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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케데헌, K팝, 그리고 중국공산당과 한한령(限韓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한 장면 | 넷플릭스 제공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한 장면 | 넷플릭스 제공

케데헌 열풍의 비결

넷플릭스의 애니메이션 ‘케데헌’(KPop Demon Hunters)이 그야말로 세계적으로 광풍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에서, 심지어 중국에서도 팬들이 급증하고 있다. 멀게는 이난영·백설희, 가깝게는 나훈아·조용필·김추자 같은 분들만 가수로 아는 나도 케데헌 팬이 됐다(케데헌에 이난영 선생이 낳고 기른 김시스터즈가 등장한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주옥같은 가사가 큰 역할을 한다고 본다. ‘Golden’의 가사 일부를 보자.

They say we’re broken, but we’re made to shine
Every scar’s a story, every mark’s divine
Gwi-Ma’s whispers can’t hold us down
We’re the queens, we wear the crown

다음은 ‘What It Sounds Like’의 가사 중 내가 주목한 부분이다.

I broke into a million pieces, and I can’t go back
But now I’m seeing all the beauty in the broken glass
The scars are part of me, darkness and harmony

치열한 경쟁의 시대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불안한 시대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그 상처들을 감추려 하지 말고, 거기에 얽매이지도 말고, 나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힘차게 나아가자는 가사이다. 이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내용이고 곡조이다. 앞으로 속편도 나오고 다양하게 변주될 것이라 한다. 케데헌과 나아가 K팝의 인기는 한동안 계속 고조될 것으로 기대된다.

K팝의 정치적 파워

K팝은 대중문화로 소비되는 데 그치지 않고 몇몇 국가에서는 강력한 정치적 도구이자 세력으로 성장했다. 지난 8월 말부터 인도네시아에서 대규모 유혈 시위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하고 정치 지도층에 대한 불만이 확산되는 가운데, 경찰의 폭력적 과잉 진압이 기름을 끼얹었다. 그런데 시위대들이 케데헌에 나오는 ‘Takedown’을 열창한다고 한다.

It’s time to kick you straight back into the night
‘Cause I see your real face, and it’s ugly as sin
Time to put you in your place, ’cause you’re rotten within
When your patterns start to show
It makes the hatred wanna grow outta my veins
I don’t think you’re ready for the takedown
Break you into pieces in a world of pain, ’cause you’re all the same
Yeah, it’s a takedown

“우리는 너희들의 추악한 실체를 다 알아, 속속들이 부패했지. 너희들을 산산조각 내줄 거야”라는 뜻이다. 이 비장하고 강력한 의지를 신나는 곡조에 담았다.

2021년 12월,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역대 최연소의 가브리엘 보리치가 당선됐다. 1986년생, 당시 35세였다. 11월 1차 투표에서 2위에 그친 그를 위해 ‘보리치를 지지하는 K팝 팬들(Kpopers por Boric)‘이라는 트위터 계정이 생겼다. 이삼십 대 젊은이들이 만든 단체다. 온-오프 라인에서 활발하게 선거운동을 했다. 선거를 앞두고는 보리치의 상대 후보였던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도 K팝 선거송을 공개하는 등 K팝 팬들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이미 보리치에게 기운 상태였다. K팝 팬들이 칠레에서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건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2019년 대규모 시위가 있었는데, 당시 칠레 내무부는 시위에 영향을 미친 세력 중 하나로 K팝 팬들을 지목하는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미국에서도 K팝 팬들이 무시하지 못할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 사례가 있다. 2020년 6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오클라호마주 털사의 BOK Center에서 유세를 하기로 하고 참석자 예약을 받았다. 100만 명 이상이 신청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좌석 수는 1만9000석인데, 약 6200명(32.6%)만이 참석했다고 한다. 방탄소년단(BTS) 팬클럽 ’아미‘ 회원들 등 K팝 팬들이 예약만 하고 일부러 참석을 안 한 것이다. 당시 BTS는 흑인 ’인권운동‘ 단체 BLM(Black Lives Matter)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고, 그 직후 팬들이 금방 같은 액수의 돈을 모아 같은 단체에 기부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BLM은 그 배후에 미국 공산주의자들과 중국공산당이 있다는 의혹이 있고, 그 지도부가 LA 고급 주택단지에 주택을 소유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중국공산당이 K팝을 두려워하는 이유

전 세계에 촉수를 뻗치고 있는 중국공산당이 K팝, 나아가 대중음악이 가지고 있는 파괴력을 간과했을 리 없다. 2016년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를 계기로 중국은 소위 한한령(限韓令)을 발동, 우리 문화콘텐츠 수입을 금지했다. 그런데 한한령의 법률적 근거나 심지어 관련된 문서 하나 공개된 바 없다. 중국은 한한령의 존재 자체를 부인한다. 중국은 스스로 당-국가 체제라고 주장한다. 헌법 제1조는 ’중국공산당의 영도‘를 명시하고 있다. 한한령도 공산당 지도부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그들에게 법률적 근거 따위는 불필요하다.

