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문제로 갈라진 영국…국기 게양 둘러싸고 분열 심화

세인트 조지 십자가가 잉글랜드 전역에 나타나고 있다. 그 수는 월드컵과 같은 축구 토너먼트 기간에만 볼 수 있었던 수준이다.
‘깃발 게양 작전(Operation Raise the Colours)’이 이 운동의 명칭으로, 여름 동안 소셜미디어에서 처음 관심을 받기 시작해 9월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 운동은 불법 이민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시위가 지속되는 가운데 나타났다. 특히 영국 정부가 망명 신청자들을 호텔에 수용하는 정책에 대한 반발이 그 중심에 있다.
세인트 조지 십자가와 영국기 유니언 플래그(유니언 잭이라고도 함) 모두 국가 상징으로서 보통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의해 게양되지만, 최근 전국적으로 대규모로 게양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 현상을 정치적으로 양극화를 초래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영국에서는 깃발 게양이 미국에서처럼 보편적인 관행은 아니다.
영국 좌파의 일부는 이 움직임을 “인종차별적” 또는 “극우”라고 규정하고 있는 반면, 깃발 게양을 지지하는 다른 이들은 이를 “애국적”이라고 부른다.
국기 게양, 어디서 시작되었나?
버밍엄의 가로등 기둥에 걸린 깃발로 시작된 이 움직임은 로터리와 기타 공공 인프라에 빨간 십자가를 스프레이로 그리는 것으로 확산되어, 영국 내외에서 지지와 동시에 조롱이 쏟아져 나왔다.
지역 언론에 따르면, 버밍엄 시의회는 처음에 안전 문제를 들어 깃발들을 신속히 제거하려고 했으나, 이는 캠페인 지지자들의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9월 5일 현재, 시 전역에서 수많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작가이자 정치 평론가인 폴 엠베리(Paul Embery)는 소셜미디어 X에 “버밍엄 시의회가 지역 주민들이 게양한 유니언 잭과 세인트 조지 깃발을 철거했지만, 며칠 안에 새로운 깃발들이 다시 게양되었다”며 “나는 결코 ‘깃발 흔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렇게 한 사람들을 지지한다”고 글을 게시했다.
또 다른 X 사용자인 “바질 더 그레이트(Basil the Great)”는 유니언 잭이 늘어선 거리를 보여주는 영상을 게시하고 “버밍엄 시의회가 국기를 철거했지만, 애국자들이 다시 게양했다. Rule Britannia”라고 썼다. ‘Rule Britannia’는 대영제국의 해상 패권 시대를 상징하는 곡으로, 영국의 자부심과 애국심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자주 사용된다.
이 ‘작전’의 진원지는 영국 제2의 도시 버밍엄의 교외, 잉글랜드 중심부였다.
시 남서부의 주거지구인 웨올리 캐슬(Weoley Castle)이 이 운동이 시작된 곳으로 보인다. 웨올리 워리어스(Weoley Warriors)라고 자칭하는 단체가 해당 지역 가로등 기둥에 세인트 조지 십자가가 있는 잉글랜드 깃발과 영국 전체를 상징하는 유니언 잭을 게양했다고 공개하고 나섰다.
‘지역사회를 위한 깃발(Flags for the Community)’ 고펀드미(GoFundMe) 페이지에서 이 운동 조직자들은 자신들을 “버밍엄과 전국에 우리의 역사, 자유, 성취에 대한 자부심을 보여주겠다는 공통 목표를 가진 자랑스러운 영국인 남성들의 그룹”이라고 밝히고 있다. 고펀드미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다.
8월 10일(이하 현지시간)부터 활동해 온 이 페이지는 현재 2만1500파운드(약 4천만원) 이상의 기부금을 모금했으며, 이 돈은 “깃발, 깃대, 케이블 타이” 구매에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2025년 9월 2일 영국 버밍엄 웨올리 캐슬에서 깃발이 게양되어 있다. Guy Birchall/The Epoch Times
웨올리 캐슬에 들어서면 깃발이 다수 나타난다. 가로등 기둥에 매달리고 창문에 걸린 유니언 잭과 세인트 조지 깃발이 어디서나 눈에 띈다. 시선이 닿는 곳까지 깃발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동네 지명과 같은 이름의 지역 펍(식당) 웨올리 캐슬 밖에는 큰 잉글랜드 깃발이 걸려 있다. 펍 안에는 지역 축구팀, 유명한 영국 록밴드, 버밍엄을 배경으로 한 인기 드라마 ‘피키 블라인더스’의 기념품들 사이에 더 많은 유니언 잭, 세인트 조지 깃발이 모서리의 임시 DJ 부스를 장식하고 있으며, 전사자들을 위한 영구 추모비도 함께 있다.
에포크 타임스와 인터뷰한 펍 손님들은 약 6주 전에 마을 곳곳에 깃발들이 게양됐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 운동에 대해 전반적인 지지를 표했지만,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청한 한 펍 손님은 언론이 유니언 잭, 세인트 조지 깃발을 인종차별적인 것으로 폄하하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국기의 확산에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있다는 생각을 거부했으며, 그것들은 지역 공동체(그녀는 ‘다문화적인 공동체’라고 표현했다)에서 내건 것이라고 덧붙였다.
버밍엄 북쪽 스태퍼드셔주 리치필드에서도 깃발들이 나타났다. 이 운동의 주요 설계자 중 한 명은 X에서 “로스 더 돈(Ross The Don)”이라는 별명으로 활동하며 거의 1만2000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27세의 바닥재 설치업자다. 그의 게시물은 도시 곳곳의 가로등 기둥에 깃발을 설치하는 자신의 사진과 영상들로 가득하다.
