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살며시 방 안을 비추면, 어머니는 아직 잠에 흠뻑 빠져있는 아이를 깨웁니다.
아이는 잠에서 깨어 어머니에게 안기며 아침 인사를 건넵니다.
어머니는 아이의 흐트러진 머릿결을 정리하며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춥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윌리엄-아돌프 부게로는 모성애를 주로 조명한 작품을 그렸습니다.
모성애에 주목한 화가, 부게로
1865년 작 <일어나(기상)>에는 신체의 대칭과 형태의 명확한 구현, 목가적인 빛 사용 등 신고전주의 미술의 특징이 뚜렷합니다. 어머니의 목덜미를 끌어안는 아이의 팔과 아이를 안은 어머니의 자세가 대칭을 이루고, 밝은 아침 햇살과 어두운 배경의 대조는 햇살처럼 아이에게 쏟아지는 어머니의 사랑을 강조해 줍니다.
부게로는 최고의 인체 해부학 화가 중 한 명으로, 완벽한 인체 구현과 묘사력으로 그림 속 인물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공부해 작품활동을 이어오던 그는 40세가 된 1865년경부터 주로 젊은 어머니와 아이를 등장시켜 모성애의 고전적 숭고함을 그려냈습니다. 그는 모성을 ‘자연의 표현’으로 보았습니다.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모습과 함께 여성의 아름다움, 목가적인 삶, 어린이의 순수함에도 주목해 그 모습을 애정 어린 눈길로 관찰해 그림으로 묘사했습니다.
모성애를 주제로 한 그림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림 속 두 인물을 전면 중앙에 배치해 어머니와 아이 간의 애틋한 상호작용의 시각적 효과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는 르네상스 시기에 확립된 고전적 구성 구조에서 차용된 것으로, 주제를 삼각형으로 배치해 시선의 초점이 인물에게 향하도록 합니다. 이와 더불어 배경의 일부를 그림자로 가려지게 해 희미하게 보이는 배경을 통해 인물의 상황적 배경을 이해하게 해주는 한편, 인물이 더 부각되도록 만듭니다.
슬픔 속의 위로
부게로는 여러 자녀의 아버지이자 남편이었습니다. 그가 주목한 ‘모성애’의 모티브는 그의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에게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닥친 비극적인 사건들은 그에게 큰 고통과 괴로움을 안겼습니다.
1866년, 부게로의 4살 난 딸 잔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어 1875년 그의 아들 조르주가 16세의 나이에 병으로 사망합니다.
큰 슬픔에 빠진 부게로는 자신과 아내의 슬픔을 <피에타>와 여러 그림에 투영했습니다.
이미 수 세기에 걸쳐 여러 화가에 의해 다뤄진 주제인 ‘피에타’는 사망한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의 심적 고통과 흡사한 고통을 겪은 부게로에게 매우 사실적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그렇기에 그는 이 작품을 그리며 마음을 추스르고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 해, 그의 아내는 셋째 아들 모리스를 출산했습니다. 아들이 탄생해 잠시나마 슬픔에서 벗어났지만 그와 가족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모리스가 태어난 후 건강이 악화된 부게로의 아내는 1년 뒤 사망했고 아내의 사망 두 달 뒤, 모리스 또한 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의 작품 <위로의 성모>에서 애도의 마음을 표하는 검은 옷을 입고 슬픔에 찬 성모 마리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녀의 무릎 위에는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젊은 여성이 기력을 잃고 늘어지듯 누워있습니다. 부게로는 이 작품을 그리며 그 또한 위안을 얻었습니다.
비극에서 걸작이 탄생하다
그의 화폭 위에선 수많은 걸작이 탄생했고, 예술적 명성 또한 커졌지만, 그의 개인사는 비극으로 가득했습니다.
아내가 사망한 후 그는 몇 년간 약 50점가량의 작품을 그렸습니다. 그는 삶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켰고, 예술에 대한 애정을 불태우며 남은 생을 채워갔습니다.
전통을 지켜 모성애를 묘사하다
동시대의 다른 신고전파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부게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예술,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는 조화와 질서를 통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그려냈습니다. 그와 동시에 모성애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을 통해 섬세하게 그 감정과 사랑을 매혹적으로 그려냈습니다.
감히 짐작하기도 어려울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켜 작품활동을 펼치며 예술 속에서 위로받은 화가, 부게로.
눈부시게 아름답고 섬세한 그의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