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오도자(吳道子)는 ‘백대화성(百代畫聖)’으로 불리는 화가로, 특히 부처와 도사 인물화에 뛰어났다. 일찍이 그가 장안 경운사(景雲寺)에서 그린 ‘지옥변상도(地獄變相圖)’는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장안 민중은 그림 속 지옥 모습을 보고서 소름이 돋고 털이 곤두섰다. 많은 사람이 죽은 후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는 것이 두려워 마음을 바르게 쓰고 선행을 했다.
‘당조명화록(唐朝名畫錄)’에 이런 기록이 있다. “또 일찍이 경운사 노승이 하는 말을 들으니 오도자가 이 그림을 그리고 나서 도성에서 도축을 하고 물고기를 잡거나 술을 파는 무리들이 죄 짓는 게 두려워 업종을 바꾸는 자가 더러 있었고 모두 선(善)을 닦았다.”
‘태평광기(太平廣記)’ 212권에도 “오도자가 이 지옥변상도를 그린 후 이를 구경한 사람들이 죄 짓는 게 두려워 모두 선(善)을 닦았다. 시장에서 고기와 생선이 팔리지 않았다”라고 했다.
소동파는 ‘오도자의 지옥변상 발문’이란 글에서 “지옥변상도를 보니 죄를 받는 모습은 볼 수 있되 업을 짓는 원인은 볼 수 없으니 슬프도다!”라고 했다.
중국인들은 자고로 선과 악에는 보응이 따름을 믿었다. 불교와 도교가 크게 발전한 당대(唐代)에는 인과윤회설과 청정무위 사상이 제왕의 치국과 백성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오도자 역시 부처 수련을 하는 사람으로서 금강경을 수지(受持)하고 자신의 본래 모습을 알았다. 그는 훌륭한 그림으로 신불의 기상을 묘사해 지옥의 고통을 경고하고 인심(人心)을 교화했다.
백대화성
오도자는 ‘오대당풍(吳帶當風 역주: 옷자락과 띠가 바람에 나부끼듯 그리는 화풍)’이란 기법을 창안했다. 주경현(朱景玄)은 ‘당조명화록’에서 그의 그림을 유일하게 최고의 경계인 ‘신품(神品)’에 올렸고, “타고난 천성으로 약관에 이르기 전에 단청의 묘가 극에 달했다”, “무릇 인물·불상·신귀·금수·산수·전각·초목 그림에서 모두 당대 으뜸이자 나라에서 제일이었다”라고 평가했다.
당 현종 시기에 오도자는 황제의 부름을 받아 궁정화가가 됐다. 기록에 따르면 오도자는 일찍이 장안과 낙양 두 곳의 사찰과 도관에서 300여 점의 벽화를 그렸는데 인물 형상이 기이하고 생동감이 넘쳤지만 비슷한 사람은 없었다.
당조의 서예가 장회관(張懷瓘)은 오도자를 남조(南朝)의 화가 장승요(張僧繇)가 환생한 것으로 보았는데 장승요는 불화(佛畫)에 뛰어났다. 주경현도 이 말에 동의했다.
오도자의 붓끝에서 탄생한 인물은 옷 띠가 바람에 휘날리듯 펄럭였고, 겉은 부드럽고 속은 굳센 모습을 보였다. 오대당풍이란 이 독특한 풍격은 당대는 물론 후세 화풍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돈황 막고굴 벽화 속 비천(飛天·하늘을 날아다니는 여자 신선)이 “하늘옷(天衣)이 너울거리니 온 벽(壁)이 움직이네”라고 한 말에 이 화법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오도자의 작품은 대부분 벽화여서 진적(真跡)은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지금은 오직 ‘송자천왕도(送子天王圖)’ 등 모사본만 몇 점 남아 있다. 돈황 막고굴 제103굴 ‘유마경변도(維摩經變圖)’도 오도자의 화풍으로 알려져 있다. 후대의 화가 서비홍(徐悲鴻)이 일찍이 그 잔권(殘卷·두루마리의 일부)을 얻었는데 벽화의 밑그림일 것 같아 장대천(張大千)에게 감정을 의뢰한 결과, 오도자의 진품으로 인정받았다. 이 그림의 임시 작품명은 ‘팔십칠신선권(八十七神仙卷)’이다. 그림 속 인물이 87명인 점을 살려 지은 이름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작품은 기세가 드높고 인물의 표정이 여유로워 중국 고대화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하늘이 준 재능
선인들은 예술을 평가할 때 흔히 천(天)과 신(神)을 언급한다. 옛사람들은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을 믿었고, 하늘이 만물을 창조하고 주재하는 최고의 힘이라고 여겼다. 제왕의 공적이나 문예 대가의 성취는 흔히 하늘이 주거나 타고나거나 신이 도와 이룬 것으로 보았다.
