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미·중 기술전쟁 속 美 배터리 공급망, 중국서 한국으로 이동

2026년 01월 21일 오전 11:04
전기차 배터리 충전 | 연합전기차 배터리 충전 | 연합

닛케이 “2027년 中 배터리 금지 대비…미 업체들 韓 증설”

미국 배터리 기업들이 공급망을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전하고 있다. 미국이 2027년부터 국방 관련 분야에서 중국산 배터리 조달을 금지하는 법규 시행을 앞두면서, 핵심 부품의 생산 거점을 동맹국으로 옮기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닛케이 아시아는 최근 “미국 배터리 제조사들이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한국으로 공급망을 이동시키고 있다”며, SES AI와 암프리우스(Amprius) 테크놀로지스가 한국 내 배터리 셀 생산능력 확대를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결정은 미국 국방수권법(NDAA)에 따른 규제 대응 차원이다. 해당 법은 2027년부터 미국 국방부가 중국산 배터리 및 관련 부품을 조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무인기(UAV)와 차세대 항공·군수 장비에 사용되는 배터리도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닛케이는 SES AI 창업자 후치차오의 발언을 인용해, 회사가 한국으로 생산 거점을 옮긴 배경에 대해 “미국 정부가 추진 중인 국내 무인기 산업 육성 정책과 방위산업 공급망 재편 기조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미국 방위산업과 연계된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대만 국방안전연구원 부연구위원 셰페이쉐는 에포크타임스에 “정책에 의해 촉발된 사실상의 강제적 탈동조화”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 기업들이 국방부라는 최대 고객을 유지하려면 금지 조치가 발효되기 전까지 공급망에서 중국산 원자재와 부품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며 “이는 단순한 사업 전략이 아니라 법적 규제를 충족하지 못하면 생존 자체가 어려워지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에서 핵심 기술용 원자재나 부품을 생산하는 것이 정치·안보 측면에서 통제 불가능한 위험을 동반한다고 본다. 배터리는 무인기, 전동 수직이착륙기(eVTOL), 차세대 군수 장비의 핵심 부품으로, 단순한 상업재를 넘어 전략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셰페이쉐는 “배터리는 현대 군사 플랫폼의 ‘심장’에 해당한다”며 “이를 중국 밖으로 이전한다는 것은 군사용 기술과 직결된 핵심 생산을 중국에 맡길 경우 정치적·안보적 리스크가 크다고 미국 기업들이 판단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글로벌 공급망은 비용이 가장 낮은 지역이 아니라, 가치관을 공유하거나 군사적 동맹 관계에 있는 국가를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지난 10여 년간 중국은 저렴한 전력과 정부 보조금, 완성된 산업 생태계를 바탕으로 세계 배터리 제조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그러나 배터리가 국방과 항공우주 분야에 본격적으로 활용되면서, 생산지는 더 이상 경제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 사안으로 격상되고 있다.

미국 세인트토머스대 국제학과 예야오위안 교수는 “중국산 배터리는 원자재 가격이 낮고, 정부와 국유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집중됐다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미국과 동맹국들이 중국산 배터리 구매를 중단할 경우 중국 업체들은 판로를 급격히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예 교수는 “중국의 배터리 생산량은 내수 시장만으로는 흡수하기 어려운 규모”라며 “중국 경제 전반의 성장 둔화와 실업 확대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미국 기업들의 배터리 생산 대안 거점으로 부상한 배경에는 안보·제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 미국의 핵심 아시아 군사 동맹국으로, 법률 체계와 수출 통제 기준이 미국과 높은 수준의 정합성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배터리 기업과 숙련된 인력, 첨단 제조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 미국의 기술 이전을 수용하면서도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평가다.

셰페이쉐는 “이번 사례는 미국의 다른 기업들, 특히 국방·항공우주 계약을 노리는 업체들에 강력한 신호를 주고 있다”며 “중국에서 생산을 유지할 경우 향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중국의 고부가가치 제조 분야 위상은 점차 약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은 민간 전기차용 배터리 분야에서는 여전히 세계적인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고수익·고기술 장벽이 높은 국방·항공우주용 배터리 시장에서는 이미 주문 이탈이 시작됐다”며 “향후 중국 기업들이 미국 국방 및 첨단 항공우주 시장에 진입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