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윈도우] 북한 MZ세대의 조용한 변화 ①

■ 방송 : 에포크 TV ‘인사이트 윈도우’
■ 일자 : 2025년 7월 2일(촬영)
■ 진행 : 추봉기 에포크타임스 한국지사 부사장
■ 대담 : 탈북 청년 강규리 씨
*내용 인용 시 <에포크 TV ‘인사이트 윈도우’ 인터뷰>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추봉기 에포크타임스 한국지사 부사장(이하 추봉기) = 오늘은 특별한 분을 모셨다. 2023년 북한을 탈출한 걸로 알고 있는 강규리 씨를 모셨다. 북한을 탈출한 계기는 무엇인가.
△강규리 = 북한에서 어릴 때부터 한국 드라마 등 한국 콘텐츠를 많이 접했다. 그래서 한국에 대한 동경심이 어릴 때부터 자라났다. 전 평양에서 태어나서 살다가 제 외할머님이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저희 가족이 지방으로 추방당했다. 그래서 북한 정권에 뭔가 좋지 않은 감정이 있다. 또 저희 부모님은 한국에 대한 동경심을 품고 계셨다. 제 어머님은 북한에 있을 때 한의사 치료를 하면서 치료로 유명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모았다. 제가 그래서 ‘시집을 안 가도 좋으니까 배를 사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어머님은 ‘어린 나이에 무슨 배를 하냐’고 그러시더라.
저희는 함경남도 지역에 살았다. 대체로 북쪽 국경 지역이 돼야 한국이든 중국이든 가려는 노선의 브로커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저희는 그런 걸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배만 있다면 (한국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이점을 어머님께 강조했고 2022년 배를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전 배 선주를 할 수 있었다.
북한은 억압과 통제가 심하다. 2019년도가 다르고 2020년도가 다르다. 점점 억압을 해왔다. 그래서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이유는 (북한에) 반동사상문화배격볍과 평양문화보호법, 청년교양보장법이라는 3개의 악법이 있었다. 코로나 기간에 그 악법들이 나오면서 청년들이 한류를 접하면 총살을 했다. 이런 데서 산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저도 한국 드라마를 엄청 좋아한다. 거의 중독돼서 살았는데 (악법으로 인해) ‘나는 그냥 가야겠다’고, 좀 나은 삶을 찾기 위해 출발하게 됐다.
▲추봉기 = 코로나 이후 북한 내부 통제나 압박은 어떻게 달라졌나.
△강규리 = 코로나 전엔 사람들이 장마당에서 뭔가를 판매하고 밀수도 하면서 뭔가를 할 수 있었다. 이에 돈 많은 사람들도 꽤 있었다. 일반 주민은 장사를 하면서 살아야 된다. 그런데 개인 장사를 없앤다는 지시가 내려졌다. 쌀 장사를 예로 들면 곳곳에 양곡 판매소를 설치하고 국가가 직접 판매를 한 것이다. 제가 있을 땐 쌀 가격이 4000원에서 5000원이었다. 그런데 가격이 7000원까지 올랐다.
▲추봉기 = 북한 주민들 사이에 동요나 저항 움직임은 없었나.
△강규리 = 주민들의 불만이 커졌고 굶어 죽는 사람도 많아졌다. 어떻게 보면 내 목숨을 유지해야 (북한에) 충성을 하든 뭘 하든 하지 않나. 그런데 그 유지가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사람들은 악밖에 안 남았다.
▲추봉기 = 매스컴을 보면 북한 김정을 찬양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김정은 찬양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인가.
△강규리 = (실상은) 그렇지는 않다. 그럴 수가 없다. 주민을 먹고 살게 해줘야 진짜 (찬양이) 우러나오는 것인데. 진짜 사회주의인지 자본주의인지 모르겠다. 저흰 (먹고 살 것을) 공짜로 받아본 적이 없다. 어머님 세대는 평양에 있을 때 좀 많이 받았다는데 3대까지 오다 보니까 저희에겐 도무지 없었다.
