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정권 사활 걸린 전기차…한국서도 ‘댓글 공작’ 포착

강우찬
2024년 09월 30일 오후 12:42 업데이트: 2024년 09월 30일 오후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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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학 연구팀, 네이버·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 댓글 분석
중국 기술·기업 추켜올리고 한국 기업이나 중국 비판 매체 폄훼
2개 그룹 점조직, 조직적 움직임…미 대선 여론공작과 동일 전술

국내서 이른바 ‘중국 댓글부대’로 불리는 중국 공산당 사이버 공작부대의 여론 조작 의혹을 조사한 국내 연구진 보고서가 발표됐다.

이에 따르면 전기차·배터리·이커머스 등, 최근 중국 기업들이 한국 시장 공략에 주력하고 있는 산업 분야에서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집단이 조직적으로 댓글을 달아 ‘친중혐한’ 여론을 조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가톨릭관동대 경찰행정학과 김은영 교수와 국립창원대 국제관계학과 홍석훈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한중 경쟁 산업 분야에 대한 중국 영향력 공작 실태 파악 보고서’에서는 네이버·유튜브·네이트의 기사 댓글을 분석해 중국인으로 의심되는 계정 수십 개를 포착했다.

이들 계정은 중국어 혹은 중국인 이름으로 여겨지는 아이디를 사용했으며, 댓글에서는 어색한 중국식 표현을 사용했다. 또한 비슷한 댓글을 반복적으로 작성했다.

특히 네이버 기사에 댓글을 쓴 중국인 추정 계정 77개를 분석한 결과, 크게 2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점조직 형태로 국내 산업 기사에 조직적으로 댓글을 달았다. 각각의 그룹은 소수의 ‘리더’가 주도하고 다른 이들이 뒤따르는 형태였다.

한 그룹은 닉네임 ‘Chen Yang(천양)’, ‘Chen Wei Chi(천웨이치)’가 이끌었고, 다른 그룹은 닉네임 ‘xuf(쉬프)’, ‘Seoul Breeze’ 등이 맡았다. 두 그룹을 모두 연결하는 주도자는 천양으로 관찰됐으며 이 닉네임은 이후 국적을 알기 힘든 ‘123456789’로 변경됐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조사에 따르면, 중국인 의심자(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이용자)들은 ▲댓글이 많이 달린 기사 ▲한국인이 주로 댓글을 작성하는 기사에 집중적으로 댓글을 썼다.

즉, 한국인들이 많이 몰리는 기사일수록 댓글을 쓴 것이다. 이는 단지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기보다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특정한 견해를 퍼뜨려 여론에 영향을 주려 한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이번 연구는 2023년 7월부터 2024년 8월까지 13개월 동안 네이버와 유튜브, 네이트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전기차, 배터리, 스마트폰, 삼성,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3사인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등의 키워드를 이용해 기사 70개를 무작위 수집한 후 전체 댓글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연구팀은 이들 사이버 공작부대가 한국인에게 겁주기, 갈라치기 외에도 중국을 비판하는 국내 매체를 폄하해 영향력을 약화하는 ‘버리기’ 전술이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2개 그룹, 점조직 형태…미국 대선 여론공작 조사 때도 드러난 中 전술

김은영·홍석훈 교수 연구팀 조사에서는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집단이 2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몇몇 주도자의 지휘를 받아 점조직 형태로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 매체 VOA와 대만 싱크탱크인 민주주의 연구소가 최근 미국 소셜미디어에서 실행한 중국 공산당 사이버 공작부대의 여론 조작에서도 드러난 것과 동일한 수법이다.

민주주의 연구소 조사에서도 중국인 추정 집단이 2개 그룹으로 나뉘어, 미국 유권자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인 동성애자 권리, 낙태, 총기, 마약, 범죄율 등에 극단적인 의견을 제시하며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있음이 포착됐다. 그중 한 계정은 닉네임이 ‘congcong(총총)’이었다.

25개 계정을 거느린 한 그룹은 미국인으로 위장한 후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게시물과 댓글을 작성했는데, 이는 해당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네트워크에 침투해 더 많은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전술로 분석됐다. 이들은 한 가지 이슈를 한쪽에서 반대하고 다른 쪽에선 방관하는 양면 전술도 구사했다.


전기차·배터리·이커머스…중국 공산당 명줄 걸린 산업

이번 국내 연구팀 조사에서는 중국 댓글부대가 주로 한국과 중국 간 경쟁이 치열한 전기차, 배터리, 이커머스 등의 산업 분야에서 한국 국내 여론을 중국 쪽에 치우치게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중국 경제는 그동안 3대 축이었던 수출, 내수(국내소비), 부동산 개발 모두 침체에 빠져 있다. 수요가 되살아나지 않고 있지만 공급을 줄이긴 어렵다. 당장 공장 문을 닫으면 실직자가 대량으로 발생하고 이는 정권에 위협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알리, 테무, 쉬인은 이처럼 과잉 생산된 물품을 해외에 저가 판매해 경제를 지탱하고 정권 안정에 기여할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자동차, 배터리 업체의 임무는 더욱 막중하다. 이커머스에 소액 판매가 걸렸다면 전기차, 배터리 산업은 수출 분야에서 더욱 큰 몫을 차지하고 있어서다.

따라서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은 단지 중국 기업에만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국내 연구팀은 수년 전부터 한·중 경쟁 분야에서 한국 기술, 한국 기업을 깎아내리는 댓글 빈도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한편,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은 지난 9월 말 이례적으로 경제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경제 분야에서 “새로운 상황과 문제가 나타났다”며 “책임감과 긴박감”을 강조했다.

지난 수년간 국내 온라인 공간에서는 과격한 댓글과 게시물로 극도의 대립과 갈등이 반복돼 왔다. 한국인 스스로의 책임도 피할 수 없겠지만, 외국 세력의 악의적 여론 공작 의혹에 대한 철처한 대비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