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매체, 런던 주재 中대사관 설계도 공개…지하에 208개 비밀방
영국 경찰이 런던의 대규모 중국 대사관 신축 예정지 앞에서 시위 확산을 질서 유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2025.2.8 | Carl Court/Getty Images) 금융가 인근 광섬유 케이블과 밀착…안보 공백 논란
승인 시점 앞두고 英 정치권·시민사회 반발 확산
중국 공산당이 영국 런던에 대규모 대사관 건설을 추진하는 가운데, 해당 시설이 첩보 활동과 초국경 탄압의 거점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영국 내에서 제기되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12일(현지시간) 중국 측이 런던 당국에 제출한 대사관 설계도 가운데 일부 비밀 해제된 도면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건물 지하에 면적이 각기 다른 208개의 비밀 공간이 설계돼 있다고 보도했다.
이 중 한 지하 밀실은 깊이가 약 3미터에 달하며, 런던 금융가와 인근 지역 수백만 명의 인터넷 데이터를 전송하는 지하 광섬유 케이블과 매우 가까운 위치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해당 밀실은 최소 두 개의 고온 공기 배출 시스템이 설치될 예정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내부에 다량의 열을 발생시키는 장비, 예컨대 첩보 활동에 활용될 수 있는 컴퓨터 시스템이 가동될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게 영국의 통신·사이버 보안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심쩍은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설계도에 따르면 중국 측은 지하 공간 중 한 곳의 외벽을 철거해 재시공할 계획인데, 해당 벽면은 런던 금융중심가로 이어지는 광섬유 케이블 망과 불과 1미터 남짓한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 케이블망은 영국의 10개 이상 데이터센터를 연결하는 시설로 런던 인터넷 교환망(LINX·링크스)의 핵심 구간에 해당한다. 이 케이블들은 대서양을 횡단해 미국으로 이어지며, 링크스는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인터넷 교환 지점 중 하나로 런던이 국제 금융 중심지로 기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보안 전문가들은 광섬유 감청 기술이 케이블을 직접 절단하거나 연결하지 않아도 미세한 신호 누출이나 진동, 전자기 간섭을 통해 데이터 흐름 패턴을 분석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감청을 하지 않더라도 케이블에 물리적으로 가까이 접근하는 것 자체의 위험성에 관한 경고도 나온다.

영국 일간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런던 중심부에 세워질 대규모 중국대사관 설계도를 공개했다. 설계도에는 지하에 208개의 비밀 공간이 포함됐다. | 데일리 텔레그래프 화면 캡처
설계도에서 가려진 구역에는 비상 발전기, 신규 엘리베이터 샤프트, 전력 및 통신 케이블, 위생시설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위생시설이 지하에 배치된 점을 두고, 필요시 인력이 장시간 지하에서 활동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설계라는 해석도 나온다. 일부 도면에서는 비밀 통로로 추정되는 구조도 확인됐다.
다만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현재까지 대사관 내부에 비밀 구금이나 감금 시설이 존재한다는 명확한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영국 서리대학교의 사이버 보안 전문가 앨런 우드워드는 “첩보 활동은 국가 기밀에 국한되지 않으며, 경제 분야 정보 역시 외국 정보기관에 매우 중요하다”며 “만약 중국 입장이라면 이렇게 중요한 케이블이 바로 인근에 있는 상황에서 유혹을 느끼지 않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영국 정부는 국가안보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영국 정부 대변인은 “국가 안보는 정부의 최우선 과제”라며 “중국 대사관 건설 계획 심의 과정에는 항상 안보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반면, 야당인 보수당 소속 알리샤 컨스 하원의원 겸 그림자 내무차관은 “영국의 금융 핵심 인프라의 중심부에서 경제전을 수행할 발판을 중국에 제공하는 셈”이라며 “(신축 중국 대사관은) 영국 국가 안보에 현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 대사관 신축안은 아직 최종 승인되지 않았지만, 통과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영국 정부가 이르면 이달 말 키어 스타머 총리의 방중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외교 일정과 건설안 승인 여부가 맞물려 있다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머 총리는 지난해 7월 총선 승리 이후인 8월, 시진핑 주석과의 통화에서 주영국 중국 대사관 신축 문제를 직접 언급한 바 있다. 이후 중국 측은 영국의 승인 지연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왔으며, 영국 정부는 “여전히 해소해야 할 안보 우려가 남아 있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 영국 해외정보국(MI6) 등 정보기관 수장과 일부 전문가들이 잇따라 “위험은 관리 가능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으면서, 스타머 총리 방중을 앞두고 승인을 위한 분위기 조성이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편, 중국 대사관 신축에 반대하는 시민들과 정치·시민단체들은 오는 17일, 대사관 예정지 인근에서 다시 집회를 열어 영국과 중국 정부에 항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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