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서비스, 고비용에 높은 문턱…불만여론 누적
일차적 목표는 의료 서비스 질 향상 위한 부패척결
전문가 “카르텔 자금 털어서 지방정부 채무 해소”
중국 당국이 최근 의료계를 대상으로 반부패 운동을 전개하는 가운데, 그 배경을 두고 의론이 분분하다.
당국은 의료계 부패를 해소하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중화권 전문가들은 지방정부 재정난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계-제약회사 카르텔이 지난 수십 년간 축적한 검은 자금을 털어먹으려 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올해 3분기부터 중국에서는 매달 평균 20명 이상의 병원장이나 병원 내 공산당 위원회 서기(당서기)가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는다는 소식이 중국 공산당의 감찰기구이자 반부패 핵심 기관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를 통해 발표됐다.
관영 ‘차이나 뉴스(中國新聞社)’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7일까지 부패 문제로 당국의 조사를 받은 병원장과 의료기관 당서기가 최소 184명에 달한다.
한국의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위건위)는 지난달 공안부, 국가의료보험관리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 등 9개 관련 부처와 화상회의를 통해 “향후 1년간 의약 부문의 부패를 집중적으로 척결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와 관련, VOA 중문판은 지난 17일 “중국 공산당 당국이 의약 부문을 새로운 반부패 영역으로 삼았다”며 “10개 부서 공동으로 의약 부문 비리를 추방하겠다고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중국 관측통을 인용해 “부패 문제 최대 이슈인 고위 관리들에 대한 의료 특혜는 건드릴 수 없을 것”이라고 VOA는 덧붙였다.
위건위가 언급한 ‘의약 부문 부패’는 병의원과 제약업체 간 이권 카르텔을 가리킨다. 공산당 고위층에 대한 의료 특혜는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앙기율위가 발표한 부패 적발 사례가 주로 병원과 제약업체 간 리베이트에 집중됐다는 점에서도 뒷받침된다.
또한 위건위는 지난달 정부 합동 단속 방침을 발표하면서 “무관용 원칙”을 내세웠다. “감히 부패할 엄두도 못 낼 것”이라고 엄포도 놨다.
중국 언론도 지원 사격하며 의료계 반부패 분위기 조성을 거들었다. 8월 중순부터 병원장과 당서기가 비리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제목에는 “반부패 폭풍”, “병원장 또 조사” 같은 표현이 들어가 전역에서 반부패 사정이 휘몰아친다는 느낌을 줬다.
대형 포털 시나닷컴은 지난 12일 경제 기사에서도 ‘의약 부문 반부패’ 현황을 전했다. 기사는 제약업계 1위 ‘상하이 제약(上海醫藥)’, ‘광위위안(廣譽遠)’, 시장약업(西藏葯業) 등을 나열하며 “지나치게 높은 마케팅 비용과 잦은 학술대회 개최” 등을 지적했다.
이 기사는 “격렬한 천둥소리와 함께 반부패 폭풍이 지금 의약 부문을 휘감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해 “이 폭풍이 지나고 나면 의약계에는 다시 올바르고 깨끗한 산업 여건이 돌아올 것”이라는 밝은 전망으로 마무리됐다.
“아직 건드리지 않은 돈줄, 중국 의약 부문”
위건위와 언론의 갑작스러운 분위기 조성에 대해 중국 내부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중국 의약계의 고질병인 ‘값비싼 의료비와 바가지 약값’이 바로잡힐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감돌지만, 과장 섞인 선전이라는 지적과 함께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견해가 제기된다.
중국인 장(張)모씨는 에포크타임스에 “앞서 정부는 지나친 교육비를 잡겠다며 사교육 반부패를 대대적으로 벌였지만, 실제로 교육비 부담은 줄지 않았다”며 “이번에는 의료 서비스 향상이라는 목표를 이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국인 판(范)모씨는 “의료계가 의료 산업화로 엄청나게 부당한 이익을 얻은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게 하도록 만든 정부 역시 한통속인데, 정부가 하는 반부패가 제대로 되겠냐”고 비관적 의견을 밝혔다.
