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로 ‘합성 인간배아’ 제조…생명윤리 논란 재점화

이리나 안토노바(Irina Antonova)
2023년 07월 14일 오후 7:20 업데이트: 2023년 08월 07일 오후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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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연구진이 인간의 정자와 난자 없이 줄기세포만을 이용해 ‘합성 인간 배아’를 제조했다고 발표하면서 생명윤리 논란이 불거졌다.

연구진은 합성 인간 배아 모델이 임신과 출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제거하고 유전질환 연구에 기여하는 등 생명과학 발달에 획기적인 도움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생명윤리 전문가들은 관련 연구의 잠재적 위험성을 지적하며 당국의 규제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막달레나 제르니카-괴츠 교수 연구진은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국제줄기세포연구학회(ISSCR) 연례 회의에서 합성 인간 배아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제르니카-괴츠 교수는 “(배아 줄기) 세포의 재프로그래밍을 통해 인간 배아와 매우 유사한 모델을 제조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한국, 캐나다, 영국 등 최소 12개국에서 적용하고 있는 ‘14일 규칙’을 위반해 거센 논란의 중심에 섰다.

14일 규칙

14일 규칙은 인간 배아를 14일 이상 연구실에서 배양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생명윤리 관련 지침이다.

인간 배아는 수정 후 14일이 되면 척추의 기원이 되는 원시선이 생긴다. 이 시기가 지나면 배아가 본격적으로 인체로 발달한다고 보고 있다.

이에 과학계에서는 생명윤리 문제를 피하기 위해 수정 14일을 기준으로 배아 관련 연구를 진행해 왔다. 수정 14일 이후에는 임신부 검사 촬영본을 관찰하거나 기증된 배아를 연구해야 한다.

제르니카-괴츠 교수 홈페이지

다만 일부 생명공학 전문가들은 14일 규칙을 완화해야 한다고 꾸준히 목소리를 높여 왔다. 이들은 수정 후 14일을 인간 발달의 ‘블랙박스’ 기간이라고 여기는데, 이 기간에 인간 배아를 관찰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 배아 발달의 초기 단계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면 유전질환, 이상 징후, 선천 기형 등의 원인을 파악해 생명공학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연구 과정

앞서 지난해 제르니카-괴츠 교수 연구진은 쥐의 줄기세포로 인공 배아를 제조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또 이스라엘 바이츠만 연구소도 쥐의 줄기세포를 이용해 초기 단계의 뇌, 심장 등을 갖춘 배아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이후 생명공학계에서 줄기세포 기반 인공 배아 기술을 인간 모델에도 적용하기 위한 후속 연구가 경쟁적으로 진행됐다.

ISSCR 연례 회의에서 제르니카-괴츠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배양한 합성 배아는 자연 배아의 14일에 해당하는 발달 단계를 약간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줄기세포로 만들어진 합성 배아가 낭배형성의 초기 단계까지 발달했다는 뜻이다. 낭배형성은 태아 발달 과정에서 세포 분열과 증식을 통해 수많은 세포층을 형성하는 단계다.

이 단계의 자연 배아에서는 심장과 뇌의 초기 모습은 발견되지 않지만, 연구진의 모델에는 정자와 난자의 전구세포(전 단계 세포)인 원시 세포가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연구진들은 이후 발달 단계에서 합성 배아의 정상적인 성장이 가능한지, 생명공학적 기술의 한계나 문제점은 없는지 등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법적, 윤리적 문제

합성 인간 배아에 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생명윤리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물론 합성 배아를 인간의 자궁에 이식하는 행위는 현행법상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합성 배아가 임상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합성 배아가 자연 배아와 유사한 구조로 발달하여 인체로 성장할 수 있게 된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해진다.

생명윤리 전문가들은 합성 배아 실험과 관련 기술이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합성 인간 배아는 단순히 연구 목적으로만 생성돼야 하며, 배아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자원이나 상품으로 취급하는 행위라고 경고했다.

합성 배아와 자연 배아에게 동일한 도덕적, 법적 지위를 부여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또한 합성 배아의 생성 및 조작으로 인한 잠재적 위험성, 부작용 등이 불확실하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가장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인간 생식에 대한 통제 가능성이다. 합성 배아 관련 기술이 오남용 및 통제된다면 생명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 우생학이나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으로 변질될 수 있다.

현재 대부분 국가에서 진행되고 있는 합성 배아 배양은 현행법의 범주를 벗어나 있으며, 생명윤리 전문가들은 합성 배아 연구를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영국 버밍엄대학교의 기능유전체학 일뎀 애커먼 부교수는 “합성 인간 배아는 기존 생명공학의 한계를 넘어 배아 배양 기술이 발전했음을 시사한다”면서도 “하지만 기술과 능력이 그 일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