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아시아 정상회의 출입 불허…중국 공산당 외압 의혹
2025년 10월 2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제47차 아세안(ASEAN) 정상회의를 앞두고 촬영된 아세안 로고 | Mohd Rasfan/AFP via Getty Images/연합 10월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일정 중에 백악관 기자단과 동행하던 에포크타임스 기자가 주요 취재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출입을 제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같은 조치는 중국 공산당이 지속적으로 벌여 온 언론 통제와 외교적 간섭 행태와 일치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에포크타임스와 자매매체 NTD는 10월 말 열린 두 개의 주요 정상회의, 즉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취재 접근을 모두 거부당했다.
이번 두 정상회의는 중국이 역내에서 강화하고 있는 경제적 영향력과 정치적 압박 의도를 여실히 드러냈다.
베이징은 회의 기간 중 여러 국가와 무역 협정을 체결하고, 자국에 경제적으로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교역 관계 강화를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 순방에 앞서, 에포크타임스 취재진은 다른 주요 언론사들과 함께 이미 정상회의 취재 자격을 사전 승인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아세안(ASEAN) 정상회의 조직위원회는 이후 돌연 에포크타임스만을 출입 불허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 과정에서 의사소통 오류, 기술적 문제를 가장한 혼선, 약속된 기자증 발급의 불이행, 입장 번복과 책임 회피 등 복잡한 절차적 우여곡절이 뒤따랐다.
이 같은 상황은 과거에도 반복돼 온 언론 출입 제한 사례와 유사한 양상을 보였으며, 여러 건의 사례에서 베이징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드러난 바 있다.
에포크타임스의 야스퍼 파커트 편집국장은 성명을 통해 “중국 공산당은 언론 자유의 적(敵)”이라며 “이 정권이 유엔(UN)과 아세안 같은 국제기구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해 미국 내 4번째로 큰 신문사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라고 밝혔다.
에포크타임스는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국제 언론사로, 구독자 수는 100만 명을 훌쩍 넘는다. 그러나 창간 이래 줄곧 중국 공산당의 탄압 대상이 되어 왔다.
베이징 당국은 공개적인 위협과 물리적 방해, 그리고 현지 당국을 압박하는 비공개 로비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언론 활동을 방해해 왔다.
2000년에는 중국 내에서 활동하던 에포크타임스의 초창기 기자들과 기고자들이 체포되어 일부는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 이후로도 중국 공산당은 광고주들을 협박하거나, 외교관을 동원해 현장 취재와 보도 활동을 방해했다.
유엔에서도 2003년과 2004년에 에포크타임스의 출입을 제한했으며, 당시 유엔 관계자들은 중국으로부터 해당 언론사에 대한 취재 허용과 관련해 압력을 받은 사실을 인정했다.
이 같은 위협과 방해 공작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여러 차례 해커를 동원해 에포크타임스 웹사이트를 공격하고, 경영진의 이메일 계정을 해킹하려 시도해 왔다.
최근 들어 중국 공산당의 탄압은 한층 노골화됐다. 중국 해커들이 에포크타임스 직원으로 위장해 미국 연방 및 지방 기관에 협박 메시지를 보내는 일이 있었으며, 신문 창간기념일에는 본사로 폭탄 협박 이메일이 전달되기도 했다.
지난 10월 초에는 중국 우편 도장이 찍힌 봉투 안에 흰색 가루와 신문 한 부가 담긴 채 본사에 배달돼 경찰이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국제 언론감시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RSF) 아시아·태평양 담당 매니저 알렉산드라 비엘라코프스카는 당시 논평에서 “독립 언론과 기자 개인을 겨냥한 괴롭힘이 점점 조직적이고 심각해지고 있다”며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이러한 행태는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발생한 에포크타임스 기자에 대한 협박 사건, 그리고 유엔에서의 취재증(press badge) 발급 거부 사례에 대해 “이러한 전술은 중국 정권이 일관되게 사용해 온 방식과 전형적으로 일치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은 지난 1년 동안 공식 선전 내용과 다른 보도를 하는 언론사들을 상대로 압박과 위협을 강화해 왔다”며 “어떠한 기자도 이런 위협을 받아서는 안 된다. 중국 당국은 전 세계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이 지속적인 행태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APEC 회원국 중 최대 교역국이며, 지난 16년 동안 아세안 11개 회원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로 자리해 왔다.