▲추봉기 = 북한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을 꼽자면.
△강규리 = 당연히 저희 청년들을 무자비하게 총살하던 것이다. 제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제가 보러 안 갔다.
▲추봉기 = 어떤 이유로 총살을 당하는지.
△강규리 = 한류를 접했단 이유다. 그 이유가 저희는 납득이 안 됐다. 그때 깜짝 놀랐다. 아는 친구가 그런 일을 겪었을 때 그냥 엊그제도 봤는데 재판을 받고 몇 달 뒤 총살을 당했다. 더 중요한 건 길에 나가면 계속 통제를 받는다. 지금은 (거리를) 지나다니면 청년동맹지도원에서 ‘어디에 사나’ ‘직장이 어딘가’ 등 개인정보를 물어볼 수 있다. 휴대폰도 보여달라고 하면 보여줘야 한다. 휴대폰 문자에 ‘오빠’라고 적혀있으면 ‘이건 남한 말투’라면서 트집을 잡는다.
저희 청년들, MZ세대는 (북한 정권에) 충성하는 이들이 별로 없다. 한류를 접하면서 우리가 잘못된 삶을 살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충성심을) 가진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북한 정권도) 저희 세대에 기대를 안 한다. 그냥 총살한다.
▲추봉기 = 한국이나 통일 같은 단어도 지금 금지어로 돼 있다고 한다. 같은 민족끼리 왜 그렇게 적대적 관계로 가려는지 모르겠다.
△강규리 = 저희 장마당 세대가 워낙 한국을 동경하고 문화를 따라하려고 하고 말투도 따라하니까 (북한 정권 입장에선) 위협감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안 그러면 저렇게까지 반응할 수 없다. 한국 드라마를 볼 때 저희가 달라지는 게 없다면 그걸 통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류를 접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란 생각을 하니까 (압력을) 넣는 것 같다.
▲추봉기 = 북한 정책이 주민 인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강규리 = 민심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민심을 잃었다는 걸 (북한 정권도) 알고 있을 것 같다. 당국 스스로 그런 걸 개의치 않는 게 힘들 것이다. 아무리 저희의 귀를 막고 눈을 가려도 어느 정도까지다. 자신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한류가 계속 몰래 들어오고 그것을 (주민들이) 접하며 생각이 바뀌니까. 그래서 지금은 (북한 정권이) 생각을 바꿨다. 그냥 죽여버리고 강압적으로 하는 것이다.
▲추봉기 = 북한에 있을 때 즐겨보던 드라마나 노래가 있었다면.
△강규리 = 엄청 많았다. BTS 음악도 즐겨서 듣고 트로트 가수 노래도 좋아했다. 임영웅도 (북한에서 한류를 접하며) 알았다. 그리고 백지영의 노래도 좋아했다.
▲추봉기 = 목선을 타고 남하한 걸로 안다. 위험한 순간은 없었나.
△강규리 = 한국까지 오는 데 약 44시간이 걸렸다. 저는 올 때 NLL(북방한계선)을 넘어야 한다. 그런데 목선은 추적이 안 되기 때문에 북한 군인들이 우리를 발견하지 못할 줄 알았다. 그래서 어머님도 태우고 이모님도 태우고 저희 배 사람 중 한 명도 같이 왔다. 저흰 낮엔 항해를 안 하고 밤에만 항해했다. 그런데 (북한 정권에서) 저희를 발견했다. 어떻게 발견했는지 모르지만 모르는 불빛이 뒤에서 나타났다. 4시간동안 추격을 당했다.
(추격에서 피할 수 있던 건) 파도가 저희를 살렸다. 파도가 엄청 높이 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저희를 추격했던 배는 큰 배였는데 파도를 맞다 보니 (추격이) 더뎌졌다. 그 순간이 위험했다. 하늘이 도왔다. 이건 진짜 기적이었다.
*강규리 씨와의 인터뷰는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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