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이 푸틴에 대항해 일으킨 반란 사태와 관련,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이는 러시아 내에서 푸틴의 영향력이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약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지난 23일(현지 시간)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러시아군 수뇌부의 고의적인 미사일 공격으로 바그너 그룹의 용병 기지가 소멸했고 2000명에 달하는 용병들이 사망했다며 무장반란을 일으켰다.
한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푸틴의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던 프리고진은 그간 러시아 국방부와 오랜 불화를 겪어왔다.
그러나 거침없이 진격하던 프리고진은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를 코앞에 둔 상태에서 협상을 통해 반란을 중단, 철수했다. 반란을 일으킨 지 24시간 만이었다. 러시아는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떠나는 조건으로 프리고진과 반란에 참여한 병사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언론의 자유가 제한적인 러시아 현지에서는 이번 반란 사태에 관한 정보 및 설명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정확한 사실을 파악 중이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25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완전한 정보가 없고 확실히 이 사태가 정확히 어떻게 전개될지를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프리고진이) 이성을 잃었다”고 평가했다.
“푸틴의 종말을 알리는 시작점”
관측통들은 이번 반란 사태가 푸틴 대통령에게 ‘종말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예측한다.
이와 관련, 블링컨 장관은 푸틴의 퇴진으로 이어지겠느냐는 질문에 “추측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무엇보다 러시아 내부의 문제다”라며 직답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모든 면에서 전략적 실패가 됐다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단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는 경제적·군사적으로 약해졌으며 전 세계에서의 위상이 급락한 동시에 반대로 우크라이나를 뭉치게 하고 나토(NATO·북대서양 조약 기구) 등 유럽을 하나로 통합시켰다는 분석이다.
이어 “(외부가 아닌) 러시아 내부에서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해 직접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것은 균열을 더한다”며 푸틴 대통령은 앞으로 전장뿐 아니라 러시아 내부 상황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는 2024년 미국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 또한 블링컨 장관의 의견에 동의했다. 버검 주지사는 “이번 반란은 러시아 내부에 균열이 생기고 푸틴이 러시아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마이크 터너 미 하원 정보위원장 역시 프리고진이 단 하루 만에 수도인 모스크바 코앞까지 진격했다는 사실은 러시아군 내부에 ‘공범자’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프리고진이 그렇게 멀리까지 가려면 공범이 있어야 한다. (프리고진이 진격하는 동안) 그를 막을 러시아 공군 등은 어디 있었는가”라고 꼬집은 터너 위원장은 “이는 앞으로 푸틴이 대내외적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라고 내다봤다.
퍼트레이어스 전 CIA 국장은 “일련의 사건들이 푸틴과 푸틴 정부가 약해졌다는 분명한 사실을 보여준다”고 했다.
퍼트레이어스 전 국장은 “프리고진은 실패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느냐”며 “(푸틴 주변) 사람들의 마음속에 많은 의구심이 생기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에이미 클로버샤 미 상원의원도 “푸틴의 최측근이었던 사람이 그에게 불복종하고 그의 전쟁을 대놓고 거부한 것은 푸틴의 힘에 명백한 균열이 생겼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향후 미국의 대응
미 당국 관계자들은 러시아 침공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할 것을 권고하는 한편, 미국의 대응 가능한 방안을 제시하고 나섰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하는 데 매우 집중하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와 관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앞으로도 미국의 동맹국 및 협력국들과 긴밀히 조율하도록 지시했다고 전했다.
퍼트레이어스 전 국장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크라이나에 가능한 모든 것을 계속 제공해 이번 여름 공세를 성공시키고 푸틴이 러시아가 나폴레옹에 승리를 거뒀던 과거와는 달리 이번에는 우크라이나와 유럽, 미국을 이길 수 없다는 깨달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라고 촉구했다.
러시아의 혼란을 감안해 미국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클로버샤 의원은 “지금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나토 파트너국들과 함께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지원할 기회가 있다”며 “장기전으로 가지 말고 지금 이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답했다.
2024년 대선 공화당 예비후보인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는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프리고진이) 이번 반란 사태를 일으키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며 앞으로도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비판하는 공화당 내 일부 목소리에 대해서는 “이것은 미국이 해야 할 싸움이다. 그것은 항상 희생을 수반하지만, 결국 희생의 끝에서 미국은 더 크고, 강하고, 부유한 나라가 될 것이다. 세계에서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미국이 원칙을 수호하고 동맹국들의 편에 섰기 때문일 것”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