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홍콩 선거제를 소위 ‘애국자’만 출마하도록 개편한 이후 첫 홍콩 구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민주진영의 출마가 원천 봉쇄된 ‘반쪽짜리’ 선거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1일(이하 현지 시간) 홍콩 선거관리위원회는 전날인 10일 치러진 제7회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119만3193명이 투표, 최종 투표율이 27.54%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이는 기존 구의원 선거는 물론, 역대 홍콩에서 치러진 모든 선거 중 가장 낮은 투표율이다.
선거 당일이었던 10일 에포크타임스 취재진이 현지 여러 투표소의 상황을 살핀 결과, 투표에 임한 유권자는 대부분 중장년층 또는 노년층이었다. 유권자들 모두 줄을 설 필요 없이 투표소에 입장할 수 있었는데 이는 직전 구의원 선거인 지난 2019년 제6회 구의원 선거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제6회 구의원 선거는 2019년 11월 거센 반정부 시위 물결 속 진행돼 71.23%의 역대 최고 투표율을 기록한 바 있다. 당시 대부분의 투표소에는 긴 줄이 늘어섰으나 이번 선거의 투표소들은 한산함 그 자체였다.
에포크타임스는 현지 거리에서 홍콩 시민들을 인터뷰했다. 인터뷰에 응한 시민들은 대부분 투표를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투표하고 싶은 후보가 없다는 게 이들의 이유였다.
홍콩 시민 A씨는 “과거에는 열심히 일하는 의원들을 지지하고 투표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의원들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면서 “나는 현재 후보자들이 공공 재정을 감시하는 이런 일(정부 감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투표할 생각이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A씨는 “나는 이 사람들(후보자들)을 모른다. 내가 투표할 사람은 이번에 없다”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의원들이 많은 현안 질의를 했으나 현재 의원들에게는 그런 느낌이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친중 진영 인사들로 채워진 지역위원회 3곳의 위원들로부터 추천을 받고, 사전 자격 심사를 통과해야만 선거 입후보 자격이 주어지도록 개편한 선거제도를 가리켜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출판업계에 종사한다고 직업을 밝힌 A씨는 또 “공무원인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상사로부터 투표를 꼭 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홍콩 시민 B씨도 “투표는 의미가 없고 좋은 선택지도 없다”고 말했다. 민주진영 후보가 사라진 이후로 정치 문제에 관심을 잃었으며 투표할 계획도 없다고 고백한 B씨는 “정부는 투표율이 ‘추악하게’ 보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지난 제6회 구의원 선거에서는 투표권을 행사했던 C씨는 “(이번에는) 뽑고 싶은 후보가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구의원이 없다”며 자신 역시 이번에는 투표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C씨에 따르면, C씨 주변만 보더라도 이번 제7회 구의원 선거 분위기는 과거 선거 때만큼 뜨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과 달리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투표하겠다고 밝힌 유권자 D씨는 민주진영 후보의 출마가 차단된 데 대해 “상관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D씨는 “모든 것이 후보자에 달려 있으며, 후보자들이 지역구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투표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친구들에게도 투표를 권유했지만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부, 민주진영의 또 다른 압승을 막다
2019년 11월 제6회 구의원 선거 당시 민주진영은 전체 의석의 86%를 싹쓸이했다. 그러자 정부는 민주진영의 기세를 바닥부터 누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2021년 2월 홍콩·마카오 판공실은 ‘애국자가 통치하는 홍콩’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 관계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창한 ‘애국자가 통치하는 홍콩’ 원칙을 구현하려면 홍콩의 실제 상항을 바탕으로 홍콩 특성에 맞는 민주적 선거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3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는 홍콩 행정장관을 선출하는 선거인단에서 구의원을 배제하는 홍콩 선거제도 개편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구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민주진영의 정부 운영 개입 가능성을 막고 향후 선거에서도 민주진영의 후보 출마 자체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와 함께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되면서 홍콩 정부는 정부에 책임을 다하고 임무에 헌신한다는 내용을 담은 충성서약을 의무로 규정했다. 충성서약을 위반하거나 거부할 경우 의원 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법률 개정안도 발표했다.
이렇듯 정부가 손보기에 나서면서 그 해에만 민주화 성향의 구의원 200여 명이 사퇴, 전체 의석의 약 70%가 공석이 됐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부는 나아가 유권자들이 직접 투표로 선출하는 구의원 의석을 기존 452석에서 88석으로 대폭 감축했다. 나머지는 모두 정부 또는 정부가 임명한 친중 지역위원회 위원들이 선출하도록 했다.
그 결과, 홍콩 민주진영은 붕괴했다. 이번 선거에서 홍콩 최대 야당인 민주당을 비롯해 야권의 그 누구도 출마조차 하지 못했다.
*황효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