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에 집중된 권력, 왕좌 비워지면 내분 일어나
시진핑 체제, 유지 어려워…포스트 공산주의 올 것
워싱턴 국제관계 전문가 브래들리 세이어 국장 전망
지난달 브릭스 정상회의 만찬 포럼 불참 이후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건강 이상설과 함께 ‘포스트-시진핑’에 관한 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중국 경제의 하락, 지방정부 부채 리스크, 외교적 고립 등 안팎의 난제가 산적한 가운데 만약 시진핑이 사망한다면 그를 중심으로 구축됐던 중앙집권적 현행 체제는 어떻게 변화할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보수성향 싱크탱크 안전보장정책(CSP) 센터의 대중정책국장 브래들리 세이어의 견해를 소개한다.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국제관계와 안보전략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세이어 국장은 에포크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국제적 안보 이슈와 관련해 기고를 이어가고 있다.
그에 따르면, 시진핑의 건강 이상설은 현 중국 체제에서 가볍지 않은 불안 요소다. 1953년생으로 올해 70세인 시진핑은 같은 연령대의 일반 남성에 비해 심각한 수준의 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세이어 국장은 “시진핑이 사망하거나 병으로 쓰러지면 마오쩌둥 사후와 같은 권력투쟁이 벌어질 것”이라며 “이럴 경우 공산당 지도부의 리더십, 인민해방군과 국가안전부(국안부)의 선택이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지도부 리더십은 해방군과 정보기관인 국안부의 충성심을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느냐와 직결된다. 국내 보안도 담당하는 국안부는 유사시 공안 인력을 동원해 베이징의 당 수뇌부를 체포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세이어 국장은 “그럼에도 국안부보다는 해방군의 선택이 더 중요하다”며 “이 두 기관의 의향에 따라 현 공산당 체제를 유지하거나 변경, 혹은 해체 후 새로운 정치 체제 도입 등의 선택지가 결정된다”고 분석했다.
‘당중앙 핵심’ 시진핑의 사망, 파벌 간 다툼 촉발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이 그러했듯 시진핑이 사망하면 공산당은 가장 취약해지는 시기를 맞게 된다.
이는 중국 민중과 교민들, 반체제 인사들에게 공산당에 대한 항거를 실행에 옮길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게 세이어 국장의 설명이다.
특히 시진핑이 사망한 후 한동안은 마오쩌둥 때와는 달리 구심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마오쩌둥주의자들은 마오쩌둥 사후에도 세력을 유지했으나 시진핑은 그 정도의 절대 권력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마침 현재 중국 경제는 정체하거나 쇠퇴하고 있다. 마오쩌둥의 후계자 덩샤오핑이 집권했을 때도 정치적 저항은 있었으나 개혁개방에 따른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저항의 강도는 빠르게 약화했다.
그러나 시진핑의 바람과 달리 경제 전망이 어두워진 지금은 공산당에 반대하는 새로운 독재정권 혹은 군사정권으로 권력이 이동하고 과도기를 거쳐 민주주의를 결합한 형태의 정권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세이어 국장은 시진핑 사후 가능한 중국의 정치 체제를 싱가포르 모델, 대만 모델, 스트롱맨 모델 등 3가지로 예상했다. 이 중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스트롱맨 모델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싱가포르 모델 : 리콴유의 ‘개발독재’
1959년 싱가포르 자치정부 수반에 오른 리콴유는 1965년 싱가포르의 독립 이후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까지 31년간 장기집권했다.
리콴유의 개발독재하에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고, 그는 총리직 퇴임 후에도 2004년까지 선임 장관, 2011년까지 고문 장관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유지했다.
그는 경제성장을 이끈 지도자로 기억되지만, 동시에 그가 강조했던 정치적 실용주의, 아시아적 가치, 유교적 정치사상은 지금까지도 싱가포르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리콴유 모델은 시진핑 사후 중국에 도입될 가능성이 높은 세 가지 모델 중 민주주의 체제와 가장 유사하다. 기존의 권위주의 체제는 남겨두면서 중국 공산당과 달리 활달하고 청렴하다.
