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이 당 중앙이나 시진핑 총서기의 노선에 반기를 드는 당·군 고위층을 빠르게 물갈이 하고 있다.
작년 10월 시진핑 총서기의 전례 없는 3연임으로 당과 군에 대한 장악력을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포착된 현상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8월 초 시진핑은 본인이 직접 발탁한 로켓군 사령관 리위차오와 부사령관 류광빈을 교체했다.
핵무기와 재래식 탄도미사일을 포함해 9개 기지를 총괄할 후임 사령관에는 왕허우빈 전 인민해방군 해군 부사령관이 임명됐다. 군이 당에 충성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하는 정치위원에는 공군 남부전구 사령부 출신의 쉬시성 중장이 임명됐다.
왕허우빈과 쉬시성 모두 로켓군 근무 경력이 없는 인물로, 이번 인사를 통해 중장에서 상장(대장)으로 진급했다.
영국 BBC는 교체된 리위차오 전 로켓군 사령관과 류광빈 부사령관이 몇 달 전부터 실종 상태라고 전했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장전준 전 로켓군 부사령관까지 포함해 이들 3명은 모두 부패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다수의 중국 공산당 관측통에 따르면 이번 군 인사는 지난 10년간 중국 인민해방군에 일어난 변화 중 가장 큰 폭의 격변이다. 시진핑이 군 인사를 단행한 것은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이자 국가주석 겸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분석가들은 중국 로켓군이 관할하는 핵무기 비축량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조치가 역내 안정성을 뒤흔들 정도의 핵 정책 전환을 시사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뉴욕에 위치한 아시아 소사이어티 정책 연구소의 외교정책 및 국가안보 담당 연구원 라일 모리스는 BBC에 “이번 숙청은 큰 의미를 가진다. … 중국의 핵 전략이 최근 수십 년 중 가장 획기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고 평가했다.
더 나아가 이번 로켓군 사령부 교체 인사가 추가적인 인사 단행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모리스 연구원은 “시 주석이 전례 없는 방식으로 인민해방군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지만 그것이 완료됐다고는 볼 수 없다”며 “그는 여전히 고위 간부들의 부패를 우려하고 있으며, (당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이 아직 확보되지 않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진핑은 지난 7월 예정에 없었던 인사를 단행해 작년 12월 임명한 친강 외교부장(장관)을 해임했다. 친강은 이미 한 달여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아 의혹이 증폭되고 있었다.
친강의 후임에는 그의 전임자였던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외교담당)이 기용됐다. 왕이는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외교부장을 지냈다가 작년 10월 정치국원으로 승진하면서 자리를 떠났는데 한시적이기는 하지만 다시 외교부장을 맡은 셈이다.
AP통신은 중국 공산당이 친강 해임 후 하루 만에 외교부 웹사이트에서 그에 대한 언급을 모두 삭제했다고 전했다.
시진핑의 총서기 취임 이후 중국 고위 장성과 관리들이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가 소위 ‘반부패 운동’의 타도 대상으로 면직되고 이후 구금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친강도 이러한 양상에 속하지만 부패 혐의로 기소될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중국 공산당 군 지도부 역시 시진핑의 주된 숙청 대상이 돼 왔다.
2014년에는 중앙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와 궈보슝이 해임됐다. 이들은 부패혐의로 기소돼 군사법정에 섰다. 쉬차이허우는 재판 전 사망했고 궈보슝에게는 종신형이 선고됐다.
BBC에 따르면 2015년 전 인민해방군 중장 구쥔산이 뇌물수수, 권력 남용, 공금 부정 사용 등 혐의로 사형유예 2년을 선고 받은 데에는 시진핑의 압력이 작용했다.
시진핑은 권력 강화를 위해 반부패 운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군 때리기’를 해왔으며 그중에서도 로켓군을 주된 표적으로 삼아왔다.
미 국방부의 대만담당 수석국장 토니 후는 시진핑의 숙청에 관해 “당과 군에 대한 장악력을 공고히 하고 자신의 수하에 있는 모든 사람의 충성을 확실히 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미국 인터넷 매체 ‘데일리 비스트’에 말했다.
다만, 숙청된 로켓군 사령관과 부사령관, 친강 외교부장이 모두 시진핑 자신이 직접 발탁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낙마는 시진핑이 자신의 의사결정에 의구심을 품고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후 국장은 설명했다.
그는 “시 주석은 친강 해임 이후 아마 전원의 경력을 다시 점검하고 있을 것”이라며 “자신의 측근 중에 외국 공작원이나 외국 정부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시진핑의 마음에 심각한 불안을 초래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대만 입법원의 프레디 림 위원(국회의원 격)은 지난달 ‘데일리 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친강 전 부장이 공개석상에서 사라진 것은 시진핑이 자신의 지위에 안심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림 위원은 “그(친강 전 부장)가 더는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어떤 상황이나 이유가 드러날 경우 시진핑의 권위가 떨어질 수 있다”며 중국 외교부 등 관계당국이 친강 해임 사유를 언급하지 않는 이유를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