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법무부가 지난달 23일(이하 현지시간)부터 성명을 내고 거대 정보기술(IT)업체들에 대한 반(反)독점 조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구글에서 8년간 근무한 엔지니어가 1000여 페이지의 내부 문서를 유출했다.
전직 구글 엔지니어 재크 보르히스는 중립적인 플랫폼이라고 주장하는 구글이 비밀리에 콘텐츠의 진실 여부 판단을 근거로 콘텐츠를 띄우거나 감춘 증거가 문서 속에 있다고 말했다.
보르히스는 문서를 탐사보도 전문매체 프로젝트 베리타스(Project Veritas)와 구글을 반독점 행위 혐의로 조사해온 법무부 반독점 부서(Antitrust Division)에 제공했다.
그가 프로젝트 베리타스에 전한 내용은 14일 영상으로 공개됐다.
영상에서 그는 “미국의 선거 체계가 구글에 의해 영구적으로 손상될 것 같았다”면서 “구글이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객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정보 지형을 바꾸려 했다”고 말했다.
보르히스는 구글을 트럼프 대통령 같은 인물의 재선을 막는데 몰두하는 ‘정치 기계(political machine)’라고 불렀다. 그는 또한 “(현재) 벌어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두려워하는 구글 직원들도 있다”라고 전했다.
공개 사유
구글에서 8년간 근무했던 보르히스는 자사주 배당까지 합산했을 때 연간 소득이 26만 달러(약 3억 1500만 원)였다. 안정된 직장에 다니며 탄탄대로를 걸었던 그는 지난 7월 프로젝트 베리타스에 문서를 처음 공개했다. 당시 그는 얼굴을 숨기고 목소리를 변조해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자료를 공개한 이유에 대해 “선택의 순간에 계속 나의 이익만을 챙길 수 없었다”면서 “구글의 계획과 그들이 계획대로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살 수는 없었다”라고 밝혔다.
인터뷰 이후, 그는 구글로부터 “직원 배지와 업무용 노트북을 반납하고, 구글 내부 문서를 공개하는 행위를 중지”하라는 서신을 받았다. 신변 안전에 위협을 느낀 그는 만약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가 소유한 모든 문서를 공개할 것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구글은 그에게 ‘건강 검진’을 받게 했다. 샌프란시스코 경찰은 그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것 같다는 신고를 받았다며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그는 이에 대해 “구글이 회사에 먹칠하는 직원을 협박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이 더 안전할 것으로 판단했다.
보르히스에 따르면 구글의 변화는 2016년부터 시작됐다. 그가 공개한 내부 문서에 의하면 구글이 ‘가짜 뉴스’로 간주하는 정보를 숨기려는 데 중점을 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동 혹은 자동화된 수단으로 뉴스를 검토하고, 진실과 ‘거짓된 정보’를 구별하여 이에 따라 정렬한다는 것이다.
공개된 문서 대부분은 뉴스 수집기(news aggregator)인 ‘구글 뉴스’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구글 뉴스
문서에는 ‘프로젝트 퍼플 레인(Project Purple Rain): 위기 대응 및 강화’에 관한 내용이 있다. 프로젝트 목표에 ▲위기 상황 시 잘못된 정보를 감지하고 조치 ▲뉴스 전반에 걸쳐 정책을 요청하고 행동을 취할 준비가 된 연중무휴 가동되는 전문 분석가 팀의 설치와 같은 내용이 명시돼 있다. 구글 창에서 ‘뉴스’는 ‘구글 뉴스’와 ‘피드(Feed)’와 관련되어 있다. 이는 모바일 앱에서 검색 바 하단에 뉴스를 보여주던 기존의 ‘구글 나우’를 새롭게 브랜딩한 것이다.
또 2017년 말 자료로 추정되는 다른 문서에 의하면, 구글 뉴스 검색 결과에 기사를 노출시키려면, 해당 사이트는 기술 변수를 확인하는 자동 검토 과정과 ‘프로세스, 정책, 편집 지침’을 통과해야 하는 수동 검토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검토를 통과한 사이트는 지속적으로 점검을 받고 위반할 경우 순위가 강등되는 ‘패널티’를 받는다.
해당 문서에는 비주류적 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내용을 숨기기 위해 선별 정책을 확대한다는 내용, 구글이 ‘혐오, 다양성, 편향성’ 같은 내용이나 ‘지역적으로 민감한(geopolitically)’ 콘텐츠에도 조치를 취해야한다는 제안도 포함돼 있다.
문건에 적시된 목표 중 하나는 “깨끗하고 정기적으로 뉴스를 점검해 모은다”는 것이다.