또한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를 배척하고 실력주의와 법치를 기반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사회 발전을 추진하는 민주적 민족주의, 온건한 권위주의 정권을 추구하는 모델이다.
대만 모델 : 민주주의로의 점진적인 이행
대만 모델은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과 같은 길을 걷는 것이다.
장제스 치하에서 대만이 그랬던 것처럼, 군사정권에서 권위주의 정권을 거쳐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 정권을 향해 수십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전환한다.
이 경우 중국의 군사 및 공안기구가 10~20년 혹은 그 이상 군사정권을 유지할 수도 있다. 이후 일부 인사들의 정치 참여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권위주의 체제로 이행한다. 싱가포르 모델과 유사한 민주주의 정권이 탄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다.
대만 모델은 민족주의가 유지되며 심지어 민족주의가 매우 강력할 수 있다. 또한 마지막 단계에서 민주주의 정권이기는 하지만, 자유가 제한되는 ‘비자유 민주주의 정권’이 탄생할 수도 있다. 비자유민주주의는 선거는 공정하게 치러지지만 일부 시민권이 제약된다.
이 모델은 싱가포르 모델에 비해 그 경로가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이 통제력을 상실했을 경우 비교적 용이하게 전환이 이뤄질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전환이 성공적이라며 민주주의 보장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서방 국가들과는 대립관계가 이어질 수 있다.
스트롱맨 모델 : 장제스 같은 지도자의 등장
스트롱맨 모델은 잉글랜드 내전에서 철기대를 이끌고 왕당파를 물리쳐 공화국을 세운 올리버 크롬웰이나 1799년 브뤼메르의 18일 쿠데타로 집권한 후 정치혁명을 일으킨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같은 지도자가 출현해 중국 정치를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중국 근대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20세기 전반의 쑨원이나 장제스의 정치 형태로 회귀하는 것으로, 한 사람의 강력한 지도자(스트롱맨) 아래 권위주의적 지배가 이뤄진다.
세이어 국장은 “동유럽과 중부 유럽의 사례를 볼 때, 공산주의를 끝내고 다른 체제로의 전환은 늘 어려운 일이다”라며 “1990년대 슬로바키아의 블라디미르 메시아르 전 총리, 유고슬라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와 같은 스트롱맨 지배가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 역시 그러했다”면서 “이들 국가들은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물론 러시아는 민주주의로 전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스트롱맨 모델이 자리 잡는다면,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중국에 새로 등장할 지도자는 인민해방군, 공산당, 정보기관 출신이 유력하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을 승계하는 정권이 되진 않을 전망이다. 수천만 명의 자국민을 학살한 정권의 빚을 떠앉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강한 열망을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공산주의에 앞서 오랜 기간 중국 왕조들의 통치이념이었던 유교적 가치관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민주적 통치를 강조하겠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닐 것으로 전망된다.
결론 – 민주적 요소 갖춘 황제 시대로의 회귀
“결론적으로는 중국의 정치적 발전은 여러 차례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게 세이어 국장의 견해다.
그는 “공산주의에서 포스트 공산주의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공산주의를 탈피하기 위해 여러 차례의 변화를 겪을 것”이라며 “포스트 공산주의는 중국의 과거 모든 시대와 마찬가지로 단 한 사람의 강력한 지도자, 기본적으로는 황제라고 칭해지는 인물에 의해 통치된다”고 밝혔다.
즉 수십 년간 군벌이나 강력한 통치자에 이끌리는 권위주의적 정부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민주적 요소를 도입한 하이브리드형 정치체제에 이를 전망도 있다.
세이어 국장은 “중국인과 중국을 탈출한 해외 인사들이 중국의 정치적 발전에 미칠 영향에 대한 추가적인 분석도 필요하다”며 “변화는 예상보다 더 빨리 찾아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