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인 남성 유권자들이 민주당의 방만한 정책에 실망하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로이터는 1일 “일부 흑인 남성들은 2024년 민주당 바이든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조지아주의 거주하는 흑인 바타 메코넌(28)의 사례를 통해 민주당 지지자들이 처한 현실을 전했다.
이에 따르면 메코넌을 비롯한 흑인 남성 유권자들은 민주당의 좌경화, 무상정책 남발, 지켜지지 않는 약속에 실망하고 있다. 다만, 극우화하는 공화당 역시 그들의 선택지는 아니다. 결국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메코넌은 “지금의 민주당은 흑인 커뮤니티에 너무나 몰려 있는 모습”이라며 “그들(민주당)은 젊은 흑인 남성이나 흑인 남성 전체를 위한 정당인 것처럼 보이려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는 민주당이 흑인 유권자 전체가 아니라 특정한 강성 지지층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성 지지층을 제외한 흑인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메코넌과 마찬가지로 바이든이 차기 대선 후보가 되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확산돼 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로이터는 흑인 유권자들이 민주당의 충성 지지층으로 2020년 대선 때 사우스캐롤라이나 예비선거에서 고전하던 바이든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상원 다수당을 결정짓는 승부처였던 조지아에서도 민주당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많은 흑인 유권자들은 바이든과 민주당 정부가 그 보답으로 투표 요건 강화 저지, 경찰·사법개혁, 학자금 부채 탕감, 경제적 지위 향상 등의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 대부분은 공화당에 의해 제동이 걸렸고 바이든은 새로운 추진동력을 위해 재선에서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으나 딱히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게 로이터의 분석이다.
오히려 민주당이 LGBTQ, 낙태권 보장에 중점을 두면서 급진적 정책에 호감을 느끼지 않는 메코넌 같은 흑인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 민주당이 흑인 여성, 특히 정치적올바름(PC)이나 좌파 이념에 열성적인 유권자에게만 편중됐다는 것이다.
메코넌은 “나는 민주당이 경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를 바랐지만, 내가 볼 때 민주당은 점점 더 좌경화하고 있다”며 바이든 후보에게 투표했던 2020년 대선 때만큼 지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는 여론조사나 개별적인 인터뷰 사례에 비추어 모든 연령대의 흑인 남성 유권자들이 민주당과 바이든, 미국의 정치 프로세스 자체에 대해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면서도 “대다수 흑인 유권자는 여전히 공화당보다 바이든을 선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흑인 유권자들 사이에서 민주당 정치에 대한 환멸감이 퍼지면서 필라델피아, 애틀랜타, 밀워키, 디트로이트 등 민주당 텃밭 도시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에 충분한 표를 확보할 수 있는지가 불안 요소로 떠올랐다고 덧붙였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자신을 흑인이라고 인식하는 인구 비율이 2000년 3630만 명에서 2021년 4720만 명으로 급증하며 전체 인구의 14.2%를 차지했다. 여기에는 자신을 흑인으로 여기는 히스패닉 등도 포함됐다.
민주당이 대선 경합지인 펜실베이니아와 미시간, 조지아에서의 우위를 계속 유지하고 공화당이 우세한 남부 지역까지 지지세를 넓히려면 흑인 유권자들의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올해 초 발표된 미국 인구조사국 집계결과에 대한 워싱턴포스트 분석에 따르면, 흑인 유권자의 투표율은 2018년 중간선거의 51.7%에서 2022년에는 42%로 10%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같은 기간 백인 유권자의 투표율은 1.5%포인트 하락에 그치며 2022년 53.4%를 기록했다.
플로리다 대학 정치학과의 마이클 맥도널드 교수는 “흑인 유권자 투표율은 2022년 전국적으로 감소했다”며 “여론조사, 설문조사, 출구조사 등 모든 조사 결과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을 지지하던 흑인 유권자들이 공화당 지지로 돌아선다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도 민주당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이러한 추세는 젊은 유권자층에서 두드러졌다.
여론조사업체 HIT 스트레티지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2022년 중간선거 50세 미만 흑인 유권자 약 20%가 공화당에 투표했다. 이는 50세 이상 고령층에 비하면 약 2배 수치다. 젊은 흑인 유권자들이 민주당 대신 공화당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에디슨리서치의 출구조사에서는 2020년 대선 때 공화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의 흑인 유권자 득표율은 12%로 2016년 대선 때보다 4%포인트 상승했다.
로이터와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지난달 11~17일 실시한 조사 결과, 바이든 대 트럼프 가상 양자 대결에서 트럼프를 뽑겠다고 응답한 흑인 유권자는 18%로 바이든(46%)보다는 크게 낮았다.
성별로는 흑인 남성 4명 중 1명, 흑인 여성 7명 중 1명이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남성들은 낙태를 제한하고 범죄 억제를 위해 경찰 예산을 늘리겠다는 후보를 지지하는 성향이 강한 것으로 파악됐다.
민주당은 낙태권 보장, 우편투표 확대, 인종차별 반대 등의 이슈에서 흑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으나 경제 분야에서는 공화당과 별 차별화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HIT 스트레티지의 터런스 우드버리 최고경영자(CEO)는 로이터에 “경제안보, 인플레이션, 고용안정 등 경제 이슈에 관해서는 50~60%포인트까지 발생했던 격차가 거의 없어지고 있다”며 “젊은 흑인 유권자에게는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마찬가지”라고 분석했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민주당이 대선 때마다 흑인들의 경제적 지위 향상, 백인과의 격차 감소를 공약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개선되지 않은 점도 지적하고 있다.
시카고의 투자분석가로 근무하는 흑인 유권자 줄리언 사일러스(25)는 “학자금 탕감이나 주택 정책 등 솔깃한 정책들이 거론되지만 그런 정책들이 충분히 빠르게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흑인 실업률은 바이든 정권 출범 후 기록적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흑인 가구의 총자산은 전체의 4.4%로 트럼프 행정부 말기였던 2020년 1분기의 4.3%에 비해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자 첫 번째 흑인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제이미 해리슨 민주당 전국위원회 위원장을 내세워 대학생 등 흑인 유권자들의 관심과 지지를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