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역사상 최악의 스파이 사망…FBI 요원 활동하며 수천 건 기밀 소련에 빼돌려

최창근
2023년 06월 09일 오후 6:19 업데이트: 2023년 06월 09일 오후 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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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최악의 스파이가 최근 사망했다.

미국 매체들은 “6월 5일, 로버트 핸슨(Robert Hanssen) 전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수감 중이던 콜로라도주 플로렌스 연방 교도소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교도소 측에 따르면 올해 79세인 핸슨은 6월 5일 오전 6시55분께 감방에서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됐으며 이후 사망 선고를 받았다. 사인(死因)은 자연사로 추정된다.

FBI 고위 요원이었던 핸슨은 적국을 위해 조국을 배신한 대표적인 스파이로 꼽힌다. 20년 정도 구소련(현 러시아)를 위해 스파이로 활동했다.

핸슨은 1944년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경찰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리버를 아츠 칼리지인 녹스대학(Knox College) 졸업 후 노스웨스턴대학에서 MBA를 취득했다. 이후 회계법인에서 근무하다 시카고 경찰을 거쳐 1976년 FBI에 입사했다.

FBI에 입사한 핸슨은 구소련 정부 기관을 대상으로 첩보 수집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다 3년 뒤인 1979년 처음 소련 스파이로 활동한다. 이후 아내의 반대로 한동안 스파이 활동을 그만뒀다가 1985년부터 기밀 유출에 나섰고, 체포된 2001년까지 스파이 활동을 이어갔다.

핸슨은 1985년 10월 일반 우편으로 구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에 편지를 보내 정보와 금품을 교환할 것을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자신의 신분은 ‘B’라고만 밝히고 편지 겉봉에는 ‘라몬 가르시아’라고 썼다.

여섯 자녀를 둔 핸슨은 평범한 아빠이자 신실한 가톨릭 신자로 행세했다. 스스로 “보수주의적 반공주의자”라며 주변을 감쪽같이 속였다. 핸슨의 존재는 KGB 요원 사이에서도 코드명 ‘B’ 또는 ‘라몬 가르시아’라는 가명으로만 알려졌다. 핸슨은 러시아 관리자에게 쓴 편지에서 “나는 킴 필비에게 영감을 받아 14살 때 이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킴 필비(Kim Philby)는 영국 비밀정보부(MI6)의 거물 간첩이다. 간첩 행위가 적발되자 소련으로 망명했다. 앤서니 블런트 (Anthony Blunt), 가이 버지스 (Guy Burgess), 도널드 매클린 (Donald Maclean), 존 케인크로스 (John Cairncross)와 더불어 ‘케임브리지 5인조’으로 불렸다. 실제 핸슨은 학창 시절 킴 필비 관련 책을 탐독하며 이중스파이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핸슨이 빼돌린 기밀문서만 약 6천 건, 컴퓨터 하드디스크도 26개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러시아에 넘긴 기밀에는 핵전쟁 시 미국의 전략, 군사 무기 기술 발전, 미국 방첩 프로그램 등이 포함됐다.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140만 달러 이상의 현금, 다이아몬드, 롤렉스 등 고급 시계를 받았다.

러시아 담당자였던 핸슨은 미국의 대러시아 첩보 작전의 세부 내용을 유출했다. 미국이 도청을 위해 워싱턴DC 주재 소련대사관 아래에 뚫어놓은 비밀 터널도 모스크바에 누설했다. 러시아 내 미국 스파이 명단도 넘겼고, 구소련 드미트리 폴리아코프 장군 등 2명이 처형됐다.

FBI와 중앙정보국(CIA)은 1990년대부터 러시아 측에 정보가 새고 있다는 걸 파악했다. 내부 스파이를 색출하는 이른바 ‘두더지 잡기’에 돌입했다. FBI는 2000년에야 한 전직 러시아 정보 장교에게 700만 달러를 건네고 ‘B’라는 인물이 러시아 관계자와 대화하는 녹취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음성 대조, 지문 감식 등을 거쳐 핸슨을 특정했다. 이후 당시 국무부에 파견 가 있던 핸슨을 워싱턴 FBI 본부로 불러들였다. 그에게는 “승진 대상이라 기술 보좌직에 해당하는 특별 보직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FBI는 본부에서 근무하게 된 핸슨의 사무실에 특수요원을 근무하게 한 뒤 구체적인 간첩 행위를 수집하게 했다. 그러다 2001년 그가 일명 ‘던지기 수법’으로 기밀문서를 담은 쓰레기 봉투를 한 공원의 인도교 밑바닥에 테이프로 붙이는 장면을 포착해 현장에서 체포했다. 체포 직후 핸슨은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느냐?”고 말했다. 놀라는 기색도 없이 오히려 비아냥거리는 말투였다.

핸슨은 수사, 재판 과정에서 “이념이 아닌 돈 때문에 저지른 일이다.”라며 “제 행동에 사과드린다. 부끄럽다. 불법성을 넘어 많은 사람의 신뢰를 무너뜨렸다.”고 밝혔다. 적용된 스파이 혐의 15건에 대해서는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2002년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핸슨의 스파이 행위는 미·러 간 외교 갈등으로 비화됐다. 당시 조지 W.부시 대통령이 러시아의 간첩 활동을 문제 삼아 50명의 러시아 외교관을 자국에서 추방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모스크바 주재 미국 외교관 50명을 맞추방하며 대립했다.

핸슨의 ‘이중 간첩’ 사건은 오늘날까지 미국에서 ‘역사상 최악의 정보 재앙’으로 불린다. FBI는 그를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끼친 스파이”로 명명했다. 그의 이야기는 2007년 영화 ‘브리치’에서 다뤄졌다. FBI는 최초로 청사 내부를 개방하는 등 촬영에 적극 협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