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철녀(鐵女), 차기 수상 다카이치는 누구인가?

다카이치 사나에가 10월 4일 일본 중도우파 자유민주당(LDP)의 새 대표로 선출되었으며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 예정이다.
64세의 다카이치는 승리 연설에서 “기쁘다기보다는 여기서부터 힘든 일이 시작된다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총무대신과 경제안보담당상을 역임한 다카이치는 종종 자신의 모델이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영국 총리를 지냈고 대처주의라는 정치•경제 이데올로기로 자신의 이름을 남긴 마거릿 대처라고 말해 왔다.
다카이치는 영국 언론으로부터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대처를 2013년 그녀가 사망하기 직전 한 심포지엄에서 만났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녀의 배경 스토리는 무엇일까?
다카이치는 1961년 일본 본섬 혼슈의 간사이 지역 오사카 근처 도시인 나라에서 태어났다. 당시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회복한 후 경제가 호황을 누리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녀는 고베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위를 받고 1984년 파나소닉 창업자가 “미래 리더를 양성하기 위해” 만든 마쓰시타 정경숙에 입학했다.
1987년 12월, 그녀는 미국 의회에서 2년간 의회 펠로우로 활동한 후 니혼경제단기대학에서 강의했다.
그녀는 1993년 무소속으로 중의원 의석을 얻으며 일본 정계에 진출했고, 현재는 해산된 신진당을 잠시 거친 후 1996년 자민당으로 옮겼다.
다카이치는 1998년 첫 차관보 직책을 맡았지만 특별히 빨리 승진하지는 않았다.
2006년 아베 신조가 총리가 되었을 때, 그는 그녀를 과학기술정책담당 대신으로 승진시켰고, 8년 후 그녀를 총무대신으로 임명했다.
그녀는 정책조사회 의장을 포함하여 자민당에서도 주요 역할을 수행했다.
2020년 아베가 사임한 후에도 다카이치의 위상은 계속 빛났고, 2022년 새 총리 기시다 후미오 아래에서 경제안보담당상으로 승진했다.
총재직 도전 경력
그녀의 야심은 비밀이 아니었으며, 2021년과 2024년에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했다.
작년에는 1차 투표에서 선두를 달렸지만, 고이즈미 신지로가 탈락한 후 그의 지지자 대부분이 이시바 시게루를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섰고, 이시바가 정식으로 선출되었다.
이번에는 1차 투표 선두를 유지하며 고이즈미를 꺾고 총재가 되었다.
다카이치는 2022년 암살당한 정치적 멘토 아베 신조가 선호했던 경제 부양 정책인 아베노믹스의 신봉자이다.
그녀는 유권자들의 치솟는 생활비를 돕기 위한 감세를 촉구했으며,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을 비판해 왔다.
이러한 점에서 그녀는 이달 말 일본을 방문할 예정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통점이 많을 수 있다.
다카이치는 자민당 우파에 속하며 종종 민족주의적 입장을 취해왔는데, 이는 중국, 한국 등의 비판을 받아왔다.
그녀는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데, 일본 고유 신앙인 신도(神道)에 따르면 이곳은 처형된 여러 전범을 포함하여 일본의 250만 전몰자의 카미(かみ), 즉 영혼을 모시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 방문은 종종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의해 일본의 군국주의 과거를 미화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다카이치는 또한 전후에 작성된 일본 헌법을 개정하고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의 군사력을 확대하는 것을 선호한다.
대만과의 동맹
그녀는 일본이 대만과 “준안보동맹”을 형성할 수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
지난달 연설에서 다카이치는 고도(古都) 나라에 있는 나라공원(奈良公園)에서 외국인들이 신성한 사슴을 발로 차는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는 이민 증가에 대한 유권자들의 우려에 호소하는 한편, 정치적 쟁점이 된 무례한 관광객 문제를 건드린 것이었다.
다카이치는 2004년 같은 자민당 의원인 야마모토 타쿠와 결혼하여 그의 세 자녀를 정식으로 입양했다.
이 부부는 2017년 이혼했지만 4년 후 재혼했다. 야마모토는 올해 초 뇌졸중을 겪었다.
*한강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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