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트럼프의 아시아 노림수…‘외교·경제·안보’의 승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 개최지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해 2기 임기 들어 첫 아시아 순방에 돌입했다. | 사진=AFP/연합뉴스 10월 26일부터 시작된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은 미국 주요 언론의 평가에서 “지금까지 없었던 위험천만한 외국 방문”으로 꼽히고 있다. 이번 순방이 단순한 외교 일정이 아니라 ‘경제·지정학·동맹관계’라는 삼중의 도전을 안고 있다는 분석이 그 근거다.
이번 순방은 단순히 우방국을 방문하고 정상회담을 진행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미국 유력 매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아시아 순방을 통해 다음과 같은 과제를 동시에 짊어졌다고 평가한다.
▲동남아시아에서의 동맹 강화 및 투자 유치: 트럼프 대통령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단순한 대화가 아닌 실질적 협정 중심으로 재정립하겠다는 의지를 백악관 내부에서 명확히 밝혔다.
▲반(反)중국 연합 및 공급망 재편: 미국은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인도·태평양 경제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와의 양자 담판: 가장 위험한 고비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 특히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이다. 미중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이 회담은 일종의 ‘승부차기’로 비유될 만큼 긴장감이 높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이번 순방을 ‘주사위 던지기(dice-roll)’라고 표현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일주일간의 여정을 통해 ‘협상의 달인’ 이미지를 굳힐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동안 피하려 했던 경제 위기를 스스로 불러올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동남아 동맹국들과의 관계 정비
트럼프 대통령은 순방 첫 일정으로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ASEAN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말레이시아 방문 중에는 캄보디아와 태국 간 무기 공급 갈등에 대한 중재도 예정돼 있다. 태국이 캄보디아에 무기를 공급한 이후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된 사태가 이번 정상회의의 주요 안건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이번 방문은 단순히 인사차 들르는 것이 아니다. 대규모 무역협정을 체결하고 대규모 투자를 확보하며,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보를 크게 증진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과거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관세 전쟁과 공급망 재편의 직격탄을 맞았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동남아 지도자들은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고 경제·안보 협력을 건설적으로 정착시키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ASEAN 정상회의에서도 다수의 동남아 국가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의제에 대해 지지를 표명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일본 방문, 투자와 무역의 시험대
동남아 순방을 마친 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을 거쳐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일본에서는 신임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와 회담을 갖고, 한국에서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그럼에도 준비된 과제는 적지 않다. 한국과는 약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약속이 협상 중이며, 일본과는 과거 5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합의가 있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미국·일본 간 기존 합의가 ‘불공평하다’고 판단될 경우 이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경고한 상태다.
즉, 이번 순방은 ‘미국이 주도하는 투자 및 무역 질서’에 동맹국들이 얼마나 동참할지 시험대가 된다는 점에서 위험 요인이 크다. 협상이 순조롭지 않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리더십이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중국과의 바둑판 위에서 벌이는 승부
이번 순방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중국과의 양자 대화다.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전략가는 중국이 사실상 미국에 경제전쟁을 선포했다고 평가하며 이번 회담을 “가장 큰 판돈이 걸린 게임”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중국은 희토류 원소에 대한 수출 제한을 강화하는 조치를 발표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이는 순방 직전 국제 정세의 긴장을 한층 고조시켰다. 중국은 희토류를 강력한 경제적 무기로 삼아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산업 기반을 흔들려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맞서 미국은 중국이 이러한 조치를 일부 철회하도록 압박하는 동시에, 동맹국들과의 새로운 무역 협정을 통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한 상태로, 회담 결과가 어떻든 예측 불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점이 긴장을 더하고 있다.
분석가들은 이번 순방이 단순한 외교 일정을 넘어 “곧바로 파도 속으로 뛰어드는 도박”이라고 평가한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중국정치 전문가 조나단 친 박사는 중국이 이번 조치의 시점을 치밀하게 선택했다며 “이는 충분히 준비된 움직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협상의 기회로 본다. 반면 시진핑 주석은 협상 그 자체를 하나의 전술적 무대로 보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한편 미국의 피터 나바로 무역 고문은 “중국의 위협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된다”며 “중국이 제조업을 무기 삼아 미국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국의 전략이 오히려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은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 산업국들에 심각한 불안을 야기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이 의도했던 압박이 오히려 대체 공급망 구축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번 순방을 미국과 동아시아 질서의 ‘결정적 전환점’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한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라이언 하스 소장은 “이번 회담이 미국·중국 관계의 향후 궤적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데이터포인트가 될 수는 있어도, 지금 당장 새로운 질서로 전환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순방은 모험이자 위험 부담이 뒤섞인 외교 이벤트다. 성공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하는 ‘협상의 이미지’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 주도 질서가 강화될 수 있다.
그러나 실패하거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온다면, 그 여파는 경제위기, 동맹 불안, 지정학적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언론이 이번 순방을 “지금까지 가장 위험한 외국 여행”으로 규정한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복잡한 변수들이 얽혀 있다.
*이경찬 논설위원은 정치 PR 전문가로, 한국커뮤니케이션에서 정치 홍보를 담당하며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쌓았습니다. 이후 정치 보좌관으로 활동하며 정책과 정치 현장을 깊이 이해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에포크타임스 기자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언론의 최전선을 경험했습니다. 현재는 미디어파이 대표로서, 정무·언론·홍보 전반에 걸친 통합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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