이번 에포크타임스 기자단의 취재 배제 사건이 발생한 말레이시아와 한국은 모두 베이징으로부터 지속적인 정치·외교적 압력을 받아온 나라들이다.
올해 4월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쿠알라룸푸르 방문 직전, 말레이시아 당국은 중국 내 박해를 피해 도피한 종교 난민들을 체포했고, 시진핑이 출국한 뒤에야 이들을 석방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에포크타임스의 자매매체 NTD는 최근 중국대사관 관계자가 한국 정부에 직접 연락해 “중국의 인권 문제를 고발하는 미국 공연단의 무대가 열리지 않도록 막아 달라”고 요청한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중국의 외교적 압력이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기간 동안 각국 정상회의 주최 측에도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에포크타임스 백악관 출입기자 트래비스 길모어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이틀 전,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다. 그는 이미 사전에 언론 자격 승인(media credentials)을 받은 상태였으나, 미국 기자단의 취재증을 수령하러 간 미 대사관과 백악관 관계자들에게 “프로필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하며 발급을 보류했다.
길모어 기자는 어떤 정보가 부족한지에 대한 설명을 전혀 듣지 못했으며, 임시 취재증 역할을 하던 QR코드가 시스템상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주최 측과 수 시간의 협의 끝에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그는 여러 차례 “나중에 다시 오라”는 말을 들었지만, 돌아갈 때마다 취재증은 준비돼 있지 않았다.
10월 25일 오후 6시 30분경에는 ‘AD’라는 이름의 발신자로부터 다음 날 취재증을 수령하라는 왓츠앱 메시지를 받았으나, 밤사이 이 메시지가 삭제됐다. 이튿날 아침 일찍 현장에 도착한 길모어 기자에게 아세안 회의 관계자들은 “오해(miscommunication)가 있었다”고 해명하며 취재증이 없다고 말했다.
길모어 기자가 연이은 혼선과 절차상의 불일치에 대해 항의하자, 자신을 ‘파티카’라고 소개한 현장 직원은 “이런 사례는 전례가 없다”고만 답했다.
길모어 기자가 “혹시 중국 공산당의 외압이 작용한 것이냐”고 묻자, 파티카는 “이 문제는 ‘위에서부터(top-down)’ 압력을 넣어야 해결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 밖에도 기자 등록 과정 전반에서 다수의 설명되지 않은 오류와 절차적 불일치가 이어졌다.
10월 26일, 아세안 관계자들은 길모어 기자에게 “취재증이 승인됐다”고 통보했다. 그날과 다음 날, 담당 직원들은 두 차례에 걸쳐 “취재증을 인쇄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취재증은 끝내 발급되지 않았다. 길모어 기자가 수차례 전화와 이메일로 문의했지만, 아세안 측은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비슷한 상황은 한국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도 반복됐다.
에포크타임스 자매매체 NTD의 마리 오쓰 백악관 담당 기자와 첸레이 영상기자가 행사 개막을 앞두고 경주 호텔에 도착했을 때였다.
호텔 내 취재지원센터에는 NTD 로고가 부착된 미디어 텐트가 이미 설치돼 있었지만, APEC 주최 측은 두 기자의 출입을 제한하며 “취재증이 등록돼 있지 않다”고 통보했다.
언론 담당팀은 이를 “혼선(mix-up)” 때문이라고 해명했고, 곧이어 “오쓰 기자의 취재증을 찾았다”고 전했으나, 불과 몇 분 뒤 “잘못 전달된 메시지였다”고 말을 바꿨다.
이번 사안에 대해 APEC과 아세안 조직위원회 모두 에포크타임스의 공식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이기호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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