비주류 콘텐츠 랭킹(Fringe Ranking)
문서에 의하면, 구글은 수석 엔지니어인 폴 하워(Paul Haahr) 주도로 ‘비주류 콘텐츠 랭킹’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용자가 해당 정보를 원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가짜 뉴스, 증오 발언, 음모론, 과학∙의학∙역사에 부정적인 내용을 잘 보이지 않게 한다”는 것이 목표다.
다른 문서 내용과 결부해 볼 때, ‘비주류 콘텐츠 랭킹’은 이용자가 해당 정보를 확실히 검색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가짜 뉴스 등 부정적 라벨이 붙은 콘텐츠를 숨기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아직 해당 정보에 접근한 적이 없는 독자들에게는 해당 정보가 노출되지 않을 것이다.
피드 블랙리스트(Feed Blacklist)
어떤 문서에는 콘텐츠가 ‘피드’에 보이지 않게 수동으로 막는 사이트 리스트가 있다. 피드는 사용자에게 자주 업데이트되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이터 형식을 의미한다.
이 리스트에는 다수의 정치 비주류 사이트와 일부 진보 좌파 사이트는 물론 비교적 주류를 이루는 몇몇 우파 성향 사이트도 포함된다.
문서에는 “이용자들의 높은 차단율”을 근거로 여러 사이트들을 블랙리스트에 포함시켰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사이트가 오로지 차단율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리스트에 올랐다면 왜 굳이 수동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리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수동으로 등급이 매겨지는 영상
또 다른 문서는 “가짜 뉴스 & 기타 비주류 콘텐츠: 휴지통 재점검”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다.
문서에는 여러 명의 평가자가 매일 상위 26개 현장에서 올라오는 상위 250개 유튜브 동영상에 등급을 매기고, 유튜브 홈페이지의 검색, 최신 인기 목록, 추천 영상 목록을 필터링한 결과 이용자 불만을 50% 감소시켰다고 밝혔다.
일부 보수주의자는 IT기업이 이용자들의 불만에 너무 쉽게 굴복해서 우파 성향 콘텐츠가 불리하게 검열 받았다고 지적해왔다. 좌파는 다양한 발언에 ‘혐오스럽다’고 거침없이 사용하는 반면, 우파는 같은 발언에도 ‘불쾌하지만, 혐오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2017년 카토 (CATO: 미국 싱크 탱크/ 공공 정책 연구 기관) 조사에서 나타났다.
미국시민자유연맹 전 대표 나딘 스트로센 법학 교수는 구글의 ‘혐오성 발언’ 콘텐츠 검열의 공정성을 지적했다. 구글도 다른 기술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주관적 표준으로 금지한다는 것이다.
본보는 구글측에 불공정한 기준에 의한 정보 검열에 대한 입장을 문의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구글의 편향성
보르히스가 제공한 문서와 증언, 프로젝트 베리타스가 촬영한 구글 직원 영상은 구글이 좌파적 기준으로 ‘공정성’의 개념을 잡아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글 뉴스가 좌경화 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도 여럿 나왔다.
구글은 정치적 편향성을 거듭 부인해 왔다. 그러나 보르히스는 구글이 통신품위법(CDA) 제230조의 ‘인터넷 사업자는 제3자가 올린 유해물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규정의 보호 아래 중립적인 플랫폼으로 보여지려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글이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다”면서 “한편으로는 자신들은 플랫폼이고, 자신들의 웹사이트에서 올라오는 콘텐츠 때문에 고소당하지 않는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출판업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은 특정 기업의 편집 정책을 결정하고, 그것을 적용하고 있다. 만약 기업이 편집 정책에 따르지 않으면, 그들의 뉴스 기사 순위는 내려가고, 구글의 편집 정책에 일맥상통하면 기사가 활성화돼 상위로 순위가 오른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사용자에 대한 구글의 영향력을 수년간 연구한 심리학자 로버트 앱스타인은 검색 결과 순위 결정만으로도 구글이 부동층 유권자를 동요시킬 수 있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앱스타인 박사는 2016년 대선에서 260만 표가 트럼프 대통령의 상대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으로 옮겨갔다고 판단했다. 그는 2020년에 구글, 페이스북 같은 거대 공룡 IT 기업이 모두 같은 후보를 지지한다면, 역대 대선 표차를 훨씬 뛰어넘는 1500만 표를 이동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 미디어 업체의 정치적으로 편향된 검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법무부는 반독점 조사를 개시하며 IT공룡들이 어떻게 시장 지배력을 확보했는지, 어떻게 경쟁을 저해하고 혁신을 억압하는지, 어떻게 소비자에게 해를 끼치는 관행에 관여하는 지 등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