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CSIS ‘北 인권유린 방조하는 중국·러시아’ 조명

정향매
2023년 09월 21일 오전 9:00 업데이트: 2023년 09월 21일 오후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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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씨 정권을 지지하고, 국제 인권 보장 의무 및 제재를 이행하지 않고, 경제적 이익을 꾀하고, 연대해서 서방국가에 맞서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인권유린을 방조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 D.C 소재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 14일(현지 시간) 조지 W 부시 연구소와 공동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같이 주장하며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인권유린에 가담해 온 정황을 조명했다(보고서). 

두 기관은 미국 워싱턴 D.C 소재 비영리 연구 기관 북한인권위원회(HRNK)와 함께 정부 및 비정부 전문가 패널을 소집해 해당 주제를 논의했다. 논의 내용은 보고서에 담겼다. 

‘2014 유엔 인권이사회 북한인권 조사위원회 보고서(COI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정권은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중대한 인권 침해를 지속적으로 자행했다. 북한이 저지른 인권 침해는 대부분 정책에 의한 반인도주의 범죄에 해당한다.

CSIS 보고서는 “자신도 심각한 인권침해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는 이러한 북한의 인권유린을 다양한 방식으로 방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다음 몇 가지 사례를 언급했다. 

국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무역 지속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핵실험을 억제하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지난 2006~ 2017년 대북 경제 제재 결의안을 10건 통과시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는 계속 북한과 교역하며 제재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2017년부터는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북한 제재 결의를 차단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북한의 무역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다양한 자료를 통해 북한의 무역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지난해 9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보면 중국과 러시아는 대북 무역을 한 번도 중단한 적이 없다. 2020년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제재와 코로나19 팬데믹 확산에 따른 국경 봉쇄 등으로 인해 북한과 중국·러시아 간의 공식 무역량은 매우 적았다. 2021년 3분기, 북한이 국경 봉쇄를 완화하자 증가하기 시작했지만, 지난해 5월 평양이 첫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을 공개하면서 다시 떨어졌다. 

CRS는 또 중국과 러시아가 다양한 불법 활동을 통해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돕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제재 상품 및 서비스 품목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다는 점을 악용해 북한과 금지된 품목을 거래하고 △북한에 정제된 석유를 수출하고 △해상으로 북한 석탄을 수입하고 △중국 항만에서 북한 선박의 외관을 변경해 북한이 거래에 참여한 사실을 은폐하는 등의 활동에 가담하고 있다. 

미국의 북한전문 매체 NK 뉴스는 지난 5월 중국 세관의 데이터를 인용해 “올해 4월 북한의 대(對)중 수출이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며 “양국 전체 무역 총액은 2억 달러(2658억 원) 넘었다”고 전했다. CSIS는 이와 관련해 “중국 세관이 공개한 데이터는 석유 수출, 서비스 거래를 비롯한 불법 무역 항목의 거래 내역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 북-중 무역량은 2억 달러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유엔이 공개한 국가별 품목별 무역통계에 따르면 2017~2019년 북한-러시아 무역량은 연평균 1~2% 증가했으며 2020년 양국의 무역량은 그해 북한 전체 무역량의 6%를 차지했다. 

CSIS는 “이 모든 활동은 북한에 무기 개발 자금을 마련해 주는 셈이며, 결국 북한 정권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평했다.  

북한의 초국가적 탄압 및 해외 노예노동 문제에 연루

CSIS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을 도와 국제 제재를 회피하는 것 외에 북한의 초국가적 탄압과 해외 노예노동 문제에도 연루돼 있다. 

북한은 지난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그러자 유엔 안보리는 그해 12월 만장일치로 ‘2397호: 미사일 발사에 따른 제재(2397호 결의안)’를 통과했다. 이 결의는 회원국에 2019년 12월 22까지 북한이탈주민(탈북자), 난민, 망명 신청자, 인신매매 피해자를 제외한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를 모두 송환하라고 촉구했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북한은 2397호 결의안 통과 전 약 10만 명의 노동자를 해외로 파견했다. 10만 명 중 3분의 1은 중국에, 3분의 1은 러시아에, 나머지 3분의 1은 중동·유럽·아프리카 등에 보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북한은 해외 파견 노동자의 월급을 대부분(최대 90%) 몰수하며, 이를 통해 연간 2억~5억 달러(2858억~6652억5000만 원)의 수입을 얻는다. 하지만 한 노동자가 매월 집에 송금하는 돈은 100~200 달러(13만~26만 원)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2397호 결의안 이행 시한인 2019년 12월 이후에도 수천 명의 북한 노동자가 해외에 머무르고 있다”며 중국과 러시아가 단속을 피하게 하기 위해 2397호 결의의 영향을 받지 않는 학생비자, 관광비자를 북한 노동자에게 발급하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했다. 

한 전문가는 러시아의 공식 통계를 인용해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인 2020년 1분기, 북한 시민 약 7000명이 러시아에 입국했다. 이들 중 노동자, 학생, 관광객으로 등록한 사람은 각각 753명, 1975명, 3000명이다. 학생과 관광객 수가 지난 2019년에 비해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022년 보고서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북한 노동자 수는 2만 명에 달하며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도 각각 2000~3000명이 있다”고 전했다. 

CSIS 보고서는 북한이 해외에 파견한 정보기술(IT) 노동자의 문제도 언급했다. 이들은 프로그래밍, 코딩, 게임 개발, 웹사이트 디자인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최근 한 탈북자는 2000명 이상의 북한 IT 노동자가 중국에서 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IT 노동자의 월급은 3000~10000 달러(약 400만~1327만 원)으로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월급에 비해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이들의 수입도 대부분 북한 정권에 직접 전달된다.  