베이징에서 20년간 변호사로 활동한 후 캐나다로 넘어가 중국 평론가로 활동 중인 라이젠핑(賴建平)은14일 에포크타임스에 “중국 공산당이 의약 부문 반부패를 하는 것은 법치를 하려는 게 아니라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2012년 집권 후 ‘호랑이(부패한 고위 관리)’, ‘파리(부패한 하급 관리)’, ‘여우(해외 도피 사범)’을 잡겠다며 반부패 운동을 시작했다. 반부패는 이후 빅테크 기업, 부동산, 엔터테인먼트, 사교육으로 확대됐고 이제 의약계에 이르고 있다.
라이젠핑은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은 부패 척결과 동시에 정치적 반대 세력을 숙청하는 과정이기도 했다”며 “하지만 이후 다른 분야로 확대된 반부패는 각각의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 특히 빅테크 반부패는 ‘공동부유’ 정책에 민간 대기업을 끌어들이는 수단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약 부문 반부패는 수십 년간 거대한 부를 축적한 병의원, 제약업체의 부패 자금으로 채무 리스크가 심각한 지방정부 재정을 충당하기 위한 성격이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중국, 1990년대 의료개혁…오히려 카르텔 키워
미국에 망명 중인 차이샤(蔡霞) 전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간부 사관학교 격) 교수는 중국의 의약계 반부패와 관련해 지난 14일 중국의 ‘이약양의(以藥養醫)’ 정책 관련 자료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공유했다.
‘이약양의’란 “의약품으로 의사를 지원한다”는 뜻으로 1950년대 중국에서 시작된 보건의료 정책이다. 중국판 구글인 바이두에서는 이를 “의사의 노동을 통해 의약품의 고부가가치를 실현하고, 의약품의 높은 이윤으로 병원의 경제적 이익을 견인한다’고 설명한다.
1949년 10월, 중국 공산당이 수립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초반 재정이 열악했던 것이 ‘이약양의’ 정책을 쓰게 된 배경이다.
중국 공산당은 이전까지 민간이 중심이던 의료를 국유화했고 도시 지역 의료 서비스를 희생하면서 농촌 지역으로 기초 1차 진료를 확대했다. 그러면서 병원과 의사들에게는 약을 팔아서 재정 자립을 하라고 했다. 국유화는 했지만 재정은 알아서 충당하도록 한 것이다.
차이샤 전 교수는 이 정책이 오늘날 중국 의료계에 만연한 리베이트 관행과 부패의 씨앗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트위터에 “국민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전체주의 정부가 그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자 병원과 의사에게 부패의 길을 열어준 것”이라며 “현재의 의약 부문 부패는 정부 정책이 유발한 것으로 전체주의 정부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중국 의료계에 부패가 만연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로는 아이러니하게도 1990년대에 시작된 의료개혁이 지목된다.
1990년 위생부(보건부, 현 위건위)와 중국 전통의학국은 향후 10년(1991~2000년)간 의료개혁 정책을 담은 ‘중국 건강 발전 및 개혁 요강’을 발표했다.
홍콩경제일보는 지난 11일 칼럼에서 이를 “1990년대에 시작한 1차 의료개혁으로 정부 주도의 계획경제하에 공립병원을 ‘시장화’해 손익을 스스로 책임지도록 했다. 이후 많은 병원이 자금 부족, 의료진의 수입 급감, 인력 이탈 등의 문제를 겪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영향으로 많은 의료인이 제약회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점차 의료-제약 카르텔이 형성됐다. 의료계의 저임금을 메우기 위해 리베이트, 의사와 환자 간 훙바오(紅包·촌지) 수수가 성행했다. 이익 사슬이 확대되면서 금품수수 현상이 갈수록 심해졌다”고 밝혔다.
‘시장화(marketisation·marketization)’는 주로 공산권 국가에서 법적 환경을 변경해 국영기업이 시장 지향적 기업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 조정을 가리킨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분적인 민영화도 포함하지만 민영화와는 다른 의미다.
공산주의 중국에서는 뜻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제 해결의 기본수단으로 시장을 활용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문제 해결을 위해 시장 시스템을 단기적 혹은 제한적으로 가져다 쓴다는 정도의 의미다.
중국의 의료제도 개혁에 관해서는 1994년 장쑤성과 장시성 일부 지역에서 시행된 국무원의 사회의료보험 시범사업을 첫 번째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중국의 의료개혁이 장쩌민 전 총서기 집권 시절인 1990년대에 시작됐다는 점이다.