로스는 에포크 타임스에 웨올리 워리어스로부터 영감을 받았으며 그 그룹에 친구가 있어 깃발을 공급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영국의 현 상황에 대한 좌절감에서 비롯됐지만, 주로 애국심에서 나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언론이 그 운동을 인종차별적인 것이라고 각색하고 불법 이주민들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내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것이 애국적인 것이며, 모든 사람에게 이 나라가 법과 질서를 대변한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영국인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깃발을 게양하는 그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압도적으로 긍정적이었다. 지역 의회나 경찰로부터 비판이나 비난을 받지도 않았다. 그런데 일부 주민들이 그가 하는 일이 “불법”이라고 주장한 사건은 하나 있었다.
그는 “깃발 게양은 영국 국민들이 영국이 더 안전한 곳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정치인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그렇게 하는 훌륭한 방법이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가로등 기둥에서 펄럭이는 국기들의 이미지가 소셜미디어에서 입소문을 탄 후, 이 움직임은 맨체스터, 요크, 포츠머스, 런던을 포함한 다른 도시들로 확산됐다.
상반된 반응
이 캠페인은 영국의 수많은 우파 인사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개혁영국당(Reform UK) 대표 나이절 패라지(Nigel Farage)는 지난달 GB뉴스에서 이 캠페인이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8월 데일리 메일의 오피니언 기사에서 케미 베이드노크 보수당 대표는 깃발들을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우리의 역사, 자유, 공동의 정체성에 대한 자랑스러운 표현”이라고 정의했다.
보수당의 동료이자 주요 의원인 로버트 젠릭(Robert Jenrick)은 8월 20일 X에 “깃발을 게양하라! 조국을 혐오하는 일부 지자체들이 깃발을 내리는 동안, 우리는 깃발을 게양한다. 우리는 유니언 잭 아래 하나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게시했다.
무소속 의원 루퍼트 로우(Rupert Lowe) 역시 X에 9월 1일 “우리의 깃발이 어디에나 있다. 자랑스럽다”고 게시했다.
그리고 토미 로빈슨(Tommy Robinson)으로 더 잘 알려진 활동가 스티븐 야슬리-레논(Stephen Yaxley-Lennon)은 9월 2일 “좋다 형제들, 왕국을 통일시키자”라고 게시했다.
이 운동은 대서양 건너편 미국에서도 지지를 얻었다. 일론 머스크는 8월 25일 자신의 플랫폼 X에 잉글랜드 깃발 이미지를 게시했는데, 이는 9월 6일 기준 8540만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영국 정부를 비판하는 게시물들이 줄을 이었다.
미국 부통령 JD 밴스도 가세하여, 영국에서 “깃발에 불쾌감을 느끼는 미치광이들에 맞서 밀어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깃발 캠페인에 대한 질문에 대해 그는 폭스뉴스에서 “자국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2025년 8월 29일 영국 스태퍼드셔주 월솔의 미니 로터리에 그려진 잉글랜드 깃발. Christopher Furlong/Getty Images
영국 좌파의 일부는 이 ‘작전’에 문제를 제기했다. 캠페인 단체 ‘호프 낫 헤이트(Hope Not Hate)’는 “이 활동의 상당 부분이 잘 알려진 인종차별주의자들과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조직되고 있다”며 이것이 “깃발 게양 작전의 이면의 동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고 주장했다.
호프 낫 헤이트는 특히 활동가 로빈슨을 비롯한 인물들이 이 운동을 후원하고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문제시했다.
‘스탠드 업 투 레이시즘(Stand Up To Racism)’ 역시 이 운동에 반대 목소리를 냈으며, 반파시스트 담당 루이스 닐센(Lewis Nielsen)은 가디언에 극우가 주도하는 인종차별에 “은폐막을 제공할까 봐” 우려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이 운동이 극우가 세력을 구축하려는 전환점에서 나오는 상당히 위험한 움직임이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좌파 노동당 정부는 이 캠페인에 대해 덜 비판적이었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잉글랜드 깃발을 “자랑스러워한다”며 집에 깃발 하나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때때로 깃발이 순전히 분열적인 목적으로 사용될 때, 그것은 깃발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그는 BBC에 말했다.
왜 지금인가?
런던에 본부를 둔 독립 싱크탱크 브뤼헤 그룹(Bruges Group)의 로버트 아울즈(Robert Oulds)는 에포크 타임스에 이 운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며 “이런 것들은 그냥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국가에 대해 오래 간직해 온 믿음, 국가 정체성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국기와 같은 상징은 국가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영국인들은 특히 이러한 상징들을 자랑스러워하고 자부심을 느낀다. 정부는 그것들을 지지하지 않고 어떤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고 싶어서 너무, 너무 오랫동안 억압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영국 정부가 추구하는 정체성은 민족국가를 배제하고 다문화주의를 비롯한 일련의 가치관을 선호한다.
그는 국기 게양 운동이 왜 바로 이 시점에 나타났는지에 대해 논하면서, 정체된 임금과 치솟는 생활비를 포함한 영국의 고질적 경제난과 함께 역사적으로 전례 없는 수준의 이민을 거론했다.
그는 “사람들은 다소 뒤늦게나마, 그들이 알던 것, 그들이 자란 나라, 그리고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는 것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한강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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