중국공산당은 한한령에 그치지 않고 자국 가수를 포함해 모든 아이돌의 활동을 강력히 규제하고 그 팬클럽을 해체하거나 활동을 금지했다. 2021년 8월, 중국 국가사이버정보판공실(CAC)은 아이돌 온라인 팬클럽에 대한 집중 단속을 통해 15만여 개의 ‘유해 콘텐츠’를 삭제하고, 온라인 팬클럽과 관련한 4천여 개의 계정에 대해 처벌 조치를 취했다. 한편, 중국에서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X(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해외 소셜 미디어는 물론 인터넷 사이트 접근 자체가 법률로 금지되어 있다. 소위 만리방화벽이다.

중국은 왜 무해(無害)해 보이는 대중가요 가수와 팬클럽마저 금지하는 것일까? K팝 등 대중가요의 팬클럽이 가지는 잠재적 폭발성 때문이다. 중국은 중국공산당이 70년이 넘게 1당독재를 하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악랄하고 부패한 전체주의 체제를 만들었다. 인민의 불만이 켜켜이 쌓여 있어서, 불씨가 던져지면 금방 체제를 위협하는 대규모 민란으로 확대될 수 있다. 1989년의 천안문 사태가 그 사례다. 중국공산당이 보기에 대중가요 팬클럽은 화약고이다.

중국은 2023년 현재 약 7억 대의 CCTV를 깔아 놓고 인민을 감시한다. 두 명당 한 대 꼴이다. 그것도 모자라 동네마다 ’감독관‘을 임명, 주민들을 감시하고 있다. 종교단체, 노동조합 등 모든 단체는 중국공산당의 통제를 받는다. 파룬궁이 모진 탄압을 받는 이유는 중국공산당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1999년 4월 25일, 중국공산당 고위층 집단 거주지인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 인근에 파룬궁 수련자 1만여 명이 나타나 조용히 있다가 조용히 해산했다. 파룬궁 탄압을 중지하라는 뜻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막강한 중국 공안부가 이 ’집회‘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고, 따라서 막지도 못했다. 중국공산당은 파룬궁의 잠재력을 보고 경악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파룬궁에 대한 탄압이 한층 가혹해졌다. 중국공산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집단을 꼽는다면, 파룬궁이 그 1순위일 것이다.

한한령 해제 구걸은 이제 그만하자

우리 정부나 언론계, 문화계에서 심심하면 ’한한령 해제 가능성‘ 운운한다. 중국공산당은 우리 문화, 특히 대중문화를 두려워한다. 한한령 해제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중 정부 간 회의가 열리면 우리 측은 여전히 한한령 해제를 구걸한다. 중국이 얼마나 가소롭게 보겠는가 말이다. 중국은 우리 웹툰, 웹소설 업계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중국공산당의 방침에 어긋나는 콘텐츠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시장에서 돈을 벌고 싶으면 검열을 받으라는 게 그들의 입장이다. 중국공산당의 검열을 받고 나서 중국 시장에서 판매가 되면, 그것도 ’한류‘라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정부는 한한령 해제를 구걸할 것이 아니라 상호주의를 적용해야 한다. 중국은 우리 한국에서 중화TV 등 5개 케이블TV 채널을 통해 하루 24시간, 365일 자국의 콘텐츠를 방송한다. 중국공산당 관영지 인민일보의 인터넷판인 인민망을 비롯, 온갖 미디어를 자유롭게 한국어로 서비스하고 특히 인민망은 연합뉴스, 네이버, 조선일보 등 국내 유수의 매체들과도 협업을 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상호주의를 적용하려면 우리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중국은 공산당이 지령을 내리면 일사불란하게 실행되지만, 법치국가인 우리는 규제를 하려면 법률적 근거가 있어야만 한다. 자유민주주의국가가 공산국가와 맞서 싸울 때 겪게 되는 치명적 약점이다. 중국공산당은 우리의 법치주의를 이용하고, 우리의 법원을 이용한다. 우리 법률 개정을 위해서는 국회의원들이 움직여야 하는데, 한중의원연맹 소속 의원이 100명이 넘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 워싱턴에 가서 ’안미경중‘을 공식적으로 폐기했다. 기대를 해도 좋을까?

다시 케데헌으로 돌아가 보자. 만리방화벽으로 갇혀 있는 중국에서도 케데헌 열풍이 불고 있다. 각국의 케데헌 팬들이 올린 영상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웃다가 울다가 하게 된다. 케데헌 감독이 캐나다 교포이고, 플렛폼은 넷플릭스이고, 제작은 소니가 했는데 왜 K팝이냐고? ’국뽕‘ 아니냐고? 그런 생각은 일단 접어두시고, 먼저 노래를 감상해 보시길 권한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