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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중국의 대일 압박 역풍…더 확고해진 미·일·대만 연대

2025년 12월 13일 오전 10:30
중국과 러시아 전투기가 합동 공중 순찰을 벌이는 모습. 잇따른 군사 시위에도 불구하고 역내에서는 미·일·대만 연대가 오히려 강화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 연합뉴스중국과 러시아 전투기가 합동 공중 순찰을 벌이는 모습. 잇따른 군사 시위에도 불구하고 역내에서는 미·일·대만 연대가 오히려 강화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가 “대만에 대한 무력 공격은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가 될 수 있다”고 공개 발언한 이후, 동아시아 외교·안보 지형은 빠르게 요동치고 있다. 이 발언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라기보다, 일본 정부가 오랜 기간 축적해 온 안보 인식을 비교적 직설적으로 드러낸 첫 사례라는 점에서 파장이 컸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외교 채널을 통한 항의와 함께 관영 매체와 외교관들을 동원해 일본을 ‘군국주의 부활’로 규정하며 강도 높은 여론전을 전개했다. 일부 품목 통관 지연, 관광·유학 분야 압박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경제적 대응 카드도 언급했다.

최근에는 유엔 무대에서도 중국 대표단이 일본을 공개 비판했고, 일본은 “대만 유사시는 곧 일본의 위기”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며 정면으로 맞섰다.

그러나 중국의 공세는 일본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발언 철회 요구를 거듭 거부하며 “정부가 이미 공유해 온 안보 인식을 법적 개념으로 설명했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일본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일본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점을 더 이상 모호하게 숨기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일본 사회의 반응도 과거와는 달랐다. 외교 마찰을 우려해 신중론이 우세했던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인식이 정치권과 언론, 전문가 집단 전반으로 확산됐다. 중국의 압박이 오히려 일본 사회에 안보 현실을 각인시키는 계기로 작용한 셈이다.

일본 기업들 역시 복잡한 셈법 속에서도 정부 노선을 정면으로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 일·중 관계 악화를 최대 리스크로 꼽으면서도, 반도체·AI·첨단 제조 분야를 중심으로 실적 개선 가능성을 예상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며 기술 투자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의 압박이 일본 경제를 위축시키기보다 구조 전환을 재촉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은 일본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관광 분야를 거론하며 단체 관광 제한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실제로는 뚜렷한 효과를 내지 못했다. 일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 수는 일부 조정 국면을 거쳤을 뿐 급격한 감소로 이어지지 않았고, 일본 관광 산업 전반에 미친 충격도 제한적이었다.

오히려 일본 내 소비 구조는 특정 국가 관광객 의존에서 점차 벗어나 동남아·미주·유럽 등으로 방문객 구성이 다변화되는 흐름을 보였다. 관광을 압박 카드로 활용하려는 중국의 시도는 과거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군사 압박 커질수록 연대는 강화

외교·경제 압박과 병행해 중국이 가장 노골적으로 수위를 끌어올린 분야는 군사적 시위다. 중국 해군과 공군은 동중국해와 서태평양, 대만 주변 해역에서 대규모 함정과 항공 전력을 동원한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과 대만은 “또 한 번 역대 최대급 수준”이라며 경계 태세를 높였다.

특히 올겨울 들어 중국·러시아 합동 공중 순찰이 일본 남부 섬 인근까지 확대되면서 항공자위대의 긴급 출격이 반복됐다. 중국 군용기가 일본 기체를 추적하거나, J-15 전투기 레이더가 일본 군용기를 포착했다는 사실이 공개되며 긴장이 고조됐다. 일본은 중국 측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대응 수위를 유지했다.

