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집회에서 “풍력 발전기로 인해 전례 없는 수의 고래가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죽은 고래들이 해변으로 밀려오고 있다. 이번 주말에만 고래 3마리의 사체가 발견됐다”며 “풍력 발전기가 고래를 ‘미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 50년간 사우스캐롤라이나 해안에서 죽은 고래는 단 1마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수가 급증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영국의 유력 매체 BBC와 가디언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에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특히 BBC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천연자원부의 2015년 자료를 인용해 “1993년 이후, 사고로 목숨을 잃은 혹등고래의 수는 6마리로 확인됐다”고 반박했다.
이어 BBC는 고래 죽음의 원인이 어업 및 선박 충돌이라고 주장하는 런던 동물학회 소속 과학자 롭 데빌의 발언을 인용했다.
데빌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풍력 발전기가 고래 죽음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를 없애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풍력 발전기와 고래 폐사 간의 결정적인 연관성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에 본부를 둔 해양포유류위원회의 앤드류 리드 위원장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풍력 터빈이 고래 폐사를 일으킨다는 과학적 증거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또 “고래 폐사의 진짜 원인은 선박 충돌, 어구(漁具) 얽힘, 기후변화로 인한 해양온난화 등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혹등고래들이 먹이를 찾아 해안으로 더 가까이 접근하고 있는데, 이때 선박 항로에 접근하거나 어구에 걸려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리드 위원장은 “해상 풍력 발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청정에너지로 위협받고 있는 ‘화석연료 이해관계자’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래와 풍력 터빈
지난 8월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에포크타임스에 “2022년 12월 이후 미국 동부 해안에서 고래 65마리가 폐사했다”고 알렸다. 게다가 최근 일주일 사이에 뉴욕의 파이어아일랜드와 롱비치, 뉴저지의 롱브랜치에서 고래 3마리가 잇따라 폐사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9월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대서양 지역의 해상 풍력발전 개발을 위한 실행 계획을 발표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목표는 2030년까지 동부 해안에 30기가와트(GW) 규모의 풍력발전단지를 세우는 것이다.
해상 풍력발전단지를 반대하는 단체인 ‘윈드액션’의 설립자 리사 리노우즈는 최근 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재생에너지 업계가 풍력발전단지 조성 사업을 서두름에 따라 예상되는 피해를 막거나 최소화해야 한다는 ‘사전 예방 원칙’이 무너져 버렸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런 움직임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2016년 이후 동부 해안에서 고래 350마리가 죽었고, 그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23년 1월부터 6월까지, 6개월간 폐사한 고래의 수는 무려 40마리가 넘는다”고 꼬집었다.
환경 과학자 로버트 랜드는 풍력 터빈 건설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풍력 터빈 및 기타 장비가 내는 소음은 고래와 돌고래 등 해양 포유류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소음으로 인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며, 같은 종 간의 소통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이는 해양 포유류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침묵하는 환경단체
리노우즈는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는 석유 및 가스 개발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되고 야생동물이 위협을 받는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반면, 풍력 발전으로 인한 문제에는 침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21년 미국 국립해양수산청은 멕시코만에 서식하는 라이스고래가 불과 50마리밖에 남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그 직후 NOAA는 멕시코만의 해역 약 1800만 에이커를 라이스고래의 보존 서식지로 지정할 것을 제안했다. 여기에는 멕시코만에서 운영되는 석유 및 가스 산업의 해양 시추를 크게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멕시코만 인근 주(州)의 공화당 의원들은 “NOAA의 제안은 그 파급효과를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은 것이며,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위험이 있다”며 보존 서식지 지정에 반대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와는 반대로 생물다양성센터(CBD)와 같은 환경단체들은 “석유 및 가스 산업의 해양 시추가 해양 생태계를 망치고 있다. 이 지역을 보존 서식지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해상 풍력 발전기가 고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최근 CBD는 NOAA에 선박의 속도 제한을 의무화할 것을 요청하는 긴급청원서를 제출했다. CBD는 “선박으로 인한 충돌 사고는 고래의 목숨을 앗아가는 가장 큰 원인”이라며 “선박의 속도를 제한하는 것만으로도 고래의 죽음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일각에서는 “선박 충돌만으로는 고래의 죽음이 급증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도 환경단체들은 선박이 고래 폐사를 일으키는 유일한 원인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소송
지난 9월, 풍력발전단지를 반대하는 매사추세츠주 난터켓 주민 연합(NRAT)은 “여러 야생동물 규제 당국이 풍력발전단지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환경 영향 평가를 내리는 과정에서 국가환경정책법, 멸종위기종보호법 등을 준수하지 않았다”며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 소송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인디라 탈와니 미국 지방법원 판사에 의해 지난 5월 기각된 바 있다.
NRAT는 소송에서 “NOAA와 해양환경관리청, 국립해양수산청이 해양 생태계를 심각한 위협에 빠뜨리고 있다. 풍력발전단지 건설로 인해 북대서양참고래가 절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동부 해안의 상징적인 해양 생물인 북대서양참고래는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야생에 남아 있는 개체 수는 400마리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며 “난터켓 인근 해역은 북대서양참고래의 서식지이자 피난처인데, 이곳에 풍력발전단지를 세우는 것은 북대서양참고래의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탈와니 판사는 “NRAT는 야생동물 관리 부서가 국가환경정책법, 멸종위기종보호법 등을 위반했음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결했다.
전문가의 경고
리노우즈는 “NOAA 산하에는 고래 폐사에 관해 조사하는 조직이 있는데, 대서양해양보존협회가 그중 하나”라며 “이 협회는 2020년까지만 해도 해양 생태계와 고래의 보호를 위해 노력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 협회에 풍력에너지 업계의 관계자들이 참여하기 시작한 2021년부터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협회 이사회의 절반 정도가 풍력에너지 업계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에포크타임스는 대서양해양보존협회 측에 연락해 논평을 요청했다.
리노우즈는 2022년 미국 해양에너지관리국(BOEM)에 보낸 서한에서 “NOAA의 보호종 책임자인 숀 헤이스는 해상 풍력발전단지 건설이 뉴잉글랜드 남부 해역의 해양 생태계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언급했다.
리노우즈에 따르면 헤이스가 말한 해양 생태계 위협 요소에는 선박 통행 증가, 서식지 파괴, 영양 공급원 중단, 소음 증가 등도 포함된다. 다만 이런 요소들은 어느 정도 그 영향을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풍력발전단지로 인한 생태계 영향은 풍력 터빈이 가동되는 한 수십 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헤이스는 경고했다.
이런 경고와 우려에도 주류 언론과 환경단체들은 “풍력발전단지가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주장은 ‘화석연료 이해관계자’가 조작한 허위 정보”라고 말하고 있다.
2023년 초, 제퍼슨 반 드류 하원의원(공화당·뉴저지주)은 “해양생물의 죽음이 급증하는 것과 관련해 해상 풍력 개발의 영향을 조사해야 한다”며 연방 회계감사원에 촉구했다.
또한 반 드류 의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집회 영상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며 “대서양 연안에서 폐사한 고래의 수가 ‘역사적인’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왜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지, 왜 환경단체들은 분노하지 않으며 주류 언론들은 이에 대해 침묵하는지 모르겠다”고 일갈했다.
*김연진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