일부 북한 IT 노동자는 유럽, 미국 기업에서 일하기 위해 중국인으로 위장하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CSIS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 노동자도 불안정한 처지에 놓여있다. 

1990년대 북한 대기근(고난의 행군) 이래 여성들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주로 담당해 왔다.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암시장에서 물품을 구매하다 당국에 체포돼 수감되는 경우가 많다. 수감자들은 강제 노역에 동원된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북한 여성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나 자유를 얻기 위해 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에서 탈출한다. 중국에 도착한 북한 여성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가혹한 노동 조건을 견뎌야 하는 것은 물론, 강제 결혼을 강요당하고 인신매매의 피해자가 될 위험에 처한다. 

북한 여성의 노동을 착취해 생산된 섬유 제품, 수산물 가공품 등은 유럽, 미국, 한국 등으로 수출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 난민 구금 및 강제 송환 

1951년 유엔 난민 협약과 이 협약에 대한 1967년 의정서는 난민이 박해 가능성이 있는 국가로 강제 송환되지 않을 권리를 명문화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해당 문서들에 서명했지만, 북한 망명 신청자들을 자주 구금하고 송환하고 있다”고 CSIS 보고서는 지적했다. 북한 당국의 박해가 두려워 망명을 신청한 북한 주민을 강제로 송환한다는 것이다. 

지난 6월 13일, 미국 의회 산하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CECC)는 ‘중국 내 탈북민들의 강제 북송’을 주제로 청문회를 개최했다. 송한나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국제 디렉터는 이날 청문회에서 “현재 약 2000명의 탈북자가 중국 내 구금 시설에 수감돼 있다”며 “이들은 유엔난민기구(UNHCR)나 베이징에 있는 외국 대사관과 접촉하지 못한 채 강제 송환을 기다리고 있다”고 증언했다. 

CSIS 보고서는 러시아가 북한 출신 최금철 소좌(소령)를 강제송환한 사례도 언급했다. 보고서는 “러시아 경찰 당국은 2021년 9월, 최금철을 체포해 북한 영사관에 넘겼다”고 했다.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최금철은 북한 적공국(적군와해공작국) 산하 563부대 126부 소속 소좌다.  평양의 수재 학교인 금성학원과 김책공대 박사원 출신의 IT 암호화 전문가다. 경찰에 체포될 때 그는 모스크바의 유엔난민기구에 망명 신청을 준비하고 있었다. 

유엔에서 북한 인권 개선을 저해하는 이니셔티브 추진  

CSIS 보고서는 또 중국과 러시아가 점점 커지는 자국의 영향력을 악용해 유엔에서 북한 인권 문제 개선을 저해하는 이니셔티브를 추진하는 동시에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비정부 기구(NGO)의 유엔 내 활동을 교란하고 있다 밝혔다. 

중국 당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 예산에서 수십억 달러를 지출해 난민 유치 국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기부했다. 보고서는 “이는 반체제 인사와 난민(특히 위구르족) 문제에서 기타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중국은 국제난민기구에서 더 큰 영향력을 확보해 기타 국가들의 난민 인구 관리 정책 제정에도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며 “그 결과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는 중국의 북한 난민 강제 송환을 반대하는 데 더 주저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에 체류한 북한 난민은 1999년부터 국경 지역에서 유엔난민기구 관계자와 접촉할 수 없었으며 2008년부터는 베이징에 있는 유엔난민기구 사무실에도 접근할 수 없게 됐다. 

전문가들은 유엔난민기구는 북한 난민 문제에서 중국 당국과 부딪히는 것을 꺼린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중국 구치소에 수감 중인 약 2000명의 탈북자와 관련된 문제를 유엔난민기구가 아닌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에 맡겼다. 이런 이유로 유엔난민기구는 중국 당국을 압박하는 데 주저하게 됐다. 유엔난민기구는 더 이상 중국에 체류한 북한 국민의 수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보고서는 “중국 당국이 ‘개발권(right to development)’ 시각으로 인권 문제를 다루는 새로운 ‘중국 모델’을 유엔과 개발도상국에 선전하고 있다”며 “인권에 대한 대안적 사고방식을 제시한 이 모델은 점점 더 매력적으로 개발도상국을 유혹하고 있으며 미국이 인권에 대한 접근 방식과 경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개발권은 모든 인간과 민족이 모든 인권과 기본적 자유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발전에 참여하고 기여하며 이를 향유할 수 있는 양도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다. 

보고서는 중국이 주장하는 인권 내러티브가 개발도상국 사이에서 자리를 잡으면, 중국 당국은 앞으로 유엔이 인권 문제를 다루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경고했다. 

CSIS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확산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북한 당국은 국경 안팎에서 자국민을 더 강력히 압박할 수 있는 새로운 동기와 기회를 획득했다. 

보고서는 마지막으로 미국 정부에 △대북 정책에 인권 문제를 명시하고 △‘제재를 통해 미국의 적에 반격하는 법’을 포함한 관련 법안을 시행하고 △인권 침해에 연루된 중국과 러시아 기업에 추가 제재를 가하고 △민간 부분이 인권을 침해하는 단체와의 계약을 피하기 위해 더 경계하도록 동원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어 “하지만 미국은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유일한 주체가 돼서는 안 된다”며 “미국은 국제 파트너들과 협력해 북한 인권 운동을 활성화하고, 시민 사회와 협력해 북한 당국의 노동 착취에 대한 인식을 제고해야 하며, COI 보고서 발표 10주년을 계기로 북한 인권 개선 중 진전 분야와 취약점을 평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