미국의 대응은 한층 더 강경해졌다. 중국·러시아의 합동 군사 훈련에 맞서 미군 B-52 전략폭격기가 일본 F-15·F-35 전투기와 편대를 이뤄 동해 상공을 비행했다. 이는 단순한 훈련을 넘어, 유사시 실전 투입이 가능한 연합 억지력을 과시한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미국은 중국의 군사적 행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역내 안정과 국제 규범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역내 안보 구조는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만은 비대칭 전력 강화를 위한 특별 예산을 편성해 장거리 미사일과 무인기, 분산 배치 전력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은 ‘대만 유사시’ 대응 매뉴얼을 미국과 세밀하게 조정하며, 미군 기지의 역할을 후방 지원에서 전진 배치 거점으로 확장하는 논의를 진행 중이다. 남서 제도에는 이른바 ‘미사일 열도’ 구축이 가속화되며 다층 방어망이 형성되고 있다.

중국의 군사 시위는 주변국을 위축시키기보다 오히려 연대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일본의 전략적 모호성을 깨뜨린 것도, 대만해협 문제가 국제 의제로 부상한 것도 상당 부분 중국의 강경 행보가 촉발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NSS, 억지 전략의 구체화

이 와중에 12월 초 공개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NSS 2025)’은 동아시아 판도를 재편하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전체적으로는 거래와 실용을 강조하지만, 대만과 인도·태평양, 특히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 대해서는 이전보다 더 명확한 억지 노선을 담고 있다.

NSS는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의 일방적 현상 변경 반대’를 미국의 핵심 안보 이익으로 못 박았다. 표현은 절제됐지만, ‘힘을 통한 평화’ 기조 아래 군사적 우위 유지와 동맹·파트너국 기지 활용 확대를 분명히 했다.

제1도련선(島鏈線) 전반에 걸친 전진 배치도 구체적으로 언급됐다. 미 해군과 해병대는 괌·오키나와·필리핀과 함께 일본 본토와 규슈·오키나와를 대만 방어와 남중국해 견제의 핵심 허브로 재정의하고 있다. 분산·기동 가능한 기지와 보급 체계 구축도 병행되고 있다.

이런 구도 속에서 일본 총리의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에 중요한 정치적 명분을 제공했다. 동맹국 정상의 공개적 인식 표명은 미국이 대만 방어를 위한 전진 배치와 동맹 협의체 강화를 추진하는 데 있어 부담을 크게 낮춰준 모양새가 됐다. 중국의 강경 대응은 오히려 NSS 2025의 실행 속도를 앞당기는 촉매가 된 것이다.

中·러 연대 과시, 고립은 심화

중국은 이러한 흐름을 상쇄하기 위해 러시아와의 전략적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합동 순찰과 미사일 방어 훈련, 고위급 외교 일정은 표면적으로 강한 군사 연대를 과시하는 장면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상징성과 제한적 협력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군사·경제적 부담이 극심한 상황이며, 중국이 대만이나 일본 문제에서 실질적 군사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조건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에너지와 금융 분야에서 상호 의존이 심화되며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자유 진영의 결속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일본은 대만과의 비공식 안보 대화를 확대하고 있고, 필리핀·호주·한국 등 중간국들도 중국군 활동을 계기로 미·일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 역시 대만해협 안정의 중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빈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의 대일 압박은 내부 결속과 대외 위신을 동시에 노린 승부수였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일본은 안보 현실을 국민에게 분명히 드러내며 안보 정책의 전환을 가속화했고,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재정비할 명분을 얻었으며, 대만은 군사·외교 지원망을 확장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외교·군사·경제 수단을 총동원하고도 일본의 입장을 굽히게 만들지 못한 채, 자유 진영의 결속만 강화시키는 전략적 역풍에 직면했다. 힘에 의존한 외교와 군사 시위를 계속 고집할수록, 중국을 둘러싼 고립의 벽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국제 외교가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이경찬 논설위원은 정치 PR 전문가로, 한국커뮤니케이션에서 정치 홍보를 담당하며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쌓았습니다. 이후 정치 보좌관으로 활동하며 정책과 정치 현장을 깊이 이해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에포크타임스 기자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언론의 최전선을 경험했습니다. 현재는 미디어파이 대표로서, 정무·언론·홍보 전반에 걸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