 약물 사용, 공산·독재국가에서는 ‘조직의 지시’
중공 같은 공산독재국가에서 스포츠 선수의 약물복용은 대다수 조직에 의해 결정된다. 미국이나 호주 같은 민주국가 약물복용이 개인의 선택인 것과는 다르다.
1970년대부터 수십년간 중국 국가대표팀 팀 닥터로 활동한 근무한 의사 쉐인센(薛蔭嫺,82)은 중국 체육계에서 약물사용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몇 안되는 인물이었다.
쉐인센은 1980년대 중국 체조계 간판스타였던 리닝(李寧) 등 스포츠스타들에 대한 약물투입을 반대했다.
그녀는 1988년 서울올림픽 전 선수들에 대한 약물투여를 거부하다가 쫓겨났고 이후 ‘입막음’ 협박에 시달리다 지난 2012년 독일로 이주했다.
그녀가 30여년 가까이 근무하며 기록한 총 68권의 근무일지에는 중국 체육계에 만연한 약물남용 실태가 고스란히 담겼다.
이에 따르면, 역도·육상·수영·체조 등 중국이 금메달을 휩쓴 종목들은 약물투입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분야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중국은 금메달 8개를 석권하며 역도 최강국으로 면모를 과시했다. 비슷한 체구의 한국인이 비해 압도적인 성적에 세계를 놀라게 했다.
중국 정부당국은 선수들에게 강제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약물을 투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핑 테스트 회피방법을 연구했다.
쉐인센은 “중국의 모든 금·은·동메달에는 약물의 오점이 묻어 있다”고 했다.
그녀는 약물투입과 관련해 “부작용이 너무 심하다. 악성 뇌종양, 심각한 간손상, 간암을 일으킨다. 심장, 혈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온몸의 모든 조직, 운동계를 망가뜨린다. 근육파열, 힘줄단절 등이다. 가장 심각한 건 뼈를 약화시켜 쉽게 골절되게 만든다는 것이다. 여성의 경우 성전환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도 했다.
1990년대 초반 세계여자육상 중·장거리를 휩쓴 ‘마군단(馬軍團)’의 약물남용을 분석한 ‘마가군조사(馬家軍調査)’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실렸다.
마군단의 수장 마쥔런(馬俊仁)이 직접 선수들에게 약물을 주사하거나 투여했으며, 이런 약물을 받아들인 여자선수들 몸에서는 비정상적 변화가 나타났다. 기형아를 낳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마쥔런과 그의 선수들은 2002년 티베트 고지대 캠프에 나타난 세계반도핑기구 요원들을 피해 도망치는 추태를 보이다 국제무대에서 퇴출됐다.
당시에도 중국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마쥔런을 내쳤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약물사용을 마쥔런 독단에 의한 일로 덮어씌웠다는 지적이었다. 아직 쉐인센이 아직 중국 스포츠계의 약물 만연을 알리기 전이었다.
중공은 운동선수가 잘 나갈 때는 환호하고 떠받든다. 그러나 일단 문제가 생기면 가차 없이 내친다. 공산주의 정권의 본성이기도 했다.
쑨양은 아마 이를 몰랐을 것이다. 그는 중공이 자신을 토사구팽할 줄 모르고 감사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 2월말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서 자격정지 8년 결정을 내렸을 때 쑨양은 “국가체육총국, 중국수영협회와 그외 지도자분들의 관심에 감사드린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비슷한 사건은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2012년 런던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복식에서 벌어진 사상초유의 4개팀 고의패배 연루사건이다.
이 대회에서 세계랭킹 1위 여자복식조였던 중국 대표팀 왕샤오리와 위양은 감독으로부터 고의패배를 지시받았다. 다른 조에 속한 또 다른 중국팀과 맞붙지 않으려는 꼼수였다.
일부러 지는 경기를 하자 객석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마침 상대팀이었던 한국 대표팀은 중국팀의 어이없는 경기에 반발해 다음 게임에서 똑같이 응수했다. 인도네시아팀도 중국팀에 똑같이 반격했다(링크: 보도영상).
결국 고의패배 논란이 일면서 중국(1팀)뿐만 아니라 한국(2팀), 인도네시아(1팀) 등 총 4팀이 실격을 당했다.
실격판정에 한국과 인도네시아 선수단은 즉각 항의했다.
그러나 중국 선수단은 “실격판정을 받아들인다”며 왕샤오리와 위양에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웠다.
중국 올림픽 위원회 역시 ‘두 사람의 일탈’로 몰아세우며 스포츠 정신 위배 행위를 강하게 비난했다.
신화통신은 즉시 평론을 발표해 “나라에 이런 금메달은 필요 없다”며 두 사람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마치 정의의 화신이라도 된 듯 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중국 선수단이 이를 인정하면서 실격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4년간 땀흘린 선수와 코치들은 억울함을 가슴에 품고 그대로 꿈을 접어야 했다. 자국에서도 징계를 받아야 했다. 중국 대표팀의 꼼수에 휘말린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어쩌면 쑨양은 약물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도 뛰어난 기록을 남길 선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감독, 그 배후의 중공 정권의 지시에 따라 타인에게 돌아갔을지 모를 메달들을 가로챘다.
그가 가로챈 메달의 원주인들이 흘렸을 눈물이 이제 그의 몫이 됐다.
수많은 선수들의 땀방울을 피눈물로 바꾼 공산당은 여전히 젊은 유망주를 거짓의 구덩이로 빠뜨리고 있다. 우한 폐렴만 봐도 그렇다.
또한 이 사건으로 한국대표팀 선수(4명)는, 중국의 꼼수에 휘말린 잘못을 책임을 물어 국가대표 자격 1년정지, 국내외 경기 6개월 정지처분을 받았다.
감독과 코치는 대한배드민턴협회에서 제명처분을 받았다가 당사자들의 이의신청과 주변의 옹호탄원으로 겨우 국가대표 지도자 자격정지 4년으로 줄어들어 가까스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