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에 5%씩만”…캘리포니아 부유세, 서명운동 돌입에 빅테크 이탈 논란
2019년 캘리포니아에서 공공의료 확대를 요구하는 시위 모습. 이번 억만장자 부유세 주민발의안은 이러한 공공의료 재원 부족 문제를 배경으로 추진되고 있다. | AP/연합 10억 달러 이상 보유자 순자산 5% 과세…소급 적용
올해 11월 주민투표 상정 목표로 서명 수집 진행 중
노조 주도 “공공의료·저소득층 의료 서비스 재원 마련”
“돈보다 방향성의 문제”…사회적 책임 vs 혁신 근거지 약화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억만장자를 겨냥한 신규 부유세 도입을 본격 검토하면서, 실리콘밸리의 상징적 인물들까지 거취를 재정비하는 움직임이 드러나고 있다.
세금 자체보다 “앞으로 어떤 규칙이 더 나올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부유층과 창업가들을 먼저 움직이게 하고 있다는 평가가 현지에서 나온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억만장자를 대상으로 한 부유세 도입 논의가 정책 구상을 넘어 주민투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순자산 10억 달러를 초과하는 주민에게 일회성으로 5%를 부과하는 이른바 ‘억만장자세’ 신설안은 주 정부의 인증을 거쳐 현재 서명 수집 단계에 들어간 상태다.
필요한 서명 수를 충족할 경우, 주 의회 입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올해 11월 주민투표에 직접 상정된다.
이 발의안은 통과 시 2026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소급 적용되며, 이후 캘리포니아를 떠나더라도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 구조다. 이 조항은 실리콘밸리와 자산가 사회에서 “단순한 증세가 아니라 규칙 자체의 변화”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구글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행보는 이런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복수의 언론 보도와 주 정부 문서에 따르면, 페이지는 부유세 적용 시점을 앞두고 자신과 연관된 다수의 캘리포니아 소재 법인을 영업 중단하거나 다른 주로 이전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특히 패밀리 오피스를 포함한 핵심 법인들이 델라웨어주로 옮겨졌다는 점은 단순한 행정 정리가 아니라 장기적 리스크 관리 차원의 판단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패밀리 오피스는 초고액 자산가 개인 또는 한 가문이 보유 자산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설립한 전담 조직으로, 특정 개인이나 가문만을 위해 운영되는 자산관리 회사다.
브린 역시 유사한 선택을 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브린과 관련된 회사 여러 곳이 캘리포니아에서 폐업 또는 이전을 신청했으며, 일부는 네바다주 법인으로 전환됐다. 현지 회계·법률 업계에서는 “부유세가 실제로 통과되느냐보다, 소급 적용 가능성 자체가 결정적 변수”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실리콘밸리 안팎에서는 반응이 엇갈린다. 일부 진보 성향 유권자와 노동조합 측은 “극소수 초부유층의 부담을 늘려 공공의료 재원을 확보하자는 취지”라고 강조한다.
반면 벤처 업계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캘리포니아가 혁신의 본거지라는 상징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대표적 인물로는 벤처투자자 차마스 파리하피티야가 거론된다. 그는 지난해 첫날 소셜미디어 엑스(X)에 올린 글에서 “2025년이 끝날 무렵이면, 막대한 규모의 자산이 캘리포니아를 떠날 것이고, 그중 대부분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예언’은 일부만 실현되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이 발언을 두고 과장 논란을 제기하면서도, “수치의 정확성과 별개로 투자자 사회의 심리를 잘 드러낸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모든 억만장자가 같은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젠슨 황은 순자산 규모에도 불구하고 부유세 논의에 대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기업의 성공이 사회적 기여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발언은 캘리포니아 내부에서도 부유세 비판에 대한 ‘상징적 반론’으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젠슨 황의 자산은 엔비디아 보유 지분 약 3%를 기준으로 1600억 달러(약 235조원) 이상으로 평가된다.
현재 쟁점은 세율 자체보다 캘리포니아가 앞으로도 창업가와 자본을 끌어들이는 공간으로 남을 수 있느냐로 모아지고 있다. 주민발의안이 실제 투표까지 갈 경우, 부유층의 이동은 물론 주 정부의 재정 모델과 산업 생태계 전반을 시험하는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이번 캘리포니아의 억만장자 부유세 도입 논의는 주 정부나 주지사, 주의회가 아니라 노동조합이 주축이 돼 시작됐다.
캘리포니아 대형 의료 노동조합인 SEIU 캘리포니아는 공공의료와 저소득층 의료 서비스 재원 부족을 이유로 “초고액 자산가에게 한시적으로 부담을 지우자”는 구상을 내놨고, 주민발의제도를 통해 법제화를 추진했다.
노조가 주민발의제도를 통해 전면에 나선 것은 부유세 신설이 진보 성향의 민주당 주지사와 주의회 의원들에게도 정치적 부담이 큰 사안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번 발의안은 ‘한 번만, 크게, 소급 적용’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캘리포니아의 주민발의제도는 발의안 초안 작성, 주 정부 승인, 서명 수집, 요건 충족 시 주민투표 상정의 절차로 이뤄진다. 투표에서 과반 찬성을 얻을 경우 법률로 확정되며, 이 과정에 주지사나 주의회는 개입할 수 없다. 주민투표 상정에 필요한 서명 수는 직전 주지사 선거 투표자 수를 기준으로 산정되며, 현재 기준으로는 약 87만500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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