1950년대부터 자리 잡은 ‘이약양의’ 관행은 이러한 의료개혁 과정에서 일종의 부작용으로 대폭 확대됐다. 정작 개혁으로 의도했던 의료 서비스의 확대와 향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2005년 중국 당국의 의료개혁 연구보고서는 개혁이 성공하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가오창(高强) 당시 위생부 부장(장관) 2005년 8월 5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의 공공 의료기관 운영 메커니즘이 너무 상업화됐다”며 “일부 의료기관은 맹목적으로 고소득을 추구하여 대중의 이익을 해쳤다”고 밝혔다.
2016년 12월 24일, 중국 중앙(CC)TV은 ‘의약품 리베이트 현상’을 보도했다. CCTV는 대형병원 의사들의 리베이트가 약값의 30~60%를 차지한다며 상하이시의 경우 집중 조달되는 약품 가격은 시장 도매가의 5배, 심하면 10배가 넘는다고 지적했다.
당 간부들, 특혜 누리며 의료계 비리 눈감아
중화권 평론가들은 1990년대부터 누적된 의약 부문 부패를 그동안 중국 공산당이 손대지 않은 것은 당 간부들 자신이 최대 수혜층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중국 정치 평론가 우쭤라이(吳祚來)는 VOA에 “중국 공산당이 이번에 의료 시스템 비리에 대해 강력한 척결 의지를 밝힌 것은 민심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며 진정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우쭤라이는 “부패의 배후에는 공산당이 있다”며 “당 간부들은 무제한 의료 혜택을 누린다. 이들은 중국 전체 의료 자원의 70~80%를 소비한다”고 설명했다.
공산당 간부들의 중국 의료 자원의 80%를 차지한다는 것은 전직 위생부 최고위급 관리가 직접 밝힌 사실이다.
전 위생부 부부장(차관) 인다쿠이(殷大奎)는 지난 2006년 한 공개 연설에서 “중국 정부가 투자한 의료비 중 80%는 당 간부와 정부 관리를 주요 대상으로 한 집단 서비스에 투입된다”고 밝혔다.
인다쿠이는 또한 “장기간 병가를 내 쉬고 있는 200만 명, 간부 전용 병실과 리조트에 장기간 머무는 40만 명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포함해 연간 500억 위안(약 9조1900억원)의 자금이 사용된다”고 구체적인 금액도 공개했다.
프랑스 매체 라디오프리아시아(RFI)는 지난 13일 인다쿠이의 발언이 최근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재확산되면서 “일반 중국인에게 의료 서비스의 문턱이 높고 비싼 것은 수백만 명의 당 간부들 때문”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우쭤라이는 시진핑의 의약 부문 반부패가 이러한 민심에 영합한 것이라며 “어느 정도 부패를 늦추는 효과를 내기는 할 것”이라고 평했다.
아울러 “동시에 가장 큰 부패를 은폐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들(당 간부들)은 특별 대우를 누리며 전 중국인들이 낮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베이징에 가택 연금 중인 사회활동가 후자(胡佳)는 “중국 공산당의 부패는 말단에서 최고위층까지 체계적이며, 부패하지 않은 관리가 거의 없다”며 “중국 의료계 비리는 이에 비하면 이류지만, 그래도 충격적인 것은 마찬가지”라고 VOA에 말했다.
후자는 이어 “공산당 최고 지도부는 의료계에 반부패의 칼날을 지금까지 거의 겨누지 않았다. 몰라서가 아니다. 수확할 때를 기다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렇다면 왜 이제야 도살의 칼을 들었나”라며 코로나19 봉쇄 해제 후에도 경제 회복이 더디고 성장 모멘텀이 약하고 경제 하방 압력이 강해지면서 중국 공산당의 자금이 마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후자는 “게다가 지방정부의 부채가 심각하다. 파산에 직면한 곳도 많다”며 “공권력으로 민간 자금을 몰수해 재정 수입을 늘리는 것은 (중국 공산당이) 즐겨 쓰는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전문가 헝허(橫河)는 “반부패 운동의 본질은 부패 청산이 아니라, 공산당이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일 뿐”이라며 “중국의 여러 가지 부패상은 공산당 통치 시스템에서 기인하는데, 공산당은 정의의 수호자를 자처한다”고 꼬집었다.
헝허는 “공산당의 반부패 운동은 부패를 일부 개인의 일탈로 몰고 가면서 이들의 부패를 증오하도록 부추기지만, 정작 부패의 근본 원인인 공산당은 뒤로 빠진다”며 “공산당의 반부패에 찬사를 보내는 사람은 이런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