주경현은 오도자를 평가하면서 “하늘이 내린 재능이 당대에 독보적”이라고 했다. 당나라 장언원은 ‘역대명화기’에서 “오도현자(吳道玄者, 오도자)는 하늘로부터 강하고 곧은 붓을 받았고, 어려서부터 신비하고 오묘함을 지녔다” “오직 오도현의 그림만이 육법(六法)을 모두 갖추고 만상(萬象)을 다 담아냈으니 신이 사람의 손을 빌린 듯 조화가 궁극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당조명화록’에는 “오도자가 흥선사(興善寺) 중문 안에 부처의 원광(圓光)을 그릴 때 장안의 노소 사대부·서민이 다투어 몰려와 에워싸고 구경했다. 붓을 들어 마치 바람이 회오리치듯한 기세로 원광을 그리자 모두들 신이 돕는다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번은 오도자가 황제의 어가를 따라 동도 낙양에 가서 장군 배민(裴旻), 서예가 장욱(張旭) 등과 함께 즉석에서 각자의 기량을 펼쳐보였다. 배민이 칼춤을 한판 추자 장욱이 벽에 휘호를 썼고, 오도자가 붓을 휘몰아 단번에 그림을 완성하니 모두들 신이 도와주었다고 했다.
오도자가 일찍이 내전 위에 5마리 상서로운 용을 그리자 “비늘(鱗甲)이 날 듯 움직이고, 비가 오려고 하면 그림에서 연기와 안개가 피어나왔다”고 한다. 만약 신의 도움이 없다면 어찌 ‘바람과 구름이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 같고 귀신이 벽에서 튀어나올(風雲將逼人, 鬼神若脫壁)’ 것 같이 그리는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그림의 순기능
인류의 전통 예술은 풍부한 내용과 장엄한 경계를 펼쳐낸다. 그 속에 담겨있는 찬탄하지 않을 수 없는 정묘(精妙)함은 사람의 힘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전통 예술의 형식과 걸출한 성취는 모두 신이 부여한 것으로, 그 시대의 문명과 도의(道義)의 사명에 대응한다.
장언원(張彥遠)은 ‘역대명화기’에서 “무릇 그림이란 교화를 이루고 인륜을 돕고 신묘한 변화를 드러내고 심오한 경계를 헤아리니 그 공이 육경(六經)과 같다”고 했다. 또 “(그림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모두들 충과 효를 다함으로써 운대(雲台)에 초상이 보존되고 공덕과 공훈을 쌓아 인각(麟閣)에 초상이 걸린다. 선을 보면 족히 악을 경계하고 악을 보면 족히 어짊(賢)을 생각한다”고 했다.
주경현은 ‘당조명화록’에서 “옛사람의 말을 듣자 하니 그림은 성스럽다고 했다. 하늘과 땅이 이르지 못하는 곳을 다 드러내고, 해와 달이 비추지 않는 곳을 다 드러낸다. 섬세한 붓 휘두르면 온갖 물상이 마음에 따라 지어지고, 마음의 능력이 드러나고 천 리가 손안에 있다. … 그래서 운대와 인각에 공신의 공덕을 표하고 궁전에 정절의 명예를 드러내는 것이다. 정묘함이 신의 경지에 들고 신령함이 성인과 통하는데 어찌 궤짝을 열면 잃어버릴까 봐 그만두고, 벽에 걸어두면 날아갈까 봐 그만두리오?”라고 했다.
고서에서는 또 “정신을 바탕으로 옮겨 고정하고 묽은 먹물을 흰 바탕에 떨어뜨려 그로 인해 형상이 있으면 멈추고, 형상이 없으면 만든다”면서 그림에 아름다움과 추함을 표시하고 아름다운 덕을 드러내 사람들이 선과 악을 분명히 가리게 하니 이것이 ‘그림의 정도(畫之正道)